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한경혜 씨 이야기

 

감사를 깨우치는 절수행

뇌성마비 장애도 이겨내

목표 있는 삶은 강인 그 자체

 

시각장애를 극복한 절 수행

시원하고 조용한 법당에서 절을 하고 싶을 때 가끔 찾는 곳이 도선사 마애불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을 다 들어주고 계신 마애불 앞에 서면 온갖 번뇌로 출렁거리던 마음이 고요해진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데다가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도 그렇게 더운 줄 모르고 절을 하게 된다. 얼마 전 그곳에 가서 1080배를 하다가 온 정성을 다해 절을 하고 있는 분을 보게 되었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방석이 정면으로 부처님을 향해 있지 않고 약간 비스듬히 놓여있는 데다가 몸동작이 유난히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방석 옆에 긴 철제 지팡이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았다. 다가가 방석을 바로 놓아주었더니 고맙다며 나를 쳐다보는데, 눈이 맑고 안정돼 보였다. 육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그녀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 조용히 절을 하는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5백배를 하고 나서 좀 쉴 겸해서 도선사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같이 먹고 다시 올라와 남은 절을 그녀와 함께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비로소 그녀에 대한 사연을 들었다. 몇 년 전 갑자기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병원에서도 딱히 원인을 알 수 없다 하고, 지금은 어렴풋이 사물의 형체만 보일 뿐이라고 한다. 본디 천주교인이었던 그녀가 대학에 다니면서 불교에 귀의한 아들이‘절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말을 전해주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108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눈을 좀 낫게 해주세요’했던 기도가 지금은‘이만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바뀌었고, 무엇보다 매일 300배를 하니 건강에 도움이 되어서 좋다고 했다.

“파주에 있는 집에서 도선사까지 오는 데 2시간 반이 걸리는데, 아직 이렇게 혼자 힘으로 다니며 절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집에 있으면 우울해지다가도 절에 오면 마음이 시원해져요. 더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더운 날인데도 마주 잡았던 손이 차디찼던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지금 이대로의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도 체험 없이는 온전한 자각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녀와 만나기 며칠 전부터 시작된 결막염으로 한 열흘 동안 앓았다. 비교적 눈 건강이 괜찮은 편이어서 과신했다가 고생을 많이 했다. 한 쪽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는데도, 곧 괜찮겠지 하고 노트북으로 오랜 시간 작업을 하고 하루 1080배를 했더니 몸이 피로감을 이기지 못했던 것 같다. 유난히 염증이 심해서 고통스러웠던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있으면서,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절수행을 하고 있는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눈병이 발병한 날부터 온전히 낫기까지 정확히 3주 걸렸다. 절을 못하고 있다가 새롭게 108배를 하는데 ‘고맙습니다’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역시 108배는 감사하는 마음 그 자리가 정토임을 깨닫게 하는 최고의 수행이 아닌가 싶다.

 

살고 싶으면 절하라

눈에 염증만 생겨도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게 절수행이다. 그런데 35년 동안 하루도 거름 없이 1000배를 한 사람이 있다. 중견화가 한경혜 씨가 그 주인공이다.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108배 이야기를 쓰면서 절수행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젊은이로 그녀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30대로 짐작하고 있던 그녀의 나이가 어느덧 올해 마흔 셋이라고 한다. 뇌성마비 4급 장애의 불편한 몸으로 일곱 살 때부터 하루 천배를 시작해서 이십대 초반에 하루 만 배 백일기도를 세 번이나 마친 그녀를, 십여 년 전쯤 인사동 한 화랑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개인전이 열리던 전시장에서였다. 이미 그녀가 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터라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를 안고 말았는데, 그때 다가왔던 그 바람처럼 가벼운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웃고 있는 얼굴도, 걸음걸이도, 경쾌해 보였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얼굴도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명랑한 그녀를 보면서 수행의 위대한 힘을 느꼈었다. 그런데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다. 그녀가 온 마음으로 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강한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녀가 그 어려운 수행을 할 수 있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모든 에너지가 그대로 자식에게 간다는 것을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안다.

