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보면 서러운 그 이름이여

어머니 이야기

성공한 사람들은 통계학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을 어머니로 꼽는다. 가장 좋은 학교는 가정이라는 대답도 우선순위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은 어머니, 나의 어린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들을 두어 개 옮겨와야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장에서 축구놀이하다 학교 교무실 유리창을 깨트린 사건이 벌어진다.

집은 가난했고 유리창 값이 걱정되어 주눅 든 아이에게 어머니는 방문을 잠그게 하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 너에게 하는 말은 형이나 누나에게도 친구나 선생님에게도 비밀로 해야 한다. 어머니의 태몽이야기를 들려 줄 테니 굳게 믿고 정직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꿈이다. 내가 너를 잉태할 무렵 밤이 되면 꿈을 꾸는데 청룡, 황룡이 일주일동안 품안으로 날아들었고 마지막 날 밤 꿈에는 하늘에서 우레와 같은 큰 목소리로 ‘이 아이가 장차 성장하면 전라도 절반이 이 아이의 몫이니라’” 하셨다는 말씀이셨다. 그러므로 오늘은 비록 가난해 유리창 값 걱정으로 주눅 들어 있으나 내일은 전라도 절반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힘찬 설명이셨다.

해외에서 15년을 머문 후 어머니의 임종도 지켜볼 수 없었던 나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어색하게 비밀스런 어머니의 태몽이야기를 넌지시 형에게 들려주었다. 머리만 깎지 않았으면 지금쯤 전라도 절반의 성주(城主)가 되어있을 사람이라며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마음은 하염없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고 있었다.

그때 형이 미소를 머금고 말하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형에게도 매우 은밀하게 비밀을 지키라며 태몽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너를 잉태할 무렵 밤이 되면 꿈속에 청룡, 황룡이 한 달 동안 어머니의 품안으로 날아드는데 마지막 밤의 꿈에는 하늘에서 우레와 같이 큰 목소리로 ‘이 아이가 장차 성장하면 이 나라 절반이 이 아이 몫이니라’ ” 하셨다는 것이었다. 일주일과 한 달의 차이, 전라도 절반과 이 나라 절반의 엄청난 차이, 형제는 울고 있었지만 동생은 의문부호를 남기며 추억의 숲으로 어머니를 따라갔다.

역시 초등학교 때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몇 푼을 꺼내 몰래 쓴 후 어머니와의 힘겨운 대면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의 회초리는 매섭다. 무조건 때리는 것이 아니라 조곤조곤 따지고 물어 잘못을 인정하면 잘못 저지른 만큼 회초리는 나의 종아리에 박혀왔다. 그날도 어머니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회초리를 준비해 오라고 말씀하셨다. 부엌에서 잘 부러질 회초리 두어 개를 골라 긴장된 모습으로 어머님 앞에 섰을 때이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며 회초리로 어머니의 종아리를 세차게 때리라는 것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힘주어 또렷하게 그러나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용주야! 너는 착하고 똑똑한 아이다. 어머니가 가난해 아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용돈을 미리 살펴주지 못한 죄가 크구나.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허락 없이 돈을 가져갈 때 아들의 마음고생은 얼마나 컸겠느냐. 아무리 어머니가 가난해도 아들의 마음고생 하기 전에 용돈의 필요함을 대화로 풀어가지 못한 것은 어머니와의 대화문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들아, 가난하고 배고프고 헐벗고 필요한 물건이 많아도 떳떳하게 당당하게 굳세게 정직한 노력으로 이겨내고 이루는 아름다운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용주는 향봉 스님의 호적에 담겨있는 이름이다. 나는 이제 늙디늙은 노승(老僧)이 되어 이 글을 쓰며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고 있다.

어머니는 나에 있어 또 한분의 부처님이자 영원한 고향의 안식처이다. 인도와 네팔, 티베트와 중국에서 머문 15년은 길고 험한 고행자의 길이었다.

어머니의 교훈적인 말씀들은 해외까지 따라와서 언제나 버팀목이 되고 디딤돌이 되어 생명의 키를 키워주셨다. 어머니! 불러보면 서러운 게 이리도 많습니다. 어머니는 저에 있어 부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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