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응천 동국대 교수 운문사 학술대회서 주장

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208호 청도 운문사 ‘동호(銅壺·동항아리·사진)’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뒤 고려시대부터 사리기로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6월 10일 청도 청소년수련관 다목적홀에서 ‘운문사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운문사 동호의 제작 시기와 용도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뚜껑의 ‘화염보주’에 주목
사리신앙 연관 많은 양식
시기도 고려 아닌 통일신라
운문사 성보 보존 논의도

운문사의 9개의 보물 중 유일한 공예품인 동호는 높이 55㎝, 구경 19.5㎝로, 뚜껑 손잡이에 연꽃잎 6장과 불꽃 모양 장식이 달렸다. 또한 어깨 부분에는 ‘함옹(咸雍) 3년(1067) 6월 개조했고 무게는 30근’이라는 명문이 있다.

그동안 이 동호는 ‘감로준(甘露樽)’이라는 명칭이 전해오고 있기 때문에 물이나 음식을 담는 용기로 추정돼 왔다. 비슷한 유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운봉사 명문 동항아리 등이 있으나 최 교수는 운문사 동호는 뚜껑 손잡이에 불길 모양 장식물인 ‘화염보주(火炎寶珠)’를 들어 차이점을 제시했다.

그는 “화염보주는 경주 감은사지 서삼층석탑에서 나온 7세기 후반 사리기의 청동 외호(外壺)가 기원”이라며 “이후 사리기에서 화염보주는 사라졌지만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시대 사이에 세워진 승탑이나 탑비의 상부에서 유사한 장식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화염보주는 사리신앙과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동호도 사리기로 쓰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최 교수는 동호 뚜껑의 불꽃 장식물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려 정종 3년(1067)에 개조되면서 부착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뚜껑 내부에 별도로 손잡이와 결합된 흔적이 남아 있고 지금도 손잡이 하단부가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다”면서 “통일신라시대에 제작해 다른 용도로 사용돼다가 고려시대에 손잡이만 별도로 만들어 사리기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와 함께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운문사 소장 성보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논의와 연구 발표들이 이어졌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운문사 작압전(鵲岬殿) 석조석가불좌상(보물 제317호) 조성 배경과 양식적 특징을 살폈으며, 운문사 사천왕상이 석굴암 사천왕상을 유일하게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세덕 경주대 교수는 ‘운문사 유물을 통해 본 가람배치 변화’를, 김정희 원광대 교수는 ‘운문사의 불화와 대웅보전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를, 심주완 조계종 문화부 팀장은 ‘운문사 문화유산의 보존 방안’ 등을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김성규(영남대), 정성권(동국대), 이용진(국립공주박물관), 임영애(경주대), 김미경(문화재청)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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