사지가 비틀려 따로 돌아가는 몸으로 매일 천 배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 만 배 백일수행을 세 번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은 곁에 강력한 선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녀의 어머니 자신이 만 배 백일기도를 통해‘죽어야 산다’는 경험을 했기에 자식에게 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딸 곁에서 때로는 냉정하고 매몰차게, 때로는 뜨거운 사랑으로 붙들어주며 절을 하게 한 그녀의 어머니를 전시장 화장실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정말 훌륭한 어머니세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몸이 불편한 자식한테 냉정하게 하실 수 있으세요?”

많이 주는 사랑보다 절제된 사랑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무심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한 말을 잊을 수 없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못해요!”

짧게 한 마디만 하고 돌아섰는데, 나는 자식 둘을 키우면서 그 말을 여러 번 떠올리곤 했다.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을 남처럼 대하기란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정말이지 쉽지 않다. 독립된 인격체로, 더 나아가 이미 완성된 부처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믿고 대하라는 이야기인데 세상의 부모들은 이를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안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들으면서 이미 그녀의 어머니가 사람에겐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걸 느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힘든 수행을 결코 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 어머니의 위대한 힘, 수행의 강력한 힘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리곤 했다.

그녀의 절 수행 이야기를 담은 책 ‘오체투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 읽을 때마다 감동이 밀려온다. 이번에 그녀에 대한 글을 쓰려고 다시 한 번 읽었는데, 10년 이상 된 책인데도 지금 막 나온 책처럼 신선했다. 진솔한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구구절절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절수행이 주는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비틀어지고 덜렁거리던 사지를 가지고 태어난 운명을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어 보고 싶었다. 하다가 죽는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절을 택했다.”

이렇게 선언하고 있는 그녀는 1.6kg의 미숙아로 태어나 첫돌이 지나면서 뇌성마비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해 제대로 걷지 못하고 말을 하려면 온 얼굴 근육을 다 써야 한두 마디 하는 정도였다. 아주 조금씩 힘겹게 걷기도 하고 의사표현을 하는 정도는 될 즈음인 일곱 살 때 사경을 헤매는 위기를 맞았다. 고열과 경기를 일으키며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가고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정밀 검사를 해보았으나 원인을 찾지 못한 의사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듣고 그녀의 어머니가 딸을 들쳐 업고 해인사 백련암에 계신 성철스님에게로 달려갔다. 스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절로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며 교화를 하고 계실 때였다. 새털처럼 가벼운 아이를 업고 백련암으로 올라가면서 그녀의 어머니는 등에 업혀 있는 어린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병원에서 이미 포기를 했으니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다. 함께 죽는 거다. 그런데 부처님께 실컷 절이나 해보고 죽자.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한 참회도 해보고, 다음 세상에는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는 기도를 해보자. 우리 딸, 할 수 있지?”

엄마를 놓칠세라 꼭 들러붙어 있던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3000배를 해야 스님을 만날 수 있다니 이래저래 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무토막을 이어 만든 몸처럼 사지가 덜렁거리는 몸으로 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으나 생존에 대한 본능 때문이었을까, 몸이 굳어져 가던 일곱 살짜리 어린 아이는 사흘에 걸쳐 3000배를 해냈다. 물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가 무너지듯 앉고는 머리를 땅에 박듯이 한 절이었다. 3000배를 하고 나자 물을 마셔도 토하지 않았고, 성철 스님이 건네준 바나나 한 개를 다 먹을 수 있었다. 사정을 알게 된 성철스님이 절을 마친 어린아이에게 명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하루에 천배씩 하거라.”

‘살고 싶으면 절하라’, 이 절대적인 명령은 세월이 가도 녹슬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성철큰스님의 특허와도 같은 금언이다. 이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실행에 옮겨서 죽어가는 목숨을 살린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스님의 말씀을 어기면 살아 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날로부터 매일 1000배씩 절을 했다. 어린 나이에 불편한 몸으로 절을 해야 하니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 있는 동안과 잠자는 시간 말고는 하루 종일 절을 해야 했다. 친구들과 놀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에 가기 전 이백 배를 하고 방과 후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해놓고 절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절을 해서 밤 10시가 되면 천 배를 마치는 생활을 6년 동안 한 것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절을 계속할수록 굳은 얼굴이 풀려가고 비틀어지고 흔들거리던 몸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고 중심을 잡아가기 시작하는 것을 확연히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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