⑬ 조루리지와 간센지

조루리지 삼중탑에서 바라본 구체아미타당. 국보로 지정돼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 9구가 조성돼 있다.

교토와 나라 경계쯤에 석불 마을로 알려져 있으면서 산책로로 사랑을 받고 있는 도노(?尾)라는 지역이 있다. JR이나 긴테쓰 나라역에서 버스를 타고 20~30분 정도 가면 되는 곳이다. 그 마을이 나지막하고 가파르지 않은 산 속에 있어서인지 그곳에 가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 이번에는 도노를 대표하는 조루리지(瑠璃寺)와 간센지(岩船寺)를 소개하고자 한다. 옛날부터 나라 불교의 성지였던 도노는 교토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큰 사찰의 스님들이 도시를 떠나와서 수행정진을 했던 곳이다. 사찰 주소는 교토부이지만 역사적으로 나라(奈良) 불교의 영향을 받아왔고, 지금도 나라에서 찾아가는 것이 훨씬 더 편하기 때문에 나라 가이드북에 자주 나온다.

나라 불교 성지였던 도노 지역
대표하는 고찰 조루리지·간센지
두 사찰 산책길서 大佛 친견해
100~200엔 야채 무인 판매도

조루리지(瑠璃寺)
조루리지 창건에 대해서는 도래계 출신인 교키(行基)스님에 의해 8세기에 창건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사찰 연대표에는 1047년에 기묘쇼닌(義明上人)에 의하여 본당이 건립된 것을 사찰역사의 시작으로 표기하고 있다. 본당 내에는 본존으로 약사여래가 안치되어 있다. 조루리지(瑠璃寺)라는 사찰 이름이 동방에 있는 약사여래의 정토인 정유리세계에서 유래된다.

1107년에 본당을 해체하고 새로 서당(西堂)이라는 건물을 짓고 약사여래를 옮겼다. 또 새 본당(九?阿彌陀堂)이 세워졌고 다음 해 개안식(開眼式)이 봉행되었다.

조루리지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고후쿠지 스님인 에신이었다. 에신이 1150년 조루리지에 들어와 경내를 정비했다.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새로운 가람 배치를 정했다. 에신이 고후쿠지로 돌아간 후에도 경내 정비가 계속 진행되었고 1178년엔 교토에서 삼중탑을 조루리지로 옮겨왔다. 본존 약사여래가 삼중탑으로 이운 안치되었다. 연못을 중심으로 동쪽에 삼중탑, 서쪽에 아미타당(본당)이라는 현재의 가람 배치는 에신에 의하여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루리지 가람 배치는 헤이안시대 후반에 사람들의 마음을 잡은 정토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해가 뜨는 동방은 생명이 태어나는 곳이고, 거기서 사람들을 과거세에서 현세에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삼중탑 초층에 계시는 약사여래이다. 현세에서 어떻게 살면 될지를 가르쳐주고 번뇌를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석가모니불이다. 삼중탑 초층 문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그린 그림이 있다. 약사여래와 석가모니불이 계시는 삼중탑은 과거세인 동시에 현세이기도 한다.

해가 지는 서방에는 내세인 서방정토가 있고 아미타여래가 계신다. 아미타여래 덕분에 사람들이 구세를 받고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 조루리지 좁은 공간에는 이렇게 전세, 현세, 내세가 다 표현되어 있다. 조루리지 경내에 들어가면 왠지 편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이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눈과 몸으로 깨닫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편안해 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헤이안시대에는 불교의 역사관 중의 하나인 정법시·상법시·말법시란 3시 중 마지막 말법 시대가 1052년에 시작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당시에는 화재, 지진, 홍수, 기근, 역병 등 재앙이 잇달아 일어났다. 유명한 뵤도인(平等院) 아미타여래가 제작된 것도 이 시기였다. 깜깜하고 희망이 없는 현세에서 벗어나 좋은 내세가 올 것을 기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아미타 신앙이 유행했고 신앙의 대상인 아미타불이 많이 만들어졌다.

12세기 초 조루리지에서도 아미타여래가 제작되었다. 조루리지 아미타여래는 내영인(迎印)을 하고 있는 중존(中尊)을 중심으로 정인(定印)을 하고 있는 좌우 8구가 있어서 구체아미타여래좌상이라고 불린다. 건물은 비좁지만 당당한 체구에서 박력이 뿜어져 나오고 법당 안에 엄숙한 느낌이 가득하다. 좌우 8구는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씩 미묘한 차이가 있다.

구체아미타여래는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극락세계 아홉 가지 계층인 구품왕생(九品往生)에 의하여 제작된 것이다. 구체아미타당(본당), 구체아미타여래좌상 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구체아미타여래좌상이 아미타신앙이 유행했을 때 많이 만들어졌지만 현재 아미타당에 구체아미타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는 곳은 조루리지 뿐이다. 정말 귀중하다. 지금은 아미타여래 9구 모두 예경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 2구씩 나라국립박물관에 옮겨서 앞으로 5년간 보존처리할 예정이다.

조루리지가 소장하는 불상 가운데 중생에게 복덕을 주는 길상천(吉祥天)이 인기가 있다. 비불로 평소에는 아미타여래 중존 오른쪽에 있는 감실에 문을 닫아 모셔놓고 있지만 1월1일~1월15일, 3월21일~5월20일, 10월1일~11월30일에 특별 공개로 감실의 문이 열린다. 화려한 채색, 아름다운 모습. 어둡고 엄숙한 아미타당이 길상천 공개 기간에는 밝아진다. 또, 삼중탑 초층에 봉안된 약사여래는 매달 8일, 1월1일~1월3일 등의 기간에 날씨가 좋을 때만 공개를 한다.

