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부인 따라 비구가 된 왕

몇 겁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난한 어머니가 예쁜 딸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얻어 오는 밥으로 살고 있었지만, 딸은 당시의 부처님 경전을 공부해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라의 왕이 길을 가다가 한 마리 까마귀를 보고 활을 쏘았는데, 까마귀는 화살을 달고, 가난한 어머니의 오막살이로 날아갔습니다. 왕의 시종이 가난한 집으로 들어가 까마귀와 화살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무 기침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오다니요?”

아가씨의 말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아가씨는 까마귀 몸에서 화살을 빼고, 약을 발라서 날려 보냈습니다. 화살은 오막살이 밖으로 던졌습니다. 그 때에 언뜻, 아가씨의 고운 손가락이 보였습니다. 시종은 돌아가서 왕에게 여쭈었습니다.

“까마귀는 소리치던 아가씨가 살려서 날려 보냈습니다. 문밖으로 던진 화살은 여기에 주워 왔습니다.”

시종은 안에서 말하는 아가씨의 말이 경우에 어긋남이 없고, 목소리가 분명했으며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손가락이 아주 곱더라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젊은 왕은 마땅한 부인을 구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왕은 신하들 말을 듣고 가난한 집 아가씨를 왕비로 맞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집으로 사자를 보내 아가씨를 불러 오도록 했습니다.

“대왕께서 나를 불러 종을 삼겠다면 내 집은 국법을 어긴 일이 없으니 안 될 일이요. 나를 청해다가 왕비를 삼겠다면, 사자로 온 당신부터 틀렸소. 무엄하게 왕비의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왕비를 위협하다니!”

아가씨가 거절하는 말이었습니다. 사자의 보고를 들은 왕은 이번에는 예를 갖추어 가난한 집으로 사자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관 속 여럿을 거느린 사자를 잘 꾸민 수레에 태웠습니다. 궁녀들을 골라 한 수레에 태웠습니다. 뽑은 군사들을 행렬의 앞에 세웠습니다. 예물로 전할 소와 양, 여러 마리와 잔치 음식을 실은 수레와, 아가씨를 태우고 올 수레와 말을, 사자의 수레 뒤에 따르게 했습니다. 행렬이 지나는 길가에는 구경꾼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삽화=강병호

가난한 집에 도착한 사자는 예를 갖추어 아가씨에게 만나기를 요청했습니다. 아가씨도 예를 갖추어 사신 일행을 맞이했습니다. 아가씨가 나와서 인사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외롭고, 가난하고, 비천한 집 딸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저의 집은 누추하고, 저는 덕스러운 여자가 못 됩니다. 모습은 복숭아꽃이나 우담바라에 겨눌 수 없으며, 음성에도 아름다움이 스며있지 않습니다. 앞을 보는 식견이 부족하며, 예절에 밝지 못하고, 어질지 못해서 부족함이 많습니다.”

이것은 아가씨가 자기를 낮추어서 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자와 신하들과, 궁녀들, 군인들 느낌에는 아가씨의 모습이 복숭아꽃이나 우담바라 꽃과 같이 예쁘고, 목소리에는 악기의 음성이 울리고 있으며, 밝은 지혜가 가득한 덕스러운 아가씨로 보였습니다. 

아가씨는 사자를 따라온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큰 잔치를 차려 푸짐한 대접을 했습니다. 그 사이에 사신을 모시고 온 신하와 궁녀들, 군인들 을 따로 모아서 자기가 공부한 바를 일러주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부처님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말과 모습에서 향기가 흘렀습니다. 신하와 궁녀들, 군인들 모두가 훌륭한 나라의 어머니를 얻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사자와 신하들이 궁전의 예를 쫓아서 황금덩이, 백은덩이, 수정과 유리와 산호와 호박, 영락과 비단이 수놓인 옷을 왕비로 간택된 아가씨에게 올렸습니다. 잔치가 끝나자 왕이 보낸 옷으로 몸을 꾸민 아가씨가 왕의 말이 이끄는 왕의 수레에 탔습니다.

길이 절로 열리며, 말은 스스로 길을 찾았습니다. 길 양쪽에 상서로운 코끼리 떼가 와서 같이 행진하며, 기쁜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왕비의 행차가 왕궁에 이르자, 대궐 정문이 절로 열렸습니다. 궁궐에서 5백 줄기 광명이 뻗치면서 대궐을 밝혔습니다. 아가씨가 왕 앞에서 100배를 올렸습니다. 이 의식으로 아가씨는 왕의 제1부인인 왕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왕비는 궁녀들과 궁내 사람들을 모아 자기의 깨달음을 전하느라 이레 동안 왕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사람이 평등하다. 그 중에는 도를 이룬 분이 으뜸”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으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레를 기다리던 왕이 신하를 시켜 왕비에게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 “곤전(坤殿, 왕비의 처소)은 부부로서의 정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오?”

왕비가 회답을 보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두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나라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요, 하나는 부처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도를 이룬 부처님보다 높은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하나를 마저 이루기 위해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를 해주십시오.” 

그렇게 답장을 보낸 왕비는 이튿날 아침, 왕궁을 버리고 당시의 부처님 제자가 되어 비구니 법복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궁녀들과 궁중 사람이 수두룩 머리를 깎았습니다. “하긴 그 길이 제일 바르고 좋은 길이지.”

크게 깨달은 왕도 왕자에게 나라 일을 맡긴 다음, 부처님께 가서 계를 받고 비구 스님이 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을 돌이키며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그 때의 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이며, 왕비는 밀행제일 라후라 존자의 어머니 야수다라 공주였대요. 〈경률이상(經律異相)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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