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의 念佛覺者 列傳 ⑬ 소강대사

“내(석가모니불)가 지금 모든 중생을 위해 이 경법을 설한 것은 그로 하여금 아미타불과 그 국토에 있는 일체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니,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왕생발원으로 누구나 다 구할 수 있느니라. 내가 열반에 든 이후에라도 다시는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 〈무량수경〉

 

〈승가불조도영〉의 소강 대사

 사람들의 번뇌가 무겁고, 고통과 어려움이 많은 오늘의 말법시대에 현실적인 삶의 문제와 더불어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법문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토문의 선지식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토법문이라고 자부한다. 즉, 정토법문은 가장 간단하고 쉬우며 빠르고 믿을 수 있으며, 비할 데 없는 수승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조사스님과 대덕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법문은 “믿기 어려운 법(難信之法)”이라고도 하셨다. 그래서 예부터 정토법문을 일심으로 수지(修持)하여 성취한 이들은 오직 두 부류의 사람만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부류는, 선근이 두터운 사람(善根深厚之人)이다. 이러한 사람은 근성이 영리하고 총명하여 정토법문을 한번 들으면 즉시 깊이 믿고서 정성을 다해 받아들인다. 두 번째 부류는, 복이 있는 사람(有福之人)으로, 여기서 말하는 복은 임시적인 세상의 오욕(五欲)과 육진(六塵)의 복이 아니다. 진정한 복의 과보는 정토 경전을 들은 후에 비록 도리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깊이 믿어서 지성(至誠)으로 이 도리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다.

 

지혜ㆍ공덕 없이는 믿기 어려운 법

그리고, 가장 어려운 부류는 바로 이들 중간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역대 고승ㆍ대덕들이 지혜도 없고 복도 없는 이들을 위해 입이 닳도록 정토법문을 설했건만 믿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하근기나 하는 수행이라고 무시하거나 아미타불과 극락이 방편설에 불과하다고 폄훼한다. 이런 사람들의 과보는 상상하기 조차 두렵다. “만법은 모두 공하지만, 인과는 공하지 않다(萬法皆空 因果不空)”는 도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지금 이 지면을 통해 ‘믿기 어려운 법’을 접한 독자님들은 깊은 선근공덕을 쌓은 분들로서, 정토법문을 잘 몰랐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세히 참구하여 생사해탈의 지름길(捷徑)을 걸으시길 바란다. 이번 호에서는 정토종 제4조 법조 대사의 법을 이은 제5조 소강(少康) 대사의 수행이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후선도(後善導; 제2의 선도대사)’란 칭송을 얻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법력을 보인 소강 대사의 삶 역시 ‘믿기 어려운’ 일화들로 가득하지만, 그 행간 속에서 정토수행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을 굳건히 하는 계기를 삼으시길 기대한다.

 

‘제2의 선도 대사’ 칭송 받아

中 절강성 오룡산에 정토도량 건립

아미타불 칭명 시 화신불 출현

현실문제와 생사대사 해결하는 염불

 

불가사의한 법력 보인 ‘제2의 선도대사’

〈여산연종보감〉을 비롯한 많은 저술에 간략한 전기가 남아있지만, 소강 스님의 태어난 해는 분명하지 않다. 그의 성은 주씨(周氏)이고, 중국 절강성 여수현 진운(縉雲) 사람이다. 불자 집안에 태어난 그는 일찍이 출가하여 15세에 〈법화경〉 〈능엄경〉 등 5부(部) 경전을 다 외울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곧이어 소응현 조주(趙州) 가상사(嘉祥寺)에 머물면서 구족계를 받고 5년간 율학을 배웠다. 다시 강녕현 상원(上元)의 용흥사(龍興寺)에 머물면서 〈화엄경〉과 〈유가론〉까지 공부했다.

훗날 당나라 덕종(德宗) 정원(貞元; AD. 785-) 초에 스님이 정토에 귀의한 일과 정토종 제2조 선도 대사와의 인연에 대해서는 〈송고승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광명 발하는 선도대사 글 보고 정토 인연

정원 초에 경락(京洛; 수도인 長安)의 백마사 전(殿)에 이르러 물건에서 광명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어떤 경법(經法)인가 하고 유심히 찾아보니 선도 대사의 ‘행서방화도(行西方化導; 중생에게 염불을 권하여 서방정토에 왕생하도록 당부한 글)’란 글이었다.

소강 스님은 이것을 보고 환희하여 기원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만약 정토와 인연이 있으면 다만 이 축문(軸文: 두루마리로 된 글)에서 다시 한 번 광명을 나타내어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러한 서원을 마친 얼마 후, 위엄스럽게 번쩍번쩍 빛나는 광채 가운데 화신불이 계시고 보살들은 헤아릴 수 없이 출현했다. 스님은 깊은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당장 서원을 세우며 말했다.

“겁석(劫石; 사방 40리 되는 큰 바위산)은 옮길 수 있으나, 나의 원은 결코 바뀌지 않으리라.(劫石可移 我願無易矣)”

 

입적한 선도대사가 염불 유포 부촉

이어서 소강 스님이 장안에 있는 선도 대사의 진영이 모셔진 영당(影堂) 안에 들어가 대사의 영정을 보고 발원하니, 진상(眞像)이 불신(佛身)으로 변해 스님에게 이르기를, “네가 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많은 중생에게 이익을 주게 되면 너는 그 공덕으로 반드시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될 것이니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더라는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경험한 소강 스님은 그 말씀을 듣고는 더욱더 환희심이 나서 굳은 결심을 하고 널리 세상에 정토법을 펴기로 작정을 했다. 그리하여 남방에 있는 과원사에 가서 정토법을 펼까 하여 그곳을 향해 길을 떠나가는 도중, 스님 한 분을 만났다.

