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정토종 제7조 성상대사(省常大師)

〈승가 불조도영〉 中 성상 대사 진영

성상대사는 한 번 소리 내어 염불할 때마다 입에서 광명이 나왔다.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심지(心地)를 북돋우며 극기(克己)하기를, 낮이나 밤이나 중단하지 않았다. 우연히 병이라도 만나면 문득 무상(無常)을 떠올리고 일심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왕생극락을 구하였다. - 〈참운법사집(懺雲法師集)〉

 

염불결사 명칭 ‘정행사’

〈화엄경〉 사상이 근간

사경 보급 등 정토포교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불신의 마음

선도 대사와 소강 대사는 염불할 때마다 입에서 화신불이 출현하고, 성상(省常: 959-1020) 대사는 염불할 때마다 입에서 광명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러한 화신불과 광명은 신심이 아주 깊거나 염불을 많이 한 사람들에게만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천지에 가득한 부처님의 광명을 볼 수 없고, 또 부처님의 진실한 공덕을 체득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 우리의 업장이 깊고 무겁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믿지 못하는 마음이 가장 큰 장애이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지혜와 실상(實相: 우주와 인생의 진실한 모습)에 대해 완전히 미혹되어 있기 때문에, 경전과 조사스님들이 베푼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만약 깊이 믿고서 의심하지 않고 성실하게 염불한다면 누구나 상응(相應)할 수 있으며, 나아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윤회 벗어나는 극락행 티켓 예매하라

부처님의 광명은 원만하여 어떠한 광도에도 모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장애가 없다고 말한다. 중생과 부처의 인연이 깊으면 한 생에 제도될 수 있지만, 인연이 얕은 사람은 보다 깊게 하도록 도와준다. 아예 인연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해주는데, 우연히 한마디의 아미타불을 듣게 되면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 우리는 금생에 다행히 불법을 만났으니 부처님과 인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윤회를 벗어나는 특별법문인 정토법문까지 접했으니, 가장 수승한 인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깊어진 불연을 근거로 이번 생에 생사윤회로부터 해탈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믿음(信)과 발원(願)과 명호 수지(持名)에 더욱더 힘써야 한다. 이번 호에서는 정토종 제7조 성상 대사의 삶과 수행을 공부하면서 삼계를 벗어나 정토에 화생하는 극락행 티켓을 예매해 보자.

 

천태지관 닦다가 정토수행으로 전향

〈정토성현록〉 등에 따르면, 성상 스님은 송나라 절강성 항주(杭州) 땅에 계시던 스님이시다. 성은 안씨며 자(字)는 조미(造微), 전당(錢塘) 사람으로 7세에 출가하여 17세에 구족계를 받으셨다. 의지가 견고하여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키고 〈대승기신론〉에 통달하였으며, 천태지관(天台止觀)을 위주로 수행하였다.

송나라 태종 순화(淳化: 990년) 때에 항주 서호(西湖)의 소경사(昭慶寺)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경학(經學)을 익히던 중, 여산(廬山) 혜원(慧遠) 법사의 정토문(淨土文)을 보고 크게 발심하셨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염불법보다 나은 것이 없음을 확신하고 불철주야 전수염불(專修淨業)에 매진하였다.

 

백련결사 본받아 정행사(淨行社) 결성

그 후 스님은 소경사에서 정토종 초조 혜원 법사의 역사상 첫 염불수행결사인 ‘백련결사’를 본받아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했다. 얼마 뒤 백련사를 ‘정행사(淨行社)’로 개명한 스님은 서방정토 왕생을 발원하는 염불행자들을 모아 전적으로 정토수행을 해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지도했다. 이때 결사의 명칭을 ‘정행사’로 바꾼 것은 〈화엄경〉 ‘정행품(淨行品)’의 종지를 따른 것이었다.

‘정행품’은 〈화엄경〉의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및 십지(十地) 가운데 십신위(十信位)의 수행단계에서 실천하는 청정한 수행을 강조한다. 이 품의 요지는 일상 생활 속에서 매 순간 생기는 일에 따라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단속하고 수행자를 성장시키는 원력을 세우는 내용이다. 여기서 정토행자의 ‘원력’은 서방정토에 왕생하여 성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보리심’을 담고 있는데, 보리심을 일으키면 번뇌를 지닌 채 보살이 된다. 이른바 대심범부(大心凡夫: 큰마음의 범부)로서 보살도를 실천하는 정토수행을 해나가겠다는 것이 성상 스님의 원력이었으리라.

