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골목마다 주황빛 능소화 넝쿨과 푸른 땡감이 담장에 고개를 걸치고 치자꽃 향기를 음미하는 듯, 비를 기다리는 대지의 갈증을 싱그러운 초록이 위로하는 계절입니다.

‘빨리빨리 문화’라고 들어보셨지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문화라고합니다. 한국전쟁 후 폐허를 딛고 경제 발전을 이뤄내면서 ‘빨리빨리 문화’는 긍정적인 면이 크게 부각되기도 했지만, 시작과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에만 집착하는 성과주의의 폐단을 낳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잔재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죠. 결과만 좋으면 과정에서 있었던 불편부당한 일은 덮어주는 게 관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불교가 발생한 나라, 인도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인도인들은 결과보다도 어떻게 일을 진행했는지 그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가 자신의 업(業)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실제 그러하기도 하구요.

실제 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이 인도 지도자들에게 부정한 방법이나 뇌물을 주고서 특혜를 받으려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하지요. 《비유경》에는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시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
옛날 어떤 미련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어리석고 무식하기가 짝이 없었어요. 어느 날, 그가 다른 부잣집에 가서 삼층으로 지어진 누각을 보았습니다. 높고 넓고,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이 무척 부러워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 나보다 못한 저 사람이 이렇게 좋은 누각을 지어 가지고 있는데 나는 왜 이런 누각을 짓지 못했던가?”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곧 목수를 불렀습니다. “저 집처럼 좋은 누각을 지을 수 있겠는가?”
“저 집은 바로 제가 지은 집입니다.”
“그럼 나에게도 저와 똑같은, 아니 더 멋진 누각을 지어 다오.”

이에 목수는 곧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부자는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의혹이 생겨 목수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1·2층을 먼저 짓고 나중에 삼층을 지을 것입니다.”
“나는 아래 두 층은 가지고 싶지 않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삼층이다. 그러니 맨 위 삼층만 지어다오.”

부자의 어리석은 말에 목수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아래층의 집을 짓지 않고 어떻게 2층집을 지을 수 있으며, 2층집을 짓지 않고 어찌 3층집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 <비유경> 중에서

극단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 중시하는 것은 1, 2층은 대충 건너뛰고 3층만 화려하게 짓는 어리석은 부자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번듯하게 쌓아올린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도 기초공사가 부실했거나 공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규격이하의 자재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즉 과정을 중시하지 않은 게 사고의 원인인 것입니다.

또 사업을 하면서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경우도 그 원인은 사업을 해오던 과정에 저질렀던 각종 비리와 부정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게 업 아닌 게 없다는 걸 항상 잊지않는다면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게 되지 않을까요?

참된 회향의 길
불교에서 장차 좋은 과보를 얻기 위해 쌓는 선행을 공덕(功德)이라 말합니다. 이 공덕에는 편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공덕을 쌓는 과정이 순수한 마음의 발로여야만 공덕이 쌓이지, 바르지 않은 마음이나 삿된 마음으로 공덕을 쌓으려고 하면 결코 공덕이 쌓이지 않습니다. 수행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덕을 쌓는 참된 과정(善業)이 동반될 때 참된 회향(결과)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향은 ‘회전취향(廻轉趣向)’의 준말로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다른 사람이나 자기의 수행의 결과[佛果]로 돌려 함께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크게 세 종류가 있는데, 바로 중생회향(衆生廻向)·보리회향(菩提廻向)·실제회향(實際廻向)입니다.

중생회향은 자기가 지은 선근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회향하여 공덕의 이익을 주려는 행위고, 보리회향은 자기가 지은 모든 선근(善根)을 회향해 깨달음의 과덕(果德)을 얻는 데 돌리는 것을 말하며, 실제회향은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으로 무위적정(無爲寂靜)한 열반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불자일 것입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공덕을 쌓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쌓은 공덕을 회향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회향법이자, 수행법이 10회향(十廻向)입니다. 10회향은 보살이 닦은 공덕을 널리 중생에게 돌리는 열 가지를 말하는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화엄경>에서는 한 사람의 수행자가 보살의 계위를 거쳐 성불하기까지 52위를 차례대로 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등입니다. 그 중 10회향은 ①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求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보시 ②불괴회향(不壞廻向)-지계 ③등일체제불회향(等一切諸佛廻向)-인욕 ④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정진 ⑤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선정 ⑥입일체평등선근회향(入一切平等善根廻向)-지혜 ⑦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방편 ⑧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원(원) ⑨ 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着解脫廻向)-력 ⑩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지(지)입니다.

수행에 있어서 발심(發心)이 시작이라면, 정진은 과정이며, 공덕은 결과일 것입니다. 쌓은 공덕은 나를 위해 회향할 수도 있고, 중생들을 위해 회향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수행에 임할 때 발심과 정진 그리고 공덕에 이르기까지 편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치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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