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기요미즈데라(淸水寺)

기요미즈데라의 입구인 인왕문. 인왕문 앞으로 수많은 기념품·고미술 가게 있는데 매우 정겹다.

교토 히가시야마(東山) 36봉 중 하나인 기요미즈야마(淸水山) 서쪽 중턱에 있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는 정말 매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곳이다.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에 즐비하게 늘어선 도자기나 잡화, 과자 등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를 구경하며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재미있다. 이는 기요미즈데라를 찾는 즐거운 요소 가운데 하나를 차지한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기요미즈데라는 특히 벚꽃이 피는 봄과 단풍 절정기인 가을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봄과 가을에 몰려드는 인파를 피하기 위해 나는 여름이나 겨울에 한적한 기요미즈데라를 그리며 자주 가봤다. 그런데 요즘 기요미즈데라는 계절도 뛰어넘어서 평일 휴일도 상관없이 붐비는 곳이 되었다.

日 교토 관광의 필수 코스
세줄기 약수 ‘오토와노타키’
고미술·기념품 거리 등 ‘유명’

작은 가문의 사찰로 시작해
풍파 겪으며 파괴·재건 반복
민초들의 원력으로 되살아나


근래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인기몰이로 교토의 필수 관광코스가 된 덕분이다. 기요미즈데라에서 일본 전통 옷인 기모노를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것 같다.

기요미즈데라 창건 이야기는 나라시대 후반 나라 고후쿠지 스님이었던 겐신(賢心, 엔친으로 개명)부터 시작된다. 겐신이 아스카에 있는 고지마데라(小島寺)의 스님이 되어서 학문과 수행을 닦았다. 778년 부처님오신날인 4월 8일, 꿈에 노인이 나타나 “나라를 떠나 북쪽으로 가라”고 말했다.

꿈의 계시를 따라 북쪽으로 가봤더니 요도가와(淀川)에서 신기한 금색 물의 흐름을 발견했다. 금색 물의 수원을 찾아가기 위해서 더 앞으로 나아가봤다.  기요미즈야마 오토와노타키(音羽の )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 상류에 낡은 암자가 있고 거사가 있었다. 거사가 겐신한테 말했다. “나는 동국(東國)에 수행을 하러 간다. 당신이 기요미즈야마의 나무로 천수관음상(千手觀音像)을 새기고 여기서 사찰을 건립해 안치하라”고 말한 뒤 거사는 홀연히 동쪽으로 가버렸다.

겐신은 거사가 관음의 화신이라고 믿고 그를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거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겐신이 거사의 말을 따라서 암자에 거주하여 관음상을 새기고 암자의 작은 법당에 봉안했다. 그러나 훌륭한 사찰을 건립하는 것이 겐신 한 사람의 힘으로 실현되는 일이 아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사람이 도래인의 후손인 다이나곤(大納言) 사카노우에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였다. 다무라마로는 임신한 아내에게 몸에 좋은 것을 먹이려고 기요미즈야마에 들어와 사슴을 사냥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샘물을 찾아봤더니 오토와노타키 폭포를 찾았고 거기서 겐신을 만났다. 겐신에게 관음의 불살행(不殺生)과 대비(大悲)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다무라마로는 큰 감동을 받아서 둘이 힘을 합쳐 함께 사찰을 건립하기로 약속했다.

다무라마로가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아내는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려고 사슴을 살해한 죄를 참회하기 위해 사가를 제공해 겐신이 제작한 관음상을 안치할 수 있는 사찰을 세우자고 했다. 780년에 기요미즈데라는 이렇게 사카노우에 가문의 사찰(氏寺)로 시작했다.

기요미즈데라 순례의 하이라이트 무대의 전경. 예불 공간이면서 본존에게 음악과 예술을 공연하는 자리기도 했다. 사진제공=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8세기 후반에 이렇게 창건된 기요미즈데라였지만 본존을 안치한 본당도 좁고 작은 가문사찰에 불과했다. 805년 다무라마로가 조정에게 사찰 부지를 하사받고 간무 천황의 고간지(御願寺, 황실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찰)로 지정되었을 때부터 본격적인 사찰이 되었다. 810년에 호국의 도량으로 지정되었다. 천황의 고간지, 호국의 역할을 하는 사찰로 걷기 시작한 기요미즈데라는 나라 고후쿠지 말사가 되었다. 당시 교토 불교에서 큰 힘이 있는 사찰이 히에이잔(比叡山)엔랴쿠지(延曆寺)였다.