 

재상 왕단 등 천여 명 모여 전수염불

범부가 업을 짊어진 채로 극락에 왕생하여 횡으로 삼계를 벗어난다는 ‘대업왕생 횡초삼계(帶業往生 橫超三界)’의 새로운 가르침을 접한 많은 구도자들이 속속 ‘정행사’에 모여들자, 대중이 순식간에 천여 명이나 모였다. 그 중에는 스님이 80여 명, 재상 왕단(王旦: 文正公)을 상수로 한 세속의 이름 높은 거사들이 120여 명이나 되었으며, 그 나머지는 신심이 지극한 일반 신도들이었다. 그 옛날 여산 백련사가 다시 재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효 대사는 〈아미타경소〉에서, 범부가 곧바로 삼계고해를 벗어나 무상보리에 퇴전(退轉)함이 없는 지위를 얻는 것에 정토법문의 종취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크나큰 의도는 바로 이 믿기 어려운 정토법문을 연설하시기 위함이라고 강조하셨다. 〈대승기신론〉에 따르면, 불생불멸인 법성의 이치를 요해하고 자심에 갖춘 법신을 조금씩 보기 시작하는 10주위(10住位: 수행계위 52위 중 42위부터 32위까지)의 지위에 오르려면 이 예토(穢土)의 초신(初信)의 지위에서부터 무려 1만겁동안 퇴전 없이 수행하여 10신(信)을 원만히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 예토에서 생사를 거듭하면서 의식의 진화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성불의 지름길 안내하는 구원의 메시지

영명연수 선사는, 이러한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삼계에서 몸을 받고 버릴 때 겪는 고통과 충격으로 인해 그동안 수행해서 확보한 견처와 경계를 잃어버리거나 자신의 근본서원을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했다. 이러한 법문을 살펴볼 때, 모든 구도자를 쉽고 빠르고 성불케 하겠다는 아미타부처님의 본원(本願)과 서방정토에 대한 믿음ㆍ왕생발원ㆍ염불행 만으로 임종과 동시에 업을 지닌 채 정토에 화생하여 불퇴전지 보살이 된다는 정토법문은 구도자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지나 다름없었으리라.

 

염불ㆍ절하며 화엄경 혈서 사경

특히, 성상 스님의 신심은 그 누구도 따를 수가 없을만큼 깊었다.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며 후래 중생들을 위하는 뜻에서 〈화엄경〉 ‘정행품’을 사경하는데, 당신 몸의 피를 내어서 그 피로 ‘정행품’을 다 썼다. 사경할 때에는 언제나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 향을 사루고는 지성껏 예배 드린 후 시작했다. 정중히 꿇어앉아서 경문을 쓰시되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합장하며 세 번씩 돌고 나서는 ‘아미타불’을 세 번씩 염하고 나서 온 정성을 다해 썼다.

스님은 경전 사경과 더불어 법보시와 불상 조성을 통한 정토포교에도 심혈을 기울이셨다. 사재를 들여 경을 천 권 찍어서 천 사람에게 나눠주며 발심해서 염불을 하게끔 권장했으며, 귀한 전단 향나무를 구해 지극한 성심(誠心)으로 아미타여래의 불상을 조성했다. 스님은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저와 대중이 오늘부터 보리심을 발하여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보살행을 실천하고 이 보신(報身)이 수명을 다할 때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하소서.”라는 발원을 하였다. 그리고는 서방정토의 교주이신 무량수불을 지성껏 받드시되 매일 세 번 예배공양 올리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봉행하며 염불수행에 전력을 다했다.

 

아미타불 접인 받고 왕생하다

송나라 진종(眞宗) 천희(天禧) 4년(1020) 정월 12일이었다. 그날은 목욕재계 하시고 새 옷을 갈아 입고는 고요히 앉아 염불하시더니 문득 말씀하시기를, “아미타부처님께서 왕림(枉臨)하시었도다” 하시고는 공손히 예배 드리고는 이 세상을 떠났다. 그 순간 온 대지가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이를 본 대중은 슬픔과 환희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스님의 세수는 62세였다. 스님의 전신(全身)은 영은산(靈隱山) 조과(鳥?) 선사의 탑묘 옆에 모셔졌다. 세간에서는 그를 ‘전당 백련사주’(錢塘白蓮社主)라고 불렀으며, 소경원정법사(昭慶圓淨法師)란 법호로 칭하기도 했다. 그는 훗날 연종(蓮宗: 정토종)의 제7조로 추대된다.

 

진여본성의 무량한 광명이 ‘아미타불’

우익 대사는 〈불설아미타경요해〉에서 “아미타불의 광명과 수명과 명호는 본래 중생을 근본으로 하여 건립한 것임을 응당 알아야 한다. 중생과 부처가 평등함으로써 명호를 수지한 사람으로 하여금 광명과 수명이 부처와 다름이 없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석가세존은 우리들로 하여금 아미타불의 무량한 광명과 수명을 철저하게 증득한 진심ㆍ본성을 자주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아미타불’이란 이름을 지어 부르게 했다는 법문이다. ‘아미타불’은 바로 진여본성의 무량한 광명과 수명의 명칭인 것이다. 무량수불ㆍ무량광불ㆍ아미타불은 모두 진여본성의 명칭이기에, 진여일심을 떠나면 명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불자라면 선(禪)과 염불이 둘이 아닌 차원에서 자부심을 갖고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들이 하는 염불을 십지보살도 늘 놓치지 않고 있다는 법문을 기억하며, 자나 깨나 ‘나무아미타불’로 일향전념(一向專念)하시기를 발원한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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