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정토종 제4조 법조 대사

〈승가불조도영〉의 법조 대사 진영

“사람들은 지금 오로지 염불하고, 염(念)하는 사람들은 깊은 선(禪)에 들어가네. 초저녁에 단정한 마음으로 앉으면 서방세계가 눈앞에 있도다. 염하는 것이 곧 무념(無念)인 줄 알고, 무념이 곧 진여(眞如)인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중도의 뜻 요달하면 이름하여 법성주(法性珠)라 한다.”- 〈정토오회염불약법사의찬〉

 

아미타불에게 염불 전수받아

음률 섞인 오회염불 만들어

중국·대만의 보편적 수행돼

오대산서 문수보살도 친견

 

승원 대사의 정토법 이어 반주삼매 닦아

혜원-선도-승원 대사에 이어 정토종 제4조에 추존된 법조(法照) 대사의 ‘정토법신찬(淨土法身讚)’이다. 이 게송을 보면 최고 수준의 염불삼매인 반주삼매(般舟三昧)를 증득한 대사의 가르침은 선과 정토가 둘이 아닌 선정쌍수(禪淨雙修)의 법문임을 엿볼 수 있다.

법조 대사의 출생과 입적한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전기를 종합한 활동시기는 당나라 대력(大曆, 766-778년), 정원(貞元, 785-804)의 해로 추정된다. 출생지 역시 미상인데, 〈신수왕생전〉에는 남양사람(南陽人), 〈정토오회염불약법사의찬〉에는 양한(梁漢)나라 사문이라 되어 있다.

법조 대사는 출가 후 동쪽의 오(吳, 강소성)나라에서 유학한 후 초조 혜원 대사를 흠모해 여산(廬山)에 들어가서 반주삼매를 닦았다. 다시 765년부터 이듬해까지는 남악형산(南嶽衡山)에 올라가 승원 대사를 스승으로 섬기면서 정토법을 전수받았다. 766년 4월 15일 하안거 때 남악 미타대(彌陀臺)에서 시작한 반주삼매수행은 매년 여름 90일 동안 수행하였다. 반주삼매란 초기 정토종에서 〈반주삼매경〉에 의해 수행하는 염불법으로, 혜원 대사도 반야대(般若帶)에서 123인과 함께 반주삼매를 닦았을 정도로 가장 오래된 고차원의 염불법이다. 〈반주삼매경〉에는 “홀로 한 곳에 머물러 서방의 아미타불이 지금 현재에 계신 것을 염하고, 들은 바를 따라 마땅히 염하라. 여기서부터 천만억의 불국토를 지난 곳에 있는데, 그 국토를 수마제(須摩提; 극락의 범어)라 이름한다. 일심(一心)으로 그것을 염하되 하루 밤낮 혹은 7일 밤낮을 정진하여 7일을 지난 이후는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라고 설해져 있다. 말하자면 현생에 염불삼매 속에서 아미타불을 친견하여 가르침을 받고, 명이 다한 즉시 아미타불의 접인을 받아 윤회를 벗어난 극락정토에 화생하게 되는 염불법이다.

 

삼매 속 아미타불 ‘오회염불’ 전수받아

법조 대사는 승원 대사의 가르침에 따라 반주삼매를 닦은 결과 마침내 삼매를 성취하고 ‘오회염불(五會念佛)’이란 독창적인 염불행을 닦기 시작했다. 미묘한 가락이 담긴 음악적인 염불법인 ‘오회염불’의 성립과정에 대해서는 〈정토오회염불송경관행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766년 4월 보름부터 남악 미타사에서 90일간 진행된 반주삼매수행의 제14일 밤이었다. 법조 대사가 홀로 미타대 동북 도량 내에 경행염불을 하고 있었는데, 홀연히 삼매 속에서 아미타불이 계신 곳에 이르러 아미타불께 예배를 올렸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대사에게 당부하셨다. “나는 자네가 마음이 진실하여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여기에 온 것이지, 하나도 자기를 위한 이익이 없는 줄 안다. 능히 이러한 원을 발하니 착하고 착하도다, 나에게 묘법이 있는데 가격으로 칠 수 없는 진보(珍寶)다. 지금 너에게 부촉하노니, 이 법을 가지고 염부제(閻浮提)에 가서 널리 행하고 유포하여 천인과 무량한 중생을 이익케 하라. 이 법보를 만나면 다 이익을 얻을 것이다.”

법조 대사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어떤 묘법이 있습니까? 오직 원컨대 그것을 설해 주옵소서!” 하니, 아미타부처님께서는 “하나의 무가범음(無價梵音)은 오회염불법문이다. 바르게 저 혼탁한 악세에서 부흥시켜라.” 당부하셨다.

이어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오회염불의 근거와 공덕까지 일러주셨다. “네가 본 〈무량수경〉에, 극락의 칠보수(七寶樹)는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다섯 가지 음악소리가 나온다(淸風時發出五音聲)’는 구절이 있나니, 그 ‘다섯 가지 음악소리(五音聲)’가 바로 오회불성(五會佛聲)이니라. 이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오회염불법에 따라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게 되면, 그 과보로 모두가 나의 국토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한 미래의 일체 중생이 오회염불을 만나게 되면,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다 제거되고, 아플 때 약을 얻는 것과 같고, 목마를 때 물을 얻는 것과 같고, 굶주릴 때 밥을 얻는 것과 같고, 벗은 몸이 옷을 얻는 것과 같고,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만난 것과 같고, 바다를 건너려 할 때 배를 만나는 것과 같고, 보물창고를 만난 것과 같아서, 반드시 안락을 얻게 되느니라.”

