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세상과의 소통 11

세상 소리 듣는 ‘옴 만트라’
대통령 행보도 이와 같아야
양극화 심해지는 세태 속에
동사섭으로 하나씩 풀어가자

화난다고 ‘부정’ 내뱉지 말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국가가 달라지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달라지면 그 나라 국민의 의식도 달라진다. 대통령이 비서들과 커피 잔을 들고 함께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탈권위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그를 가족처럼 가까운 대통령으로 느낀다. 대통령의 이러한 모습은 한순간의 의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리라. 오랫동안 쌓아온 삶의 여정에서 내적 균형감각과 정서적 안정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이번에야말로 성공적인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마치길 간절히 원한다. 또 청와대를 걸어 나올 때 따뜻한 박수를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의 의식이 한 개인으로서 욕망을 이루되 개인을 넘어 국가를 위한 욕망으로 변형되었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새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하는 동사섭의 세상을 만들기를 염원하면서 쓰고자 한다.

요가명상 중 옴(OM) 만트라 명상이 있다. 소리로 명상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옴 만트라는 세 단계로 행할 수 있다. 1단계에서는 크게 소리 내어 반복한다. 몸 전체를 통해서 옴 소리를 낸다. 몸 전체가 옴 소리로 떨리고 울리도록 소리를 낸다. 몸이 옴 소리로 흠뻑 적셔지고 그 소리가 몸 세포들에 침투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 성자에 따르면 한 달 이상 하루에 한 시간씩 끊임없이 반복한다면 몸 전체가 소리 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몸 전체가 소리를 흡수하여 그 소리가 몸 전체를 흠뻑 적신다면 수행자는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힘을 잘못 사용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가령, 화가 나서 누군가에게 “나가 죽어라”라고 말하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어떤 부정적인 말이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말 한마디가 주위에 어떤 것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 시 함성은 새로운 정권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소리가 온몸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힘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분출되었기에 희망찬 새 정권을 탄생한 것이다.

2단계는 입을 다물고 마음으로 옴(OM)이라는 단어를 반복한다. 이제 몸은 사용하지 않는다. 몸 전체가 닫혀있고, 오로지 마음속에 옴 소리가 존재한다. 마음속으로도 가능한 한 크게 소리를 내야 한다. 마음이 그 소리에 흠뻑 적셔지도록 한다. 몸이 흠뻑 적셔지는데 1개월이 걸렸다면 마음에도 역시 1개월이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은 엄밀히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1단계에서는 성(性)이 사라질 것이고, 2단계에서는 사랑이 사라질 것이다. 성은 사랑의 육체적인 부분이고, 사랑은 성의 정신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치 촛불시위에서 일어났던 분노가 사라지고 안정된 새 정치가 펼쳐지는 것과 같다. 이제 새 정권은 유세 때 펼쳐놓은 수많은 공약을 하나하나 가시적인 형태로 보여주어야 하고 국민들은 온 마음으로 응원하여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소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확고한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3단계는 마음이 흠뻑 적셔짐을 느낄 때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치 음식을 먹고 나서 ‘이제 충분해’라고 느낄 때 알게 된다. 3단계에서는 몸도 마음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을 닫을 때 옴의 소리는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존재할 것이다. 수행자는 단지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일 뿐이다. 3단계는 수행자의 존재 전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모든 장애들은 떨어져 나가고 모든 장벽들은 사라질 것이다. 몸이 그 소리로 흠뻑 적셔지고, 마음이 흠뻑 적셔질 때만이 제3의 귀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때 수행자는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세상의 소리이다. 그것은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 나무에 귀를 대면 나무에 그 소리가 존재한다. 바위에도 그 소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선 몸과 마음이 초월되어야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약속한 공약들을 실행에 옮기면서 공약과 더불어 국민의 소리도 함께 들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권위적 에고(ego)를 내려놓은 상태에서 국민의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2단계에서 옴 소리가 마음에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3단계에서는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서조차 벗어나야 한다. 대선 때 세상을 향해 수없이 외친 공약들(1단계)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면서 2단계에 이르게 되고, 2단계를 거쳐 그렇게 행한 자신을 잊어버리고 세상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국민과 만나는 동사섭이다.

