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 감독 이창재(51·중앙대 교수)

기자의 통상적 질문. “불교를 신행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명확하고 확신에 가득 차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불제자(佛弟子)’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 답변이 이어졌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아 설하신 가르침과 수행법을 평생 따르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부처님 제자, ‘불제자’라고 합니다.”

불자들에게는 비구니 스님의 수행상을 스크린에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서’로 유명한 이창재 감독은 자신을 ‘불제자’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그에게 불교는 단순한 종교 신행활동이 아닌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최근 그는 다큐 영화 ‘노무현입니다’로 돌아왔다. 지난 5월 25일 개봉한 ‘노무현입니다’는 다큐영화 중 최단 기간 100만 관객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현재는 160만 명의 관객을 훌쩍 넘어섰다.

주말 예매 순위에서도 ‘캐리비안 해적’·‘원더우먼’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 중이다. 

‘노무현입니다’에 대하여
교직까지 걸 각오로 제작 시작
용기 내니 숨은 義人들이 도움
인터뷰 70명, 영상 보정 40일
“깜깜한 어둠 속을 걷는 기분”

이창재스럽지 않은 영화
주제부터 촬영까지 모두 ‘파격’
기존 틀을 깬 인터뷰 정면 촬영
경선 영상, 소리 채널 달리 사용
몰입도 높여 ‘인간 노무현’ 조명


영화 제작을 위한 ‘勇氣’
세상에 내놓은 작품마다 대중과 평단에게 후한 평가를 받았던 이 감독이지만, 이 같은 흥행몰이는 낯설다. 서거한지 8년이 지난 전임 대통령을 조명한 다큐를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찾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봉한지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얼떨떨하고 적응이 안됩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잊혀질만 한데 관객들이 그분에 대한 그리움을 표하는 것을 보고 노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의 잔향이 많다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사실, 이 감독은 드라마와 같던 노 대통령의 경선 과정을 보지 못했다. 당시에는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외국서 유학을 하고 있었고, 간간히 뉴스와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할 뿐이었다. 2004년 귀국해 대학서 교편을 잡은 시기의 세상은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욕만 해댔다. 2008년 퇴임 후 봉화에 내려간 노 대통령에게서는 인간미를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2009년 서거. 안타까운 마음에 광화문 노제에 갔을 때 PVC에 만장이 걸린 것을 보고 그는 매우 놀랐다.

“2009년 서거 당시 복잡한 감정으로 노제 에 참석했는데 만장들이 대나무가 아닌 PVC파이프에 걸렸더라고요. 알아보니 정부가 ‘폭도로 바뀔 수 있다’는 이유로 대나무 사용을 금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들은 무엇을 저리 두려워해 최소한의 예도 표하지 않는 것인가?’ 슬픔과 울분이 교차하더군요. 이것이 제가 ‘인간 노무현’을 탐구하게 된 계기입니다.”

하지만,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나오기에는 시간이 더 걸렸다. 이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용기를 내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정부에서 ‘노무현’이라는 석 자는 마치 ‘금기된 이름’이 됐다. 영화 ‘변호인’을 제작한 감독과 제작·배급사들이 고초를 겪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동료 다큐 감독들도 ‘노무현’을 쉽게 다루지 못했다. 결국 감독 스스로 나서게 됐다.

“영화 제작에 들어간 것이 2014년입니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정치권과 밀접한 친구에게 ‘영화 제작을 하겠다’며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친구의 답은 ‘교직을 걸고 제작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세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죠. 지난 총선 결과가 여소야대 형국이 되면서야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겠구나’는 희망을 갖고 영화 작업을 했습니다.”

‘노무현’이란 인연의 띠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철저한 인물 조명 다큐이다. 수집된 영상과 지인·친구·후배 등 인터뷰들로 109분의 런닝 타임을 이끌어간다. 특히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를 응하는 사람)의 증언에 의해 ‘인간 노무현’은 구성되어 진다.

이 감독이 가장 신경 쓴 부분도 인터뷰이의 선정이었다. 시기별 인사를 추리고 미디어적합도 등을 고려해서 70명의 인터뷰이가 선정됐다. 그중 50여 명의 촬영이 이뤄졌다. 인터뷰이 작업만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영화 제작 소식이 알려지고 난 후에는 숨은 의인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증언부터 자료, 영상들을 제공해줬다. 그래도 영화를 구성하기에는 원천 소스가 부족했다.

“8개월 동안은 소스를 찾기 위해 다녔습니다. 원래 모든 소스를 구하고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렵게 구한 영상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보정이 필요했습니다. 보통 15일이면 끝날 보정이 40일이 걸리곤 했어요. 컴컴한 밤에 짧은 헤드라이트 하나 켜고 운전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파격의 영상·‘인간 노무현’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여러 면에서 이 감독의 이전 작품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일단 매우 동적인 주제인 ‘정치인’을 선정했으며, 이에 맞춘 영상 촬영들이 확연하게 달랐다. 대표적인 것인 인터뷰 장면이다. 

일반적으로 다큐 인터뷰 촬영은 5~45도 사선에서 촬영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는 인터뷰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객관적 증언을 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법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모든 인터뷰이들은 정면의 카메라를 향해 이야기 한다. 시간도 엄청 길다. 최고로 긴 인터뷰는 10분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 감독은 모든 것이 의도된 연출이었다고 했다. 바로 ‘몰입’을 위해서다. 관찰을 중시했던 그의 철학과는 대치되는 결정이었다.