고후쿠지의 말사였던 조루리지는 19세기 후반 폐불훼석 때 나라 사이다이지(西大寺)의 말사가 되었다. 올해 도쿄에서 시작한 ‘나라 사이다이지전’이 7월 29일부터 9월 24일까지 오사카 아베노하루카스(あべのハルカス)미술관에서 열리는데 조루리지 길상천이 7월 29일에서 8월 6일까지 전시된다.
 

간센지에 핀 수국. 너머로 삼층탑이 보인다.

간센지(岩船寺)
조루리지에서 고요하고 쓸쓸한 산책길을 30~40분 정도 걸으면 간센지에 도착한다. 산속에 있는 이 아담한 사찰은 꽃 사찰로 알려져 있고, 특히 초여름에 꽃피우는 다양한 색채의 수국이 유명하다. 가을 단풍도 아름다워 도시에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사전(寺傳)에 의하면 729년에 쇼무(聖武)천황의 발원으로 교키 스님이 아미타당을 건립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가(嵯峨)천황의 명으로 구카이(空海)의 조카이고 제자인 지센(智泉) 스님이 황자 탄생을 기원했더니 효험이 있었다. 그 덕분에 813년 당탑이 세워져 가람이 정비되었고, 사찰 이름이 간센지가 되었다. 사찰이 번성했을 때 당탑이 39개에 달했고, 그 위용을 자랑했으나 13세기에 병화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15세기에 삼중탑이 재건되었고, 에도시대에 들어와 도쿠가와(德川)가의 기진(寄進)으로 본당, 본존을 수리, 복원했다.

20세기 후반에 재건된 본당에는 본존 아미타여래좌상과 사천왕입상 등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높이 약 3m, 느티나무 한 그루로 만들어져 중량감이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은 양손으로 정인을 하고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불상제작 시기는 복장에서 나온 자료에 의하면 946년이라고 한다. 원만한 윤곽에 온화한 표정, 당당하고 두꺼운 몸체 등이 특징이며 10세기 중기를 대표하는 불상이다. 간센지 일대에는 질이 좋은 화강암이 많아 간센지 경내에서도 석탑이나 석불 등 돌로 만든 것이 곳곳에 있다.

조루리지와 마찬가지로 간센지도 고후쿠지의 말사였으나 19세기 후반에 사이다이지의 말사가 되었다. ‘나라 사이다이지전’에서는 헤이안시대에 귀족 여성들의 신앙을 받던 간센지 보현보살기상상(普賢菩薩騎象像)이 7월 29일부터 8월 27일까지 전시된다.

조루리지-간센지 사이 산책길서 만날 수 있는 마애삼존불. 도노 지역은 석불 마을이라고 불린다.

조루리지와 간센지 답사 안내
조루리지, 간센지가 있는 도노 지역은 화강암이 풍부하고 가마쿠라시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석불이 많아 일본 ‘아름다운 역사적 풍토 100선(選)’의 하나로 뽑히고 석불이 있는 곳을 돌아다니는 산책로가 사랑을 받고 있다. 조루리지에서 간센지로 이어진 산책로가 좀 쓸쓸하지만 사찰 답사뿐만 아니라 석불도 즐길 수 있어 이 길을 걷는 것을 추천한다.

조루리지와 간센지 간 1시간 1번에 운행하는 버스도 있어서 편도로 이용하면 시간 절약도 할 수 있다. 산책로에 있는 석불 가운데 특히 마애아미타삼존상(磨崖阿彌陀三尊像)이 유명하다. 마애불 위에 있는 돌이 닫집처럼 지붕역할을 하고 있어 보존 상태가 아주 좋다. 입가에 미소를 띄는 것처럼 보여 ‘와라이보토케(笑い佛)’란 애칭으로 알려져 있다.

명문으로 석수가 도다이지 재건 때 활약한 송나라 출신 석수의 자손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석불 종류는 미륵보살, 아미타불, 부동명왕, 지장보살, 관음보살 등이 있으나 아미타불이 가장 많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셔놓은 조루리지나 간센지가 있는 도노에는 아미타신앙이 뿌리를 박았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노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불이 높이 약 2.6미터인 다이몬마애불(大門磨崖佛)이다.

조루리지와 간센지를 잇는 산책길 도중에서 서쪽으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대일여래로 여기고 있지만 아미타불 혹은 미륵보살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작 시기도 나라시대, 헤이안시대라는 설로 나뉘고 있다.

석불 산책로를 걸으면 야채 무인 판매소가 여기저기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무인 판매소는 일본에서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어 드문 것이 아니지만 도노의 무인 판매소는 물건을 그냥 놓고 파는 게 아니라 물건을 달아매고 팔고 있어 보기에도 즐겁고 예술적인 느낌까지 든다. 많은 것이 100엔이나 200엔짜리다. 여기의 특산물인 차도 봉투에 넣고 판매한다. 산속의 아담한 사찰이나 석불을 지켜본 도노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매달린 야채를 통해서 느낀다.

식당이 조루리지 주변에 몇 개 있고 번화가에 있는 식당에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즐기면서 먹는 것도 괜찮다. 다만 도노를 찾아오는 사람이 적을 땐 문을 닫는 식당도 있다.

도노에 갈 때는 JR 혹은 긴테쓰 나라역에서 버스를 타는데 하루에 6번 밖에 없어 조심해야 한다. 또 JR가모역에는 하루에 8번 버스가 있어 가모역에서 갈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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