여유 갖고 대중에 녹아들어야
동사섭에 얽힌 이야기다. 27년 전 2월 몹시 추운 겨울, 필자는 ‘동사섭(同事攝)’이라는 심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지리산 백장암에 갔다. 그곳에서 아침마다 화장실에 가야했는데 그 때마다 다소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 이유는 바로 화장실 구조 때문이었다. 화장실 입구는 하나이나 들어가면 두 사람이 동시에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엉덩이만 가릴 수 있도록 판자가 사이에 있을 뿐 숨소리, 힘쓰는 소리, 닦는 소리를 모두 듣거나 볼 수 있어서 어지간한 배짱으로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화장실, 내 옆에 바로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스님이 들어오셨다. 놀라고 당황스러워 엉거주춤한 상태로 인사를 하는데, 스님은 태연히 앉으시면서 “우리 화장실 동사섭이나 할까요?” 하시지 않는가. 동사섭 프로그램을 하러 오기는 했어도 ‘화장실 동사섭’이라니 나는 의아했다. 우리 두 사람은 날씨 이야기, 동사섭 프로그램 이야기 등을 나누었고, 볼일을 끝냈다.

여기서 말하는 동사섭이란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써 인간생활을 하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해야 할 ‘네 가지 포용적인 태도’인 사섭법(四攝法)의 하나이다. 사섭법은 네 가지 덕목, 즉 보시(布施, 베푸는 것)·애어(愛語, 친절한 말)·이행(利行,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동사(同事, 협력하는 것)이며, 이 중에서 ‘동사섭’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자기의 일처럼 협력한다는 의미가 있다. 동사는 보살이 중생과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을 함께하고 화복을 함께하면서 그들을 깨우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적극적인 실천행이다. 이 동사섭은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차 마시는 대통령의 모습이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올 때도 같다면, 그는 소리도 마음도 아닌 이 둘을 넘어선 존재 전체의 모습이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차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던 일들을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대신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전체적으로는 매우 풍요로워질 것이지만 개인 간에는 심각한 격차가 나타날 것이다.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무너진 상황이 가져올 인지적 혼란과 자동화로 인한 대량 실직, 양극화 등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점차 노동현장에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문화를 향유하고 정신적 가치가 있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또 다른 사람들은 심각한 정신적 갈등과 고통을 겪을 것이다. 기존의 가치관, 삶의 방식, 생활환경 등이 바뀌면서 개인 간, 세대 간, 국가 간의 격차로 인한 갈등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때야말로 동사섭의 세상으로 변화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삶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에 빠질 때, 자신의 행복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도와줄 수 있는 의식으로 확장된다면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자신과 세상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염원이다. 점점 기계로 대체되는 인간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존재하되 나를 넘어 세상이 함께 할 수 있는 영적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명상은 바로 이런 능력을 길러준다. 부처님은 이미 이런 삶을 깨달으시고 우리가 삶아가면서 반드시 실천해야할 덕목으로 사섭법을 제시하신 것이다.

이제 인간사회에서 화장실 동사섭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자. 화장실에서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고, 짧은 순간의 만남이라도 참 만남의 순간이 될 것이다. 화장실에서 서로 어색하게 지나칠 것이 아니라 반갑게 눈인사를 한다든가 “안녕하세요” “날씨가 좀 더워졌네요”라며 가벼운 스침의 만남이라도 가진다면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지난번 문 대통령이 출근하려고 할 때, 영부인이 “바지가 짧네요”라고 하자 문대통령이 “이게 요즈음 유행이야”라고 답하듯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가 있으면 그 순간의 상황을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나누되 나눔이 없는 세상은 사심 없는 봉사를 행하거나 명상이나 다른 영적 수행에 전념할 때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실패했다거나 거부당했다고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과 환경에 이로움을 주는 통로가 됨으로써 사심 없는 동기와 행위를 하지만 우리는 이로움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동사섭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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