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문 대표가 밝힌 어보 반환 숨은 주역들

문정왕후 어보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돌아왔다. 한미 정상화담의 성과로 대서특필됐지만, 어보가 돌아오기까지 숨은 주역은 불교계의 역할이 컸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약탈·불법유출된지 67년만에 문정왕후 어보가 돌아왔다. 어보 환수를 외교적 성과로 말하고 있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불교계 문화재환수운동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불교 문화재 환수 단체가
2009년부터 운동 시작해
2013년 반환 결정 이끌어

수 년간의 환수운동 과정
조계종·봉선사·미주 불교
스님·불자들이 지원해 와

혜문 “불교 역할 알려야”
어보 반환 기념하기 위한
회암사 무차대회 계획 중


실제 문정왕후 어보 반환운동의 시작은 2009년 문화재제자리찾기의 문제 제기부터다. 당시 봉선사 스님이었던 혜문 대표는 봉선사·회암사 사부대중과 함께 회암사 성보 환수 운동을 시작했다. 혜문 대표는 회암사 성보를 찾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조사했고, 2009년 뉴욕에서 문정왕후 어보 반환의 결정적 단서인 ‘미국 국무부 문서’를 찾아냈다. 문서에는 6.25 전쟁 당시 미군 병사에 의해 조선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왕과 왕비 어보 47개가 약탈됐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환수를 위한 결정적 증거를 찾았지만, 환수를 이루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원활한 조사를 위한 해외체류비용 등이 문제였다. 이를 지원한 것이 봉선사 사부대중이었다. 장기 체류 당시에는 미국 뉴저지 보리사, 뉴욕 원각사, 미주 불교문화원 등의 도움이 있었다.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도 민족 문화재 환수라는 명분에 공감해, 공동 성명서와 반환요청서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3년 9월 미국 소장처인 LA주립박물관에서 문정왕후 어보에 대한 반환 결정을 내려진다. 하지만 이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혜문 대표에 따르면 불자인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은 한미 수사 공조를 통해 국새와 어보가 반환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이를 통해 환수를 위한 행정적 기틀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혜문 대표는 “문정왕후 어보 반환은 봉선사를 중심으로 하는 조계종과 불자들, 미주 불교계, 북한 불교계 등이 10년에 걸친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며 “수년간의 운동을 지원하고 결정적 역할을 해 주신 불자들의 역할은 아무리 칭찬해도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혜문 대표는 불교를 중심으로 한 문정왕후 어보 반환을 기념하는 행사를 계획 중이다.  실제 조선불교 중흥에 나섰던 문정왕후와 허응 보우 스님은 1565년 4월 8일 회암사서 무차대회를 봉행해 새로운 도약을 기하려 했으나, 문정왕후가 무차대회를 3일 앞두고 사망해 실현되지 못했다.

현재, 혜문 대표는 문정왕후가 이루지 못했던 무차대회와 어보 반환 기념전을 회암사서 개최하자는 제안서를 7월 3일 양주시청에 제출한 상황이다.

혜문 대표는 “‘500년 전 문정왕후와 허응 보우 스님의 꿈을 이루자’는 게 문정왕후 어보 반환운동을 진행했던 진정한 이유”라며 “부처님 앞에 문정왕후 어보를 다시 모시고 왕과 백성이, 부자와 가난한 자가 모두 평등한 불국토를 기원하는 법회와 특별전이 회암사에 열리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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