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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수행자’ 20년 이제 회향합니다상덕 스님 (옥수종합사회복지관장)
  • 글 박아름ㆍ사진 노덕현 기자
  • 승인 2017.06.2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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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최초 비구니 관장으로서 옥수종합사회복지관에 취임한 상덕 스님이 6월 29일 정년 퇴임한다. 20년간 불교복지 자비행을 회향하는 상덕 스님을 6월 21일 만났다.

1997년 옥수사회복지관장 취임
불교계 ‘최초 비구니’ 관장으로
부담 있었지만 ‘本’된다는 사명
하루 3~4시간 자며 소임 몰두해
20년 불교복지 발전 기틀 닦아

지역민과 함께하는 복지관으로
복지부·서울시서 최우수 평가
서울시복지관협회 이사 등 역임
지역사회 복지계와 소통 활발
교계 네트워크 형성에도 ‘앞장’

불교복지 역사의 ‘산증인’
미래 발전방향 고민도 깊어
‘복지원’ 설립 등 방안 조언
“불교복지 인재양성 중요”
퇴임 후도 지속 관심 ‘약속’

 

“집이 근처라고요? 그럼 부모님 모시고 우리 복지관으로 와요. 어르신들 오면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데!” 옥수동에 산다는 기자에게 옥수종합사회복지관장 상덕 스님이 대번에 하신 말씀이다. 퇴임을 일주일 여 앞둔 가운데서도 복지관을 살뜰히 챙기는 마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상덕 스님은 1997년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최초 비구니 관장으로서 옥수종합사회복지관을 맡았다. 그동안 옥수종합사회복지관은 ‘부처님의 자비구세 보살정신으로 불국정토를 이 땅 위에 건설한다’는 기조아래 복지부 및 서울시로부터 최우수 운영평가를 받으며 불교복지를 선도해 왔다.

이는 상덕 스님의 운영방침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일 하러 모였으니 웃으며 일해야지요”라고 말하는 상덕 스님은 이용자들의 편의와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20년간 매일을 하루 4~5시간만 자면서 복지관 운영과 사중 소임에 몰두했다고 하니, 그 말만 들어도 그간의 정성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불교복지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산증인인 상덕 스님을 정년퇴임을 일주일 여 앞둔 6월 21일 만났다.

 

Q. ‘비구니 최초 복지관장’ 스님으로서 20년 임기를 마친 후 정년퇴임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심정이 어떤가요?

많은 수행의 길 중에서도 ‘복지 수행자’길을 택하고, 하루하루 열과 성을 다해 복지관을 운영하다보니 벌써 강산이 두 번 변했습니다.

원만한 회향을 맞이할 수 있던 것은 우리 직원들과 이용자, 봉사자와 후원자, 또 여러 복지협회 단체 및 재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향기로운 옥수복지’를 일굴 수 있도록 도움 주신 여러 인연분들에게 감사합니다.

Q. 처음 옥수복지관에 들어섰던 그 날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럼요. 임명장을 받아들고 1997년 6월 처음 옥수복지관을 방문했을 때는 아직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아 내외부가 어수선한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 큰 복지관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과 두려움이 생겼지만, 이내 ‘복지수행에 뜻을 두고 지금까지 정진한대로 한다면 잘 해낼 거야’라는 용기가 들었습니다.

그 후 6개월간 빈 건물에 각 방을 나누고, 직원을 뽑고, 집기들을 배치하는 일부터 차근차근 했습니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셈이지요. 그땐 참 고생스럽기도 했는데, 이젠 보람과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Q. 당시는 불교복지가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비구니 스님으로서 최초로 복지관장 소임을 맞는데 부담은 없으셨는지요?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무엇입니까?

‘최초’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부담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제가 만들어갈 하나하나가 훗날 후배들에게 본(本)이 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역사를 써간다는 사명으로 임했습니다.

