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나라 명찬(明瓚) 스님은 동양의 디오게네스였다고 불린 스님이다. 생몰연대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숭산보적(嵩山普寂:651~739)의 법을 이은 제자였다고 한다.

그는 남다른 점이 많아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한다. 형악(衡嶽)에 살 때 스님은 무척 게을러 대중들이 운력을 할 때도 참여하지 않고 공양도 시간을 맞춰 하지 않는 등 괴각(乖角)을 부렸다. 스님은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언제나 외톨이처럼 지내며 밥도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를 모아 먹었다. 이런 명찬 스님의 게으른 습성을 두고 사람들이 별명을 붙여 나잔(懶殘) 혹은 나찬(懶瓚)으로 불렀다. 대중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즐겨 챙겨 먹었으며 그를 꾸짖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여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가끔 그가 내뱉는 한 마디 말을 듣고 대중들이 놀라기도 하였다. 그가 하는 말이 모두 법에 부합되는 예사로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송고승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가 20여 년을 머물던 남악사(南嶽寺)에 상국(相國)인 업공(?公) 이비(李泌)가 최이(崔李)의 모함으로 절에 와 피신하여 지내고 있었다. 이비가 명찬 스님의 행동을 몰래 살펴본 끝에 아무래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밤중에 몰래 명찬 스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명찬 스님이 이비에게 “쓸데없는 말을 삼가시오. 그러면 10년 후 재상의 지위에 오를 것입니다”고 했다.

이비가 가르침에 감사를 드리고 물러났는데 그 후에 예언했던 대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벽암록〉에는 ‘나찬외우(懶瓚?芋)’라는 말이 나온다. 34칙에 수록된 내용으로 외우(?芋)는 토란을 구웠다는 말이다. 나찬 스님이 형산의 석실에 은거하고 있을 때 당나라 덕종(德宗)이 스님의 법력이 매우 높다는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 모셔와 궁중으로 맞이해 국사로 모시려고 했다. 사신이 나찬 스님이 머무는 석실에 이르러 “천자께서 명령을 내렸으니 존자께서는 마땅히 일어나 그 은혜에 감사를 표하시오”라고 하였다. 나찬 스님은 소똥불에 토란을 구워 그것을 뒤져 찾아 먹느라 입가가 시커멓고 코눈물을 턱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신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답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사신이 웃으면서 “스님 콧물이나 좀 닦으시지요”라고 했다. 그때 나찬 스님은 “내가 공부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속인을 위하여 콧물을 닦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사신이 “행장을 꾸리는데 도와 줄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오”라고 했더니 나찬은 “그러시오. 조금만 비켜 서 주시오. 햇빛을 가리지 말아 주시오”라고 했다.

이 말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인도로 원정을 가던 알렉산더 대왕에게 했던 말이다 이 말과 똑같은 말을 나찬 스님이 사신에게 했다고 하여 후대 사람들이 동양의 디오게네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나찬 스님은 끝내 일어나 왕명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사신이 돌아가 정황을 아뢰자 덕종은 더욱 스님을 흠모하게 되었다. 세속을 초탈한 고매한 풍모를 지녔던 나찬 스님의 일화다.

‘명찬일언(明瓚一言)’이라고 제시된 공안도 있다.

나찬 화상이 “나에게 한 마디 말이 있는데 생각이 끊어지고 대상에 대한 분별도 잊어져 교묘한 말솜씨로 표현하지 못한다. 단지 마음으로 전하고자 할 뿐이다”고 한 말의 핵심을 집어 원오 스님이 말한다.

“이 노장은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면서 물을 흐려놓는 것과 같으니 허물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이 중에 대상에 대한 분별을 잊고 생각이 끊어진 사람이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마음으로 전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만약 그 뜻을 알아차린다면 이미 모두 전한 것이며,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마음은 그만 두고라도 필경 어떤 것이 ‘한 마디 말’인가? 방으로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원오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한 마디 말이 결국 “마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로 공안의 핵심이 된 것이다.

〈선문염송설화〉에는 “장산찬원(蔣山贊元)이 법좌에 올라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했다.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면 당나귀 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설화〉의 설명에는 “말에 현묘한 도리를 담고 있더라도 진리로 통하는 길은 없으며, 입으로 말하더라도 진리 그대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