헤이안시대 후반부터 고후쿠지와 엔랴쿠지는 종교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기요미즈데라 지배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다. 엔랴쿠지 승병(僧兵)들이 몇 번이나 기요미즈데라를 습격해 불을 질렀다. 결국, 파괴와 재건이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그래도 기요미즈데라가 피해를 입을 때마다 재건될 수 있었던 것은 서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밤낮 상관없이 본존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신도가 있었고 심지어 사찰에서 숙박하며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요미즈데라는 고전 문학이나 가부키 등 전통 예능에도 자주 나온다. 잦은 대화재로 기록 문서를 많이 잃은 기요미즈데라에겐 이런 작품이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사찰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가 되었다.

1467년에 시작한 오닌노란(應仁の亂)이라는 큰 전란이 벌어졌을 때 기요미즈데라는 완전히 소실되어 버렸다.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당시 큰 평가를 받던 간아미(願阿彌)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오닌노란 전부터 권선으로 모은 자금으로 다리를 수축하고 난젠지(南禪寺) 불전 재건에도 성공했었다. 간아미 스님이 고후쿠지로부터 권선을 하는 자격을 얻어 기요미즈데라 재건에 진력을 다했다. 간아미 스님을 중심으로 한 권선 덕분에 1478년에 범종이 다시 주조되고 6년 후에 본당도 재건되었다. 이후 에도시대에 들을 때까지 전란이 잦은 상황에서도 기요미즈데라는 장군에게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1629년에 화재로 인왕문, 종루 외에는 당탑이 거의 다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 때 에도 바쿠후(幕府)의 3대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거액의 돈을 내고 가람이 재건되었다.

현재 기요미즈데라 주요 당탑은 기본적으로 그 때 복원된 것이다. 그리고 기요미즈데라 스스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비불(佛)인 본존을 유료로 공개했더니 공전의 참배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33년마다 한 번씩 공개되는 본존이 2000년에 공개되었고, 또 2008년과 2009년에 특별 공개를 했다. 평소에는 비불인 관음보살을 볼 수 없지만 관음보살 권속인 28부중상(二十八部衆像)을 예불할 수 있다. 본당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지만 역동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볼거리가 많은 기요미즈데라 답사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본당에 설치되는 무대이다. 무대는 예불 공간이기도 하고 그 말대로 본존 관음보살에게 바치는 전통 예능을 공연하는 공간이기도 한다. 창건 당시의 본당에는 무대가 없었으나 참배객의 증가에 따라 무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언제 무대가 세워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헤이안시대 후반 문학 작품에 무대가 등장하고 있다. 무대 높이 약 13m, 넓이 약 190㎡, 무대를 떠받치는 나무 기둥이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강고히 조립되어 있다. 벼랑에 세워진 웅대하고 호장한 무대 모습을 보면 인간의 기술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일본어 속담 중에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셈을 치고’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다. 현재는 큰 결단을 내리고 일을 할 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인데 원래는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 실제로 무대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있었다.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까지 뛰어내린 사건이 235건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2번 시도해 2번 성공한 사람도 있었다. 놀랍게도 생존율이 85.4퍼센트였다고 한다. 성공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도한 사람들은 거의 다 서민이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 이 습관이 미신에 의한 악습이라고 금지되었다.

기요미즈데라의 명물 ‘오토와노타키.’ 가는 세 물줄기는 학업, 연애, 장수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무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지만 무대에서 먼 앞산에 보이는 순산을 기원하는 곳인 고야스노토(子安の塔) 쪽에 가서 본당과 무대를 보는 것을 권한다. 소개로 나오는 기요미즈데라 사진은 거기서 찍은 것이 많다. 안타깝게도 지금 수리중이어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못 들어가는 곳도 있지만 사찰 경내 답사는 가능하다

고야스노토를 무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오토와노타키에 나온다. 가는 물줄기 셋이 각각 학업, 연애, 장수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사람이 줄을 서서 물을 마시는데 사찰에는 셋 다 효험이 똑같다는 설명이 있다. 경내 북쪽에 있는 조주인(成就院)은 원래 간아미 스님의 암자였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조주인이 평소에는 비공개이지만 특별 공개할 때가 있다. 올해는 11월18일부터 12월3일까지 공개할 예정이다(입장 시간 9시~16시, 18시~20시 30분).

기요미즈데라를 방문할 때 요즘 사회 문제로 이슈가 될 정도로 버스 타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버스를 타지 말고 전철을 권한다. 전철역에 내려서 비탈길을 즐기면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게이한(京阪) 기요미즈고조역에서 내리면 고조자카(五?坂)나 자완자카(茶わん坂)를 경유해서 가게 되고 게이한 기온시조역이나 한큐(阪急) 가와라마치(河原町)역에서 내리면 니넨자카(二年坂), 산넨자카(三年坂)를 경유해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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