특히 당시는 IMF로 전 국민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복지관 운영도 지역민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전개했습니다. 지역민들이 복지관에서 다양한 사회 교육 및 무료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그저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Q. 20년간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일이 있었죠. 우리 직원들이 결혼하고, 또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제가 다 흐뭇했어요.

또 어린이집 아이들 중 한 명이 놀다가 다칠 때면 제가 다 마음이 철렁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좋은 일, 어려운 일, 궂은일들이 반복된 7000여일이 모두 소중한 날들이었습니다.

 

Q.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이용자 할머니 중 한 분이 시설에서 인절미를 드시다가 목에 걸려서 돌아가신 일이 있습니다. 기도가 막힌 직후 병원으로 옮겨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도 얼마나 놀라셨는지 댁으로 귀가 후 돌아가셨어요. 전전긍긍 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가족 분들에게 더욱 감사했던 것은 복지관을 탓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다고 눈물지으셨어요. 생전 할머니가 옥수 복지관을 이용하시면서 그렇게 행복해하셨다고 해요. 그 얘기를 듣는데 보람을 느끼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복지에 뜻을 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1977년 대학을 졸업하고 미타사와 정수암을 비롯한 많은 지역단체에서 지도 법사로 활동할 때입니다. 복지 저변을 넓히기 위해 불교계 외부와도 접촉하다보니, 이웃종교(개신교·천주교 등)가 사회 깊숙이 침투해 의료·복지·교육 3대 분야를 리드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종교인이 됐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복지행을 실천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복지관을 수탁운영하며 불교적 색채를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스님이 관장으로 일하는 자체가 포교라고 생각합니다. 이용자들에게 ‘불교=함께하는 종교’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불교복지가 일반적인 복지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일반사회복지는 국가와 지자체의 복지관 운영법규에 따라 운영하며 지역민들의 복지를 도모하고 함께 잘사는 이상복지사회 건설에 목적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불교복지는 스님들과 불교계 전문가들이 자비구세 보살 정신을 바탕으로 현대의 복지관 운영 사업 법규에 따라 실천하는 복지행 전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인도하는 실천 정신은 상통하지만, 그 궁극적 목적이 다릅니다. 불교복지는 현실의 복지 욕구 충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과 행복, 열반락(涅槃樂)에 이르기까지 인도하는 것입니다.

 

상덕 스님이 옥수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과 자신의 저서 〈자비복지 감로수로 꽃피우다〉를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Q. 불교복지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중요한 과제로 꼽힙니다. 종교계 산하 복지시설 종사자로서 갖춰야할 기본 덕목은 무엇일까요?

종교계 뿐 아니라 모든 복지인들은 사람을 진실로 좋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복지는 그야말로 ‘사람을 위한 일’인데 사람을 진실로 좋아하지 않고서 어떻게 진정한 복지를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복지=직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복지인으로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의 인본주의 사상이 온전히 발현돼야 복지를 실천하는 것이겠지요.

 

Q. 스님께서는 시설장협의회 재창립, 비구니복지실천가회 창립 등 불교복지 내에서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노력해오셨습니다. 이러한 네트워크 구성에 특별히 집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복지는 사회 구성원들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부터가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함께해야 비로소 참된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불교복지계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둬왔지만 여전히 네트워크는 튼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복지 1세대로서 후배 불교복지 전문가들의 활동 기반을 닦아주고 싶었습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윈윈할 수 있는 구조 말입니다.

이에 시설장협의회와 비구니복지실천가회를 꾸리고 초대회장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Q. 스님은 서울사회복지관협회 이사, 서울시자원봉사자센터 이사 등 맡으며 지역사회 복지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셨습니다. 복지사업을 실행하는데 있어 지역사회와 소통이 중요한가요?

네, 매우 중요합니다. 현대사회의 복지사업은 한 기관만 내실 있게 꾸려간다고 해서 성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소통 공유하며 협조해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옥수동 지역 외에도 서울시의 다양한 복지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중요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했기에 옥수복지관도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불교의 복지는 지난 20년간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 산증인으로서 한국불교복지의 강점을 평가하신다면 무엇인가요?

