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명법 스님

서울 불광사 일요법회… ‘오늘을 사는 지혜’

어제의 하루는 이미 지나갔고, 오늘의 하루 역시 흘러간다. 누구나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하루를 잘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다가올 내일을 기다릴 뿐. 하지만 나에게 내일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매순간 마음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명법 스님은 5월 28일 서울 불광사 일요법회서 ‘오늘을 사는 지혜’라는 주제로 법문했다. 스님은 “오직 주어진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이라며 “온 마음을 다해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리=윤호섭 기자

주어진 하루 허투루 쓰면
오래 사는 것조차 무의미
마음 비워 대상 집중해야
충실한 시간 보낼 수 있다

 

고개 말고 몸을 돌려라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드리려는 이야기는 시 한 편입니다.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는 설악 무산 스님의 시인데요. 시조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 필명은 조오현이라고 속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현 스님으로 더 유명하시죠. ‘아득한 성자’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명법 스님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해인사 국일암으로 출가한 스님은 현재 각 교육기관 등서 미학과 명상, 불교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다양한 수행문화단체 등과 철학 세미나를 비롯해 마음치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미술관에 간 붓다〉 〈선종과 송대 사대부의 예술정신〉 등이 있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 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불교는 우리에게 올곧은 마음으로 진실하게 사는 노하우를 전해줍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여러 가르침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는 겁니다.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건 딱 오늘뿐입니다. 어제도, 내일도 우리에게 주어진 게 아닙니다. 이 순간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를 온전히 살았는가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일이 더 많을 겁니다.

제 은사스님 얘기를 잠깐 해볼게요. 은사스님께서는 5년 전쯤 열반하셨는데요. 당시 연세가 93세셨습니다. 장수하셨죠. 마지막에는 건강이 안 좋아져 요양원에 계셨는데 그 모습도 저에겐 큰 가르침이 됐습니다.

그때 저는 운문사에서 학인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쯤은 은사스님을 뵈러 갔습니다. 그러면 항상 은사스님께서는 책을 읽거나 염주를 돌리고 계셨죠. 어느 날은 불필 스님이 찾아오셔서 은사스님에게 심심하지는 않은지 여쭈었어요. 그러자 은사 스님은 “난 심심할 틈이 없다. 하루에 염주도 1천 번을 돌리고, 아미타부처님도 외고, 경전도 읽는다”고 말이죠.

보통 일이 없거나 누가 찾아오지 않을 때 혼자 있으면 굉장히 심심하죠. 그리곤 무얼 할까 고민합니다. 대체로 쇼핑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하는데 그다지 나에게 덕이 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잊고 지낸 사람이 잘 지내는지 걱정돼 전화한다기보다는 기분 나쁜 일 좀 하소연하고, 다른 사람 험담도 하려고 하죠.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매순간 온 정성을 다해 사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환희심을 내고, 깊은 경지를 이해하고자 하면서 질문이 시작되죠. <금강경>의 시작이기도 한데요. 부처님이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발우를 들고, 탁발 나가서 공양하고, 편안히 앉아 삼매에 드는 모습을 보고 수보리가 묻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항복시키느냐”고 말이죠.

부처님 제자 중에도 부처님 같은 모습을 보인 분이 있습니다. 5비구 중 한 분인 앗사지(마승) 존자가 탁발을 나가 먼 거리를 돌아다니며 목건련과 사리불을 만나죠. 목건련과 사리불은 이미 수준 높은 수행자였음에도 품새가 남다른 앗사지를 보고 스승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즉 앗사지 존자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가 핵심입니다.

불교를 상징하는 동물이 코끼리인 건 다들 아시죠? 혹시 왜 그런지도 아시나요? 부처님께서 사성제 설법을 할 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많은 동물이 강을 건널 때 헤엄을 친다. 하지만 코끼리는 바닥을 짚으며 걷는다.”

우리를 열반으로 인도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사성제는 바닥을 짚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코끼리 발걸음에 비유합니다. 아주 단단하게 수행하기 때문인데요.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하자면, 부처님은 사람을 볼 때 고개만 돌리거나 흘겨보지 않습니다. 온몸을 다 돌려 바라봅니다. 코끼리도 그렇습니다. 동작의 사소한 차이 같지만 이 안에 담긴 정신은 아주 다릅니다.