 

중국 오대산의 문수성지 전경

오대산에서 문수·보현보살 친견

극락세계의 다섯 가지 소리에서 유래된 오회염불법은 낮고 높은 음, 느리고 빠른 음으로 소리를 조절하여 ‘아미타불’을 외우는 염불노래이다. 리드미컬한 음률까지 붙여 염불을 하면 잡념의 제거는 물론, 깊은 감격과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 법조 대사가 유포한 이래 꾸준히 전승되면서 수많은 이들이 가피를 입었다. 오늘날 중국이나 대만을 여행하다 보면 불교성지 어디에서나 흘러나오는 오회염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주삼매 속에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직접 오회염불법을 전수받은 대사는 이것을 769년까지 형산지방에 널리 유포시켰으며, 이후에는 오대산을 참배하게 된다.

대사는 이미 767년 남악 운봉사에 있을 때 가끔 발우 속에서 오대산이 나타남을 신비스럽게 보았다. 또 769년 형주 호남사에 있을 때도 오대산을 보고 도반 몇 사람과 함께 오대산을 향해 걷기 시작해 770년 4월에 드디어 도착, 홍광사와 화엄사 등에서 살며 정진했다.

770-771년 사이, 법조 대사는 오대산에서 문수·보현보살로부터 염불하여 왕생극락 하는 법문을 전수 받는 등 10가지 불보살과의 감응을 경험하였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대사는 대력5년(770)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의 신령한 가르침을 감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문수보살이 대사에게 설한 가르침은 이러했다.

 

“내가 현재 수행하여 닦고 있는 염불법문이 지금 때에 가장 합당한 수행이니라. 여러 수행문이 있지만 염불수행보다 나은 것은 없느니라. 삼보 전에 항상 공양 올리며 복과 지혜를 갖추어 닦는 것이 가장 요긴하며 지름길이 되느니라. 내가 과거 겁(劫) 중에 부처님을 관(觀)하며 부처님을 염(念)하며 항상 공양을 올림으로 인해 지금의 일체종지(一切宗旨)를 얻어 성취하게 된 것이니라. 모든 반야바라밀과 심심(深心), 선정(禪定)과 모든 부처님이 모두 다 염불로부터 나게 됨을 알아야 함이라. 염불은 모든 법의 왕이니 너는 마땅히 항상 무상법왕(無上法王)을 생각하여 쉼이 없게 할지어다.”

이러한 법문을 들은 대사는 모든 의심이 풀리는 동시에 기쁨과 환희로 오로지 염불수행에 전력을 다할 것을 굳게 결심했다. 대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한 오대산 석문(石門) 자리에다 커다란 돌을 하나 세워 표시를 해놓고 돌아왔는데, 그 돌이 현재까지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대사께서는 774년 전후에는 태원(太原; 북경의 형주지방) 지방에서 나와 오회염불을 보급하였고 〈오회염불송경관행의〉 3권도 찬술했다. 이어 오대산에 다시 들어가 777년 9월 동대(東帶)에서 다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였고, 후에 장안에 들어가 장경사 정토원에 머물면서 오회염불법을 널리 전파하였다. 또 그의 스승 승원 대사의 가풍을 알리는데도 힘을 쏟았다. 대사의 저술인 〈오회염불약법사의찬〉은 774년 이후 정토원에 머물면서 찬술한 것이다.

 

오대산 죽림사 창건하고 윤회 벗어나

그 후 대력 12년(777) 9월 13일이었다. 법조 대사는 제자 8인과 한 자리에 있었다. 저 멀리 동대(東臺) 쪽을 바라보니 흰 광선 네 줄기가 뻗치더니 이상한 구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구름이 열리면서 홍색의 커다란 원광(圓光)이 나타나며, 그 원광 안에 문수보살이 청사자(靑獅子)를 타고 계심이 분명하게 보였다. 오색 원광이 찬란하게 비추고는 얼마 후엔 사라져버렸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분으로는 순일, 유수, 귀정, 지원 스님 등과 사미 유영과 우바새 장희준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대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한 대성석가사(大聖竹林寺)를 기념, 오대산에 죽림사를 창건하고 입적했다. 대사께서는 유훈으로 “이제 내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이 세상에 더 있어 무엇하리요.” 하고는 삼계윤회를 벗어났다. 대사의 정확한 왕생 시기는 기록(불조통기에 822년 설이 있다)이 확실하지 않지만, 입적 후 칙명에 의해 대오화상(大悟和尙)이라고 칭해졌다.

 

문수·보현보살이 성취하고 권한 염불법

문수보살은 지혜 제일로 칠불(七佛)의 조사이시며, 보현보살은 여래의 장자로서 만행(萬行)을 구족하신 대보살이다. 이러한 대성인들께서 “염불은 제법(諸法)의 왕”이라 하셨으며, “속히 성불함에는 염불보다 나은 법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해주셨거늘, 어찌 믿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수승한 정토법문을 눈앞에 두고 믿지 못해 외면하고서 무슨 특별한 법을 닦을 것인가. 독자님들께서는 정토법문을 참구하여, 시작도 끝도 없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해법을 마련하시길 두 손 모아 발원한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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