불교복지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등불이 그 자체로 강점입니다. 모든 재단과 산하 기간들이 이를 근본으로 원칙성과 보편성, 평등성에 따라 복지를 실천합니다.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진실한 행복과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불교사회복지는 20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역·노인·장애인 등 모든 분야에서 양적인 면에서 압축 성장을 거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기관들이 지자체로부터 최우수 운영 평가를 받으며 질적인 면도 인정받았습니다. 각 분야 협회에서 불교복지사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복지계를 선도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이는 조계종단의 ‘1사찰 1복지시설 운영’이란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계 전체에 사회복지에 대한 인지도를 높임으로써 사찰들의 참여를 이끌었습니다.

 

Q. 보완점은 없을까요? 앞으로 불교복지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종단 내 복지 전문 담당 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현 ‘교육원’과 ‘포교원’처럼 독립된 원(院) 말입니다. ‘복지원’이 개설된다면 불교복지 종사자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자비복지로서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불교발전에 큰 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참 불자’ 복지사 양성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현재는 각 시설마다 개별적으로 공채를 진행해 불교적 정서를 소유한 사람들이 근무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종단 또는 재단에서 ‘불교 복지사 교육원’을 두고 불자 복지인을 양성할 수 있다면 인력 보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Q. 말씀을 들어보니 평소 불교복지 발전을 위해 깊이 고민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생각하신 보완책이 있나요?

생각은 무궁무진합니다.(웃음) ‘불교복지사업 연구소’를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불교적 이념을 갖춘 프로그램과 복지서비스를 연구해 산하 복지관에서 이행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질 때 불교복지는 질적 성장을 거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불교계 산하 복지관 직원들이 긍지를 가지고 힘차게 일할 수 있도록 종단 차원의 포상 제도를 확대해야합니다. ‘불교복지수당’을 책정하는 것도 불교복지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Q. 최근에는 퇴임을 기념해 책도 발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들인가요?

2권의 책을 냈습니다.

먼저 〈자비복지 감로수로 꽃피우다〉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옥수복지관의 소식지 ‘감로수’에 관장으로서 써온 글을 모은 책입니다. 어떤 자세로 복지관을 운영해왔는지, 또 어떻게 발전을 도모했는지 등 20년간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퇴임식 날(6월 29일)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나눠드릴 겁니다. 민족사, 300페이지.

또 하나는 〈붓다복지 합장발원으로 꽃피우다〉입니다. 우리 직원들과 매월 첫 주 금요일 미타사 정수암 법당에서 반야법회를 봉행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복지발원문’을 매번 새롭게 작성해 직원들과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 발원문들 가운데 100여 편을 모아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 두 권의 책에 담긴 저의 마음과 행적들이 후배 복지 관장님들의 복지행로에 작은 불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Q. 퇴임 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는 비록 관장직을 내려놓지만, 제 수행처인 미타사 정수암은 옥수복지관의 지원사찰입니다. 정년퇴임 후에도 불교복지발전을 위해 협조해야할 일이 있다면 성실히 이행할 것입니다.

또한 미타사 사중 운영에 집중할 것입니다. 20년간 소임을 원만히 이뤄낼 수 있던 것은 미타사 대중 스님들과 신도님들의 희생과 도움이 컸습니다. 퇴임 후에는 정수암 업무를 대중 스님들과 나누어 시행하며, 신도들의 신행도 더욱 정성으로 돕겠습니다. 또 개인의 수행과 기도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계획입니다.

상덕 스님은?

1955년 서울 미타사에서 법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8년 구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77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8년 동국대 승가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부터 옥수종합사회복지관장을 맡았으며, 서울숲데이케어센터장·한국비구니복지실천가회 초대회장·서울시 자원봉사자센터 이사·서울시 사회복지관협회 이사·선재방과후 교실 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미타사 정수암 주지, 전국비구니회 서울지회장을 맡고 있다.

 

글 박아름ㆍ사진 노덕현 기자  pak502482@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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