그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를 가느냐?”

소강 스님이 대답했다. “과원사에 갑니다.”

“그곳엔 무엇하러 가느냐?”

“정토법을 펼까 하여 가는 중입니다.”

그 스님이 말씀하기를 “그대가 만일 중생을 제도하고자 할진대, 마땅히 신정(新定; 지금의 엄주지방)에 가서 교화할지어다”라고 말해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가난한 백성 도우며 염불 권해

과연 소강 스님이 신정으로 가서 보니 그 지방은 아직도 문명이 미개한 지방인지라, 아무리 교화를 해도 성과가 없었다. 급기야 스님은 다른 방편으로 교화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신심 있고 잘 사는 지방에 가서 탁발(托鉢)과 권선(勸善)을 하여 많은 물품과 돈을 마련해 와서는 어른들께는 필요에 따라 물품을 보시해 주고 염불을 권하며, 아이들에게는 돈을 나누어 주면서 염불을 권했다. 그 물품과 돈이 다 없어지면 또다시 탁발해 와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보시해 주면서 지성으로 염불을 권했다. 혹 재난이나 환난을 당한 자에게는 많은 물자를 구해다 주고 위로를 해주며, 혹 중병을 앓는 자가 있으면 약을 구해 주시고 지성으로 염불을 권했다. 이런 자비행에 힘입어 그 지방 사람들 모두 스님을 부모같이 고마운 은인으로 받들게 된 것이다.

〈송고승전〉에는 그의 탁월한 교화방편이 잘 묘사되어 있다. “강서성 순안현 목군(睦郡)에 이으러 성에 들어가 걸식하고 돈을 얻어 어린아이들을 꾀어서 ‘아미타불’을 염하게 하여 한 번 부르면 1전(錢)을 주었다. 그 후 한 달이 지나자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많이 모였고, 염불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돈을 주었다. 이와 같이 하여 1년을 지나자 많은 남자나 여자들이 소강 대사를 보고 아미타불이라고 하였다.”

 

염불때마다 화신불 출현

10년이 지난 후, 소강 스님은 절강성 건덕현 오룡산(五龍山)에 정토도량을 세우고 세 계단을 쌓고 사람들을 모아 낮과 밤에 수행하였고, ‘찬24계(讚二十四契)’ 게송을 외우며 정토를 찬양했다. 재일(齋日)에는 교화를 입은 사람이 삼천여 명이나 운집하였고, 이때는 법상에 올라 남녀 제자들로 하여금 대사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고, 곧 고성으로 아미타불을 부르게 하였다.

낮에는 중생교화를, 밤에는 잠을 안 주무시고 염불에 전력을 다한 스님은 마침내 불가사의한 법력까지 갖추게 됐다. 제2조 선도 대사처럼 ‘아미타불’ 명호를 부를 적마다 화신(化身)의 아미타부처님이 한 분씩 나왔다. 게다가 출현하신 아미타부처님들이 차례대로 연결이 되어 공중에 떠 계시다가 염불을 다 마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화신불은 오직 신심이 깊고 염불을 많이 한 분과 소강 스님과 인연이 깊은 분에 한해서만 보였다. 이에 대해 스님은 “내 입에서 나오신 부처님을 보는 자는 결단코 왕생극락을 하게 될 것이며, 보지 못하는 자는 왕생극락을 못할 분이니 그런 분들은 더욱 더 신심과 용맹심을 내어 염불에 전력을 다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찬란한 광명 놓으며 극락왕생

정원21년(805) 10월 3일, 소강 스님은 전 대중을 모으고 당부했다.

“그대들은 앞으로도 왕생극락의 발원심을 굳게 가져서 부디 물러남이 없게 할 것이며, 항상 이 괴로운 사바세계에 대한 모든 애착을 버리도록 힘쓸지어다. 나는 이제 이 사바고해를 여의고 극락세계로 왕생할까 하노라. 마지막으로 나의 광명을 비추어 보여주리니, 이 광명을 보는 자는 나의 참 제자일 것이다.”

스님은 이런 유언을 남긴 후 밝고 찬란한 광명을 한참 동안 놓으시고는 삼계윤회를 벗어나 서방정토에 왕생했다.

이와 같이 정토법문이란 극히 믿기 어려운 반면, 불가사의한 공덕을 얻게 되는 가장 수승한 법이다. 이런 이유로 선종과 천태종, 화엄종을 비롯한 여러 종파의 대선지식들이 임종시에는 그 모든 법을 내려놓고 오직 이 정토법에 의지하여 염불하면서 왕생극락을 발원한 것이다. 석가세존께서 600여 부 가운데 200여 부의 경전에서 정토법문을 설한 것이 어찌 허언이겠는가. 독자님들은 위로는 십지보살로부터 아래로는 악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윤회를 벗어난 정토에 화생하여 반드시 성불에 이르게 되는 ‘위없이 깊고 묘한 선(無上深妙禪)’인 염불법문을 닦아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시길 발원한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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