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禪話)에는 여러 가지 설화들이 대거 등장한다. 때로는 옛날이야기 같은 전설들도 자주 나오는데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고도의 은유나 어떤 상징적인 모티브를 제공하여 공안을 채택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해지는 이야기들이다.

백장회해(百丈懷海:720~814) 선사는 마조(馬祖) 문하의 삼대사(三大士)의 하나로 알려진 인물이다. 걸출한 선승이었던 마조 제자에 서당지장(西堂智藏)과 남전보원(南泉普願), 백장회해의 삼대 제자가 있었다.

백장 선사에 관한 선화에는 여우 이야기가 있다. 백장야호(百丈野狐)라는 공안에 얽혀 있는 전백장후백장(前百丈後百丈)이야기이다.

먼저 〈무문관〉 2칙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백장 선사가 설법을 할 때마다 어떤 노인이 항상 대중을 따라 법문을 듣고는 대중이 물러가면 노인도 물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노인이 대중이 물러갔는데도 가지 않고 혼자 남아 있었다. 백장 선사가 마침내 그 노인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요?” 이에 노인이 대답했다.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가섭불 당시에 이 산에 살았는데 어떤 학인이 ‘큰 수행을 한 사람도 인과의 굴레에 떨어집니까?’하고 물은 질문에 제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잘못 대답을 하여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아 살았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저를 위하여 오직 깨달음을 열수 있는 한 마디 법어를 주시어 여우의 몸을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백장 선사가 그때 질문대로 다시 물으라 하니 노인이 물었다.

“큰 수행을 한 사람도 인과의 굴레에 떨어집니까?”

이 때 백장 선사가 “인과에 어둡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깨달아 크게 기뻐하였다. 여기서 물은 노인을 전백장(前百丈)으로 보고 답해준 백장을 후백장(後百丈)으로 보기도 한다.

〈평창〉에는 무문(無門)의 말이 나와 있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고 하여 어찌 여우의 몸에 떨어지며, 인과에 어둡지 않는다(不昧因果)고 하여 어찌 여우의 몸에서 벗어나는가?’

이 말에서 진리를 보는 지혜의 안목을 가진다면 백장 선사가 말해주기 전에 그가 오백생을 바람과 같이 흘러 보내기만 한 까닭을 알 것이다.

고래로 이 ‘불락인과’와 ‘불매인과’를 두고 수없는 질문이 나왔으며, 대답 또한 갖가지로 나왔다. 질문은 모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와 ‘어둡지 않다(不昧)’에서 왜 여우 몸을 받고 여우 몸을 벗어나는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은 〈종용록〉에 있는 말이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모두를 없애버리는 단견(斷見)이며,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말은 변화의 흐름을 따라 묘(妙)를 얻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문염송설화〉에는 “떨어지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음이여! 이 두 가지 말을 따라다니며 무리를 이루고 떼거리를 지었구나. 사자는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물지만, 한씨 집 개는 던져진 흙덩어리를 쫓아가노라”고 하였다. 또 설화에 해인초신(海印超信)이 읊는다.

“어둡지 않음(不昧)과 떨어지지 않음(不落)이여! 두 가지 모두 틀렸도다. 취하거나 버리는 마음을 잊지 못하고 망상분별로 헤아리며, 말에 집착하여 얽매이니 끈도 없는데 스스로 묶여버렸도다. 툭 트인 허공의 그 어디에서 더듬어 찾을 것인가? 봄이 되니 꽃이 피고 가을이 오니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오백생을 여우 몸을 받은 것은 떨어질 낙(落)자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백천의 수많은 대중들이 이것저것 헤아리는 것은 어두울 매(昧)자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이가 이렇게 물었다.

“떨어질 낙(落)자와 어두울 매(昧)자는 같은가 다른가?”

이 말에 대답하기를 “봄에는 난초요 가을에는 국화다”라고 대답하였다.

〈오등회원〉 ‘설봉도원장(雪峰道圓章)’에는 어느 날 두 스님이 백장야호를 두고 한 논쟁이 전해진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 말하더라도 여전히 여우의 몸을 벗어날 수 없고,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서 또한 어찌 여우의 몸에 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설봉 선사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말했다. “떨어지지도 어둡지도 않으니 승속 모두에게 본래 꺼리고 피해야 할 차별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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