고개만 돌리면 내 마음의 한 부분만 가지만, 온몸을 돌려 바라보는 건 내 마음이 온전히 상대방을 향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행동하셨고, 5비구들도 이 같은 태도로 대중을 만났기 때문에 사리불과 목건련 등이 개종을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 이것입니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아주 깊은 선정에 들거나 극한의 고행을 하는 어려움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하루하루 일과에서 정성을 다해 사람들을 대하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바쁘다는 이유로 휙 지나가는 경우도 많죠. 심지어 자녀들이 얘기할 때 ‘어, 어’ 건성으로 대답하고 정작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있지 않나요?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해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해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면, 단순히 말만 듣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디가 불편한지,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 이해하게 되고, 그가 행복해하면 같이 누릴 수 있게 되죠. 그런데 대체로 우리는 건성으로 듣거나 몇 가지 정보만 따서 그것을 해주면 내가 거기에 보답을 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가장 간단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법회에서 법문을 들을 때는 당연히 이런 마음을 내시겠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모두에게 이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귀 기울인다면, 서로의 소통뿐만 아니라 나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사는 방법이 됩니다. 달리 좌복을 펴고 명상을 해야만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게 아닙니다.

다시 시로 돌아가 보죠. 하루살이가 하루를 사는데 그 하루를 온전히 산다는 얘깁니다. 한 일이라고는 3가지밖에 없죠. 뜨는 해 보고, 지는 해 보고, 알을 까는 것. 근데 이게 하루살이가 해야 될 온전한 일입니다. 우리 인생을 하루에 비유하면 어떨까요? 탄생도, 죽음도 경험하게 되겠죠. 우리 인생에 주어진 일은 아마 각자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일구고 사는 것, 어떤 사람은 사회적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여러 역할을 할 텐데 그것을 온전히 했는가 되묻는다면 당당할 수 있을까요?

또 한 가지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죽는 것. 오현 스님의 마음이 여기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과연 더 볼 것 없고, 할 일 다 했다고 후련하게 갈 수 있는 자세가 돼 있나요?

죽음이 언제 우리에게 올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한 평생이 누군가에겐 길고, 누군가에겐 짧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다 한 뒤에 갈 수도 있고, 준비도 못한 채 황망하게 갈 수도 있죠. 그 언제든 우리가 미련을 두지 않고 갈 수 있는지 되새겨야 합니다. 하루를 충실히 산다면 미련을 두지 않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천 년을 살아도 이렇게 하루를 살아야 성자가 아닌가 반문하게 됩니다.

제가 은유와마음 스토리텔링을 하며 기억에 남은 분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할머니 한 분은 금생에 어떤 모습이 나의 은유인 것 같은지 묻자 ‘그릇’이라고 하셨어요. 단단하고 쓸모가 많아서 언제든지 꺼내 쓰는 그릇이요. 시간이 지나도 편하게 잘 쓸 수 있어서 어떤 음식을 만들든지 사용하게 되는 스테인리스 그릇이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고 싶은지 여쭈자 더 놀라운 대답을 하셨습니다. 다음 생에는 화려한 샹들리에나 멋진 그릇도 되어보고 싶지만 청정한 감로수를 담는 그릇이 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마음이 얼마나 맑고 굳건한지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마음속에 청정함이 있다면 이 순간 모두 맑은 물처럼 충실한 삶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결국 앞서 말씀드린 하루살이 떼처럼 사는 것입니다. 어려울 게 없어요. 주어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부처님 제자들이 보인 것처럼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내 생각을 하면서 남의 이야기 듣는 게 아니어야 합니다.

아난존자가 뛰어난 기억력 갖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마음이 비워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부처님 말씀을 몰입해서 들을 수 있었고, 가장 많은 가르침을 기억하게 됐죠. 전통적인 선불교에서는 아난존자를 낮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탁월한 분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인연을 소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어진 것도 잘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마지막으로 행동을 비롯해 나의 습관을 잘 들여야 합니다. 습은 다음 생까지 가져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으로 습을 들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허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게 결국 좋은 습을 들이게 합니다. 요즘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허튼 생각에서 오는 게 많으니까요. 허튼 생각만 안 해도 하루를 정말 충실히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돌아보세요. 남 잘되는 것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험담만 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데 자신은 알 겁니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옛말이 있죠. 조금 달리 해석하면 한순간도 놀지 않고 마음을 올바른 데 쓰는 것이 곧 수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근래에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명상 등이 유행인데, 명상할 때만 마음을 올바르게 쓰려 하지 마세요. 습관이 명상할 때도 나타나는 법이니 평소에도 마음을 바르게 쓰는 훈련을 해야 명상도 더 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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