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종교학적 이해

최종석 지음|민족사 펴냄|2만 8천원

종교는 대단히 진지하고, 근엄하고, 엄숙하고,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미지를 가졌다. 따라서 종교적 교조(敎祖)나 절대자에 대한 이미지도 마찬가지로 근엄한 모습으로 상상 된다. 종교 속 인간도 유희적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나 명랑한 호모 리센스(homo risens)가 아니라 근엄한 인간인 호모 그라비스(homo gravis)를 연상 한다.

종교서 웃음은 진정한 ‘종교성’ 회복

웃음은 종교 간 모든 갈등 해결 방안

붓다의 웃음이 갖는 의미 정리 ‘주목’

그러나 앞으로 종교 간 배타주의를 넘어 서로 인류 공동의 문제를 짊어지고 해결해가야만 하는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붓다의 자비 웃음과 예수의 사랑 웃음을 회복해 시대가 요구하는 종교적 실천을 이룰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보통 사람들은 종교를 성스러운 것이라 여기고, 엄숙하고 경건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종교를 웃음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한다. 인간에게 벌 주는 무섭고 엄한 존재, 인간을 넘어선 지고한 일자(一者)에 대한 외경심으로 사람들은 종교를 인간의 삶과는 동떨어진 어떤 것으로 여긴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양쪽 모두에 해당한다.

〈불교의 종교학적 이해〉의 저자 최종석 금강대 응용불교학과 교수는 이런 종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의 제 1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글에서 ‘붓다와 예수의 웃음’이란 주제를 통해 종교서 웃음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성’ 회복으로 보고, 종교서 웃음의 위상을 적극적으로 복권한다. 웃음이야말로 종교 간에 팽배한 배타주의를 비롯한 모든 갈등의 해결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책서 저자는 붓다의 웃음과 예수의 웃음을 비교하며, 예수의 웃음이 자기 비움서 오는 무화(無化)의 웃음, 해방과 사랑의 웃음이라면 붓다의 웃음은 무아(無我)의 해탈과 자비의 대자유를 보여 주는 웃음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붓다는 무명을 깨친 자이기에 무명의 삼독을 극복했으니, 진에인 화를 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전서 붓다는 끊임없이 웃고 있다. 이에 더해 붓다는 웃을 수 있을 때 웃지 않는 사람을 사특한 사람이라 할 정도로 웃음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경전 속에는 붓다가 미소 짓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한국서 붓다의 미소에 대한 연구로는 불상에 대한 미학적 연구가 전부다. 이 글은 붓다의 웃음이 갖는 의미를 정리하고 밝힌 최초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신약성서서 예수가 웃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웃음은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이 복음서 안에서 십자가의 비극과 그 직전의 사건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불교의 ‘무아(無我)’개념과 그리스도교의 자기비움(kenosis)은 이런 자기 부정을 전제 조건으로 해서 나올 수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서 죽음을 맞은 것도, 붓다가 춘다의 공양을 받아들이면서 입멸을 맞은 것도 이런 사랑의 완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책서 또 하나 주목한 것이 과학과 종교의 관계이다. 저자는 지금껏 종교서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부정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즉 과학의 발달은 인간성 파괴와 함께 생태계의 파괴를 조장시킨 주된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부정적 시각으로 일관돼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서 과학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시각이 교정되고 있으며, 오히려 일부 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의 창조적 만남의 필요성을 주장 한다.

저자는 21세기 과학문명 시대에 종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고찰하며, 과학시대의 종교는 비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모습을 벗어나는 탈신화화의 과정을 계속해서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신화적이며 상상력으로 이뤄진 교리는 탈신화화의 작업을 더욱 요청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교리와는 거리가 먼 지동설과 진화론을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던 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본다.

이렇게 과학시대의 종교는 교리체계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을 요청받고 있다. 예컨대 뇌과학의 발달로 인해 신체와 영혼이라는 이원론적 인간관에 대한 새 이해가 요구되고, 유전자공학의 발달로 인간복제에 대한 다양한 논란과 윤리 문제가 대두되면서 윤회와 업에 대한 진지한 해석이 요구된다. 이처럼 과학의 발달과 함께 기존의 종교 교리체계는 새롭게 정비돼야 한다. 기존에는 종교서만 다루던 주제들, 즉 영혼이나 내세에 대한 주제들이 이제는 종교와 과학의 융합을 통해 해석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에 더해 저자는 이러한 과학시대에 동양의 종교 전통과 근대 문명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들이 서구를 중심으로 연구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동양의 종교 전통 중에서도 특히 불교의 가르침은 매우 과학적이고, 과학시대의 미래지향적 종교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과학격의불교’를 통해 불교 교리의 과학적 해석의 단초를 열었을 때 가능하다. 저자는 과학시대의 불교는 과학적으로 대응하고, 과학적인 성과를 포괄해 과학적인 은유와 상징을 펼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불교를 ‘과학격의불교’라는 조어(造語)로 명명했다. 그는 과학격의불교는 과학적으로 불교를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과학적 연구 성과에 대한 해석과 함께 그러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근거를 불교의 가르침서 제공한 것까지 포함한 것으로 보았다. 저자는 과학시대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바탕으로 과학과 불교의 창조적 융합을 이룬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다.

불교의 자비심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도, 식물뿐만 아니라 돌·물·흙에게도 미친다. 저자는 이 자비의 생태윤리가 인간중심적 사고서 야기된 지구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생명체들이 공존 공생 하는 21세기의 시대적 가치로 받아들여져야 할 종교적 윤리임을 강조한다. 인간중심적 환경윤리가 생태중심적 종교윤리로 승화돼야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종교적 당위인 것이다. 이에 저자는 ‘생태보살’ ‘환경보살’이란 조어를 통해 자연환경 회복에만 원(願)을 세운 보살이 아니라, 인간 환경 회복에도 원을 세운 보살상을 제시한다.

저자는 생태보살의 수행, 즉 생태보살도가 각 개인의 일상에서 이루질 때 청정불국토가 완성된 것으로 보고, 불교 해탈의 생태적 해석을 통해 이 시대 해탈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생태의식의 종교문화화가 이 시대의 구원이요, 해탈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종교학적 이해〉는 종교가 발딛는 현실적 제반 조건의 변화에 대한 폭넓고도 예리한 인식을 통해 나온 책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종교에 대한 기존 해석의 틀을 깨고,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하고, 과학만능시대의 불교의 인간관을 새롭게 조명하며, 생태계 문제에 대한 불교적 해석의 지평을 넓힌다. 뿐만 아니라 불교가 동북아시아로 전래되면서 변용되는 과정을 살피고 현대사회 속에서 불교의 위상과 미래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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