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는 오래된 철학적 물음을 진중하게 던지는 명작 중 하나다. 재미와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나’란 존재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가, 육체와 정신은 어떤 관계인가 등 많은 사유를 이끌어낸다.

작품의 배경은 2029년, 신체는 기계로 얼마든지 대체가능하고 인간들의 두뇌는 전자화 되었다. 이름하여 전뇌화(電腦化). 그런데 이 전자두뇌는 비유하자면 머릿속에 소형 컴퓨터 단말기가 들어 있는 것과 같아서 언제든지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로서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시나리오.

그렇다면 정보화시대의 어두운 단면, 어떤 뛰어난 해커가 사람들의 전자두뇌를 헤집고 다니며 다른 사람의 기억을 나에게 주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몸과 외모는 어제의 나와 똑같다고 해도 과연 나는 ‘나’일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새로 이식된 기억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작품에는 결혼 후 사랑하는 딸을 둔 평범한 미화원인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기억은 해킹되어 이식된 가짜임이 밝혀진다. 결국 그는 모두 만들어진 가짜 기억이었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지만,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어차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임을 알았는데 그는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우리는 보고, 듣고, 맛보는 등 감각기관을 통해 신체 바깥의 어떤 대상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틀림없이 내가 느낀 그와 같은 모습, 그와 같은 향기 등을 가졌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연 그럴까?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독사와 마주친다면 누구나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것이다. 놀라움과 두려움에 심장은 쿵쾅쿵쾅 뛸 것이고, 뱀을 몹시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날이 밝은 다음날 두려운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면서 지난 밤 내가 본 것이 새끼줄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간의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짐은 물론, 그 상황이 황당해 너털웃음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본 것은 실제 독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그것을 ‘독사’로 그렸다. 그로 인해 내 마음에 공포가 자리 잡고, 그에 따라 내 몸과 마음은 영향을 받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즉 바깥의 대상이 새끼줄이었던 사실과는 달리, 나 혼자 그려놓은 독사라는 이미지는 매우 실체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곧 매우 리얼(real)한 현실이 되었다. 독사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불교는 말한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기쁨, 분노, 슬픔, 공포 등의 감정은 분명히 우리 바깥의 어떤 대상을 인식한 결과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가 인식한 그 대상이 정말 분노와 공포를 느끼고 기쁨을 유발하는,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의 세상을 반영한 결과물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마음의 ‘독사’를 없애고 나면 나를 웃고 울리던 것들에 초탈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거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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