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도지(東寺)

도지(東寺)의 오층탑의 모습. 교토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높이가 54m에 달해 일본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교토에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킨카쿠지(金閣寺)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찰이 많지만, 교토의 상징으로 사진이 자주 나오는 풍경이 도지 오중탑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전차나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오중탑이 보이면 교토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도지 창건에 대해서는 수도를 나라 헤이조쿄(平城京)에서 교토로 천도한 역사적인 배경부터 봐야 된다. 781년에 즉위한 간무(桓武)천황은 784년에 수도를 현재 교토부 서쪽에 위치하는 나가오카쿄(長岡京)로, 794년엔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하였다.

진언종 문을 연 구카이 대사가
사가천황에게 하사 받은 ‘東寺’
日 진언종 중심 사찰로 발전해


헤이안쿄는 당나라 수도인 국제도시 장안(長安, 현재 서안)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남북 약 5.2km, 동서 약 4.5km이며, 남북대로(南北大路)와 동서대로(東西大路)가 마치 바둑판처럼 정연히 만들어졌다. 또 도성의 남대문인 라조몬(羅城門)을 중심으로 양쪽에 거대한 호국의 역할을 하는 관사인 도지(東寺)와 사이지(西寺)가 창건되었다. 천도 당초에 도성 안에 있는 관사는 도지, 사이지 뿐이고 다른 사찰은 건립이 되지 못했다. 아마도 권력이 있는 나라 사찰의 진출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창건된 도지이었지만 가람 건립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도지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구카이(空海) 대사가 간무천황의 아들인 사가(嵯峨)천황에게 823년에 도지를 하사받았을 때부터이다.

진언종(眞言宗)의 개조이고 문학, 서예, 교육, 건축, 관개용수, 의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구카이는 774년에 지금 우동으로 유명한 시코쿠(四國) 가가와현(香川縣)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관료 양성 기관에서 공부하다가 도중에서 그만두고, 804년에 당나라 유학을 할 때까지 상세한 활동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젊었을 때부터 여기저기서 산악 수행을 쌓고 나라에서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했던 것이 구카이가 도지를 하사받고 입적할 때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큰 받침이 된 거라고 생각된다. 출가는 20세 때 민간에서 했으나 국가가 인정한 것이 아니어서 당나라 유학 직전에 도다이지에서 수계를 받고 정식적인 승려가 되었다.

804년에 구카이는 견당사(遣唐使)에 따라 당나라에 갔다. 구카이가 탄 배는 폭풍을 맞아 표류했기 때문에 원래 상륙하려고 하던 영파(寧波)가 아니라 복주(福州)에 표착했다. 그러나 상륙 예정지가 아니어서 상륙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때 구카이가 대사를 대신하여 사정을 쓴 훌륭한 내용인 탄원서를 만들어서 상륙 허가를 받았다. 동년 12월에 장안에 도착했고 다음해에는 청룡사(靑龍寺)의 밀교 스승인 혜과(惠果)를 만나 제자가 되었다. 밀교는 중국을 통해서 구카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일본으로 경전도 전래되었고 밀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구카이도 일본에서 밀교 경전을 접하고 밀교를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당나라 유학을 결정했다고도 추측된다.

혜과는 구카이에게 밀교를 가르치고 구카이를 수계자로 삼아 경전, 만다라, 밀교 법구(法具) 등 의발을 전했다. 구카이를 만난지 6개월 후 혜과는 입적했다. 구카이는 806년에 귀국했다. 당시 유학승 유학 기간이 20년이라는 장기 유학이었지만 구카이는 단 2년 밖에 유학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카이가 당나라에서 배운 내용이 깊고 혜과에게 물려받은 밀교 자료는 풍부하고 화려한 것이었다. 구카이는 당나라에서 가져온 이런 서적이나 밀교 법구 등을 기록한 〈어청래목록(御請來目錄)〉을 조정에 제출했다. 사가천황이 즉위한 809년에 구카이는 교토 북쪽에 위치하는 산사 다카오산지(高雄山寺, 현재 신호사)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 짧은 기간에 귀국한 것이 본래는 죄가 되는 일이고 다시 교토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입경(入京) 허가가 내린 확실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지만 〈어청래목록〉의 깊고 풍부한 내용으로 나타난 구카이의 위대함이 조정이나 불교 관계자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816년엔 호국을 기원하는 곳, 수행을 하는 도량으로 와카야마현(和歌山縣) 고야산(高野山)을 조정에게 하사받았다. 구카이의 활동이 더 바빠졌다. 고야산 건설 뿐더러 책도 잇달아 지어내고 고향 가가와현에서는 당나라에서 배운 최신 토목 공사 기술을 구사해 토목 공사를 지도하기도 했다.

12월 21일 열리는 풍물 벼룩시장 '시마이고보'의 모습. 도지에서는 매달 21일 풍물시장이 펼쳐진다.

823년에 구카이는 사가천황에게 도지를 하사받았다. 관사로 시작한 도지는 관사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진언종 중심 사찰로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도지의 정식 명칭도 교오고코쿠지(敎王護國寺)가 되었다. 이것이 호국의 뜻인 동시에 밀교 경전인 교왕경(敎王經)에 유래되어 도지가 진언 밀교 도량인 뜻도 있다.
조정이 도지 건립을 구카이에게 맡기면서 50명의 진언승(眞言僧)을 도지에 상주시키고 다른 종파의 스님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다른 종파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밀교를 더 올바르게 더 깊이 이해하려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는 구카이의 생각에 의해서였다.