“정면 인터뷰 촬영과 더불어 뒤의 배경도 모두 검은 색으로 통일했어요. 객관성을 유지해야 했으면 정석대로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주관적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호소에 가깝다는 느낌이었죠. 인터뷰를 통해 ‘인간 노무현’이 보였으면 했어요. 사운드도 마찬가지에요. 경선 장면에서 연설 사운드는 2.1채널로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주위 박수와 환호 소리 등은 서라운드 5.1채널로 들리도록 했어요. 마치 경선장에 있는 것처럼. 모두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 같은 몰입의 장치들은 오로지 ‘인간 노무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배제돼 있다. 기적적 승리와 영광의 순간에 바로 비극적 죽음이 대치되는 연출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역사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인간 노무현’을 알고 나아가 그를, 그의 시대를 탐구해달라는 게 감독의 바람이다.

“영화, 스스로의 질문을 찾는 과정”

나에게 ‘길위에서’는
다시 못할 가장 힘들었던 작업
‘출가’대한 막연한 환상 접게 돼
스스로 삶에 더욱 집중할 계기
“최종적으로 未完… 아쉬움 남아”

‘佛弟子’ 이창재
부처님 가르침 평생 실천 ‘다짐’
봉인사·호두마을 등서 수행 정진
“가장 행복한 길은 출가” 확신
7월부터 수행처서 정진 계획도

방황했던 시절 만난 ‘불교·영화’
‘길위에서’부터 ‘노무현입니다’까지 인연을 맺어온 최낙용 PD는 최근 한 영화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감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인간적으로 구도자 같은 사람이다. 틈만 나면 명상을 한다든가 수련을 하면서 근본적인 영성을 찾으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가장 친한 지인의 이 같은 평가가 맞는지 당사자인 이 감독에게 묻자 “그 분이 그 방면에서 대해 안이하기 때문”이라고 바로 손사래를 쳤다.

손사래는 쳤지만, 이 감독의 수행 이력은 만만치 않다. 영화 작업을 마치거나 방학 중에는 짧게는 10일, 길게는 2달씩 장기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의 수행법은 초기불교 수행법인 ‘위빠사나’이다. 주로 수행했던 곳 역시 위빠사나 수행으로 유명한 남양주 봉인사, 천안 호두마을 등이다.

“108배는 꾸준히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영화를 시작하면 전혀 수행할 엄두를 못 내지요. 지금은 그냥 급한 불을 끄는 정도입니다. 일상에서 꾸준하게는 하지 못합니다. 속세에서 살아갈만 한 마음가짐을 만드는 정도의 수행만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어린 시절 이 감독은 많은 방황을 거쳤다. 한양대 법학과에 입학하고 특히 그랬다. 말이 통하는 친구도 없었고, 학과 생활은 답답했다. 그러다 지인이 책 한권을 건넸다. 일본 불교학자 마츠다니 후미오의 <현대불교 입문>이었다.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불교와는 차이가 있었다. 체계적이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이해하기 시작하니, 내 몸에 붙은 불을 끄고 싶었다. 안국선원 등을 다니며 수행했고, 출가에 대한 고민도 깊게 가졌다.

하지만, 곧 대학 졸업반이 됐고 취업해 사회인이 됐다. 신문사, 광고·홍보 등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그가 안착한 곳은 다큐멘터리 PD였다. 그 방면에서는 이른 나이에 제법 성공했다. 상도 수상하고, 승진도 빨랐다. 방황이 다시 시작됐다. “작은 언덕을 너무 빨리 올랐다”는 이 감독은 35살에 영화를 공부하겠다며 훌쩍 유학을 떠났다.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이 강해요. 운도 따라줬고요. 정말 빈털터리가 돼 돌아왔는데 곧바로 교직 임용이 됐고, ‘사이에서’를 발표할 수 있었죠. 잘은 모르지만, 흔들린 경험들이 도움된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경계, 그리고 사람 이야기
스스로의 길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이 감독을 이끈 동력이기도 하다. 이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노무현입니다’를 제외한 ‘사이에서(2006)’·‘길위에서(2012)’·‘목숨(2014)’은 각각 무속인, 비구니 스님, 호스피스 병동을 담아낸다.

이들 작품은 모두 신과 인간, 성과 속,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경계와 사람 이야기는 내가 가장 원하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다큐 영화는 내가 던진 질문들을 찾아가는 작업들입니다.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내가 던진 질문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하는 것이죠. 어쩌면 저는 영화를 핑계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만나고 있습니다. ‘길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끊임없이 묻고 상상했던, ‘내가 출가했더라면’이라는 생각과 의문들을 대입한 것입니다.”

‘길위에서’ 만났던 것들
대학시절 출가를 고민했던 그가 ‘길위에서’를 제작·연출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애착도 아쉬움도 많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제가 여태까지 제작한 다큐 영화 중 가장 힘들었다. 다시는 못할 것 같다”며 이야기를 풀었다.

“6개월을 안식년 받아 백흥암에 들어가서 300일을 촬영했습니다. 촬영부터 섭외까지 제일 어려웠습니다. 정신적으로 바짝 바짝 말랐죠. ‘길위에서’는 제게 미완의 작품입니다. 더 들어가서 내면적 인터뷰를 끌어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어요. 300일 절집 생활을 해보니 여러 가지를 느낀 점도 많습니다. 우선 막연했던 출가에 대한 환상들이 깨졌죠. 그러다보니 지금 현재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이더군요. 스님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저는 하루 중 내 자신을 성찰하고 수행하는 시간이 5%로 안되지만, 스님들은 절반 이상을 수행하시니까요.”

이 감독은 자신의 자녀가 선근(善根)이 있어 출가를 한다면 정말 좋은 출가를 시킬 자신이 있다고 했다. 가장 행복한 길은 출가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가 원하는 길일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라고도 했다.

인터뷰 말미, 이 감독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수행할 겁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학이 시작되는 7월부터 수행에 들어간다는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자신에게 근본적 질문을 해야 할 시기다. 갈증처럼 다가올 질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영화’와 ‘수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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