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성념(首山省念:926~993) 선사는 임제 선사의 5대손이다. 처음 출가한 후 각처의 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니며 두타행을 실천하다가 〈법화경〉을 3000번 수지독송 했다. 그래서 그를 염법화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 번은 풍혈연소(風穴延沼) 선사의 회상에 있을 때 어느 날 풍혈연소 선사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수산 스님이 다가가 “스님,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물었다. 풍혈 선사가 대답하기를 “임제의 법맥이 내게서 그만 끊어지는 게 슬퍼서 그러네”하였다. 이에 수산 스님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저라도 스님의 법을 이으면 되지 않을까요?” 했다. 그러자 다시 풍혈 선사는 “자네는 〈법화경〉에 걸려 있어서 되겠나?”고 하였다. 수산 스님도 다시 “이제부터 공부를 다시 하여 스님의 법을 잇도록 하겠습니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각고의 정진 끝에 결국은 수산 스님이 풍혈 선사의 인가를 받고 그의 법을 잇게 되었다. 그가 법을 펼 때 사용한 여러 가지 공안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죽비를 소재로 한 ‘배촉관(背觸關)’ 이야기는 특별히 유명하다.

〈선문염송설화〉에 소개된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수산 선사가 죽비를 집어 들고 어떤 학인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이것을 죽비라고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죽비가 아니라고 하면 등지게 된다. 자, 말해 보게.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이 공안을 ‘배촉관’이라 한다.

150년 후 송나라 대혜종고 선사가 이 ‘배촉관’ 이야기를 들어 대중에게 법문을 했다.

“나는 방에서 항상 선수행자들에게 묻는다. 죽비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죽비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 말을 해서도 안 되며 말을 안 해서도 안 되며, 생각해서도 안 되고 헤아려서도 안 되며, 옷소매를 털고 떠나서도 안 되니, 그 중에 어떤 것도 안 된다. 그대들이 죽비를 빼앗아 부정하려 한다면 내가 빼앗도록 허용하겠지만, 내가 주먹이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주먹이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고 할 경우 그대들은 어떻게 빼앗아 부정할 것인가?”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수산 스님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며느리를 나귀 등에 태우고 시어머니가 고삐를 잡고 길을 간다.”

이것은 ‘수산신부(首山新婦)’로 알려진 공안인데 파설(破說)을 무릅쓰고 의리(義理)를 따져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뜻을 풀어내기도 하였다.

며느리를 나귀 등에 태우고 시어머니가 고삐를 잡고 가는 것은 우선 상식에는 어긋나는 경우다. 당연히 어른인 시어머니를 태우고 며느리가 고삐를 잡고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상식이라는 것도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가령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상상해 본다. 며느리가 뱃속에 애기를 가진 임산부였다. 그리하여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나귀 등에 태우고 간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 상식에 어긋난다고 의아해 하던 마음이 수긍이 되어 지면서 시어머니가 중요하고 고마운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는 어떨까? 상식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상식과 다른 뒤바뀐 상황에서 오히려 상식보다 더한 감동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마음에 감동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부처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제일구의 소식은 아니다.

수산삼구(首山三句)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종용록(從容錄)〉에 의하면 수산 스님이 대중에게 말한다.

“제1구에서 알아차리면 불조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서 알아차리면 인천의 스승의 되며, 제3구에서 알아차리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

이때 어떤 학인이 “화상께서는 몇 번째 구절에서 알아차렸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말하기를 “삼경에 달이 지더니 저자를 뚫고 지나가는구나.(月落三更穿市過)”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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