현재 일본에서 사찰마다 종파가 정돈되어 있지만 당시 일본 불교는 교학의 성격이 강하고 나라 사찰에서는 종파를 넘어 스님들이 함께 거주하고 학문을 닦는 상황이어서 도지가 순수한 진언 밀교 사찰이 된 것이 획기적인 일이었다.

825년엔 강당(講堂) 건설에 착수했다. 강당 안에는 밀교 경전에 의거한 구카이의 독자적인 사상을 표현한 21구의 불상으로 구성된 입체 만다라가 있고 안에 들어가면 압도당한다. 중앙에는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불상이 5구가 있고, 그 왼쪽에는 보살 5구, 오른쪽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을 중심으로 5대명왕이 있다. 주요한 15구 불상 주변엔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그리고 사천왕(四天王)이 배치되어 있다.

20대에 처음으로 도지에 갔을 당시 교토를 대표하는 오중탑 밖에 모르는 상태여서 강당에 들어갔을 때, 충격을 받았다. 21구 가운데 6구가 15세기 후반에 소실돼 다시 제작한 것이고 나머지 15구가 헤이안 시대에 제작한 것이다. 다시 제작한 6구 가운데 5구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나머지 불상은 16구는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다. 특히 제석천이 ‘꽃미남’으로 유명하고 인기가 있다. 강당 입체 만다라는 도지 순례의 하이라이트다.

826년엔 구카이는 오중탑 건립에 착수했다. 원래 나라 야쿠시지(藥師寺) 동서 양탑처럼 탑을 2개 건립할 계획이었는데 구카이는 진언 밀교 사상에 의하여 그 계획을 바꾸었다. 탑은 큰 탑을 동쪽에 하나만 세우고 서쪽에는 인간이 대일여래가 될 의식 즉 현세에 있는 육신 그대로 곧 부처가 되는 즉시성불(卽身成佛) 의식을 하는 곳인 간조인(灌頂院)을 건립하려고 했다. 오중탑, 간조인 모두 구카이가 자신의 눈으로 완성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9세기 후반에 오중탑이 완성되어 창건 당시에 계획된 도지 가람이 다 완성되었다.

지금 도지에서 여러 행사가 있는 가운데 1월 8일에서 14일까지 진행되는 고시치니치미시호(後七日御修法)라는 천하태평, 오곡풍요 등을 기원하는 중요한 행사가 있다. 이것이 원래 당나라 궁중에서 진행했던 밀교 의식을 일본에서도 실천하려고 구카이가 소원을 상주해 조정에게 허락을 받아 실현된 것이 시작이다. 835년 1월 구카이는 새로 세우진 궁중진언원(宮中眞言院)에서 의식을 행했다. 이 행사는 메이지시대 초기까지 궁중에서 진행되어 왔고 메이지시대 때 일시 중단했지만 지금도 간조인에서 계속되는 천년이 넘은 역사가 있는 행사다.

현재 도지에 창건 당시에 세워진 당탑(堂塔)이 없고 후세에 재건된 것이다. 구카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 도지는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재건된 당탑이 창건 당시의 위치나 규모를 전하고 있어 헤이안 시대에 건립된 도지를 그대로 알 수 있다.

그런데 헤이안 시대에 도지와 함께 관사로 시작한 사이지가 일반 교토 답사 가이드북에도 등장하지 않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사이지는 13세기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후 재건되지 않았다. 모순되는 것 같지만 아마 사이지가 관사로 남았던 것이 멸망의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9세기 후반에는 국가 재정이 악화해지고 이에 따라 관사도 쇠퇴했다. 살아남은 것은 힘이 있는 종파에 속하는 사찰들이었다. 도지가 구카이로 인해 진언종 사찰이 되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도지(東寺)의 오층탑의 모습. 교토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높이가 54m에 달해 일본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12월 21일 열리는 풍물 벼룩시장 ‘시마이고보’의 모습. 도지에서는 매달 21일 풍물시장이 펼쳐진다.
 

도지 답사 안내
가장 가까운 역이 ‘긴테쓰 도지’역이다. JR교토역에서도 멀지 않아 걸어갈 수 있다. 강당 북쪽에 있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면 금당, 강당을 배관할 수 있고 벚꽃을 비롯한 예쁜 꽃이 피는 정원도 즐길 수 있다. 오중탑은 높이 약 54.8m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오중탑이다. 4번 소실되었고 현재 오중탑이 17세기에 재건된 것이다. 평소에 외관만 구경할 수 있지만 특별 공개시기에 가면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유료). 봄(3월 20일~5월 25일), 가을(9월 20일~11월 25일) 특별 공개를 하는 보물관에는 불상, 구카이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밀교 법구 등을 볼 수 있다(유료).

매월 21일에 열리는 벼룩시장 고보상(弘法さん)도 재미있다. ‘고보’는 구카이의 시호이다. 사찰에서 열리는 벼룩시장 중에서도 고보상이 규모가 크고 종류도 식품, 도자기, 골동품, 잡화, 옷 등 다양하다. 특히 12월 21일에 열리는 시마이고보(終い弘法)는 연말 풍물로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이 찾아간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