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다
극락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다
  •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
  • 승인 2017.06.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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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데휘 부인 극락 체험기 中

서방극락 연꽃에 왕생하고자
돌아가는 길 속세인연 끊겠다고 말하지 말라
단지 지는 해가 매달린 북과 같다 여기고
오롯이 눈앞에 분명히 보도록 하라
-제1관 지는 해를 상상하는 관. 〈관경16관변상도〉의 게송

속세가 싫다고, 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세상과의 인연을 버리겠다고 절규하는 위데휘 부인에게 “극락에 태어나고자 속세 인연 모두 끊겠다고 하지 말라!”라고 부처님은 일축합니다. “여기를 버리고 저기를 가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단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모아 내관(內觀)하면 극락이 열린다고 하는군요.

緣起하며 흐르는 세상
극락으로 가는 16단계의 관법(16관법) 중, 첫 번째는 ‘지는 해를 상상하는 것(日沒觀)’입니다. 극락의 풍경을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해가 지는 저 지평선 너머, 번뇌의 장막이 걷히는 그곳에 다시 엄청난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오온(五蘊)이 만들어 놓은 망상의 세계 이면에는 공덕으로 장엄된 세계, 소위 극락세계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의 ‘업의 눈’으로 보는 세계가 아닌, ‘지혜의 눈’으로 보는 진리의 세계, 실상의 세계를 문자로 비유해서 풀어놓은 것이 불교 경전이고,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 불교 회화입니다.

보배나무의 꽃봉오리에서는 온갖 열매가 맺히고 있는데, 그것은 흡사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나오는 보배 병과 같다. 거기서 눈부신 광명이 나오고 그것은 그대로 깃발로 변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배 일산이 된다. 보배 일산 속에는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 세계의 일이 비쳐 나타나고, 시방세계 불국토 또한 그 안에 나타난다. 이같이 보배 나무를 관조하라.
- 극락의 나무를 관(觀)하는 ‘보수관(寶樹觀)’,  〈관무량수경

극락의 투명한 유리 땅에는 높이가 8천 유순이나 되는 보배나무가 자라고, 꽃과 잎사귀 마다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꽃봉오리에서는 열매가 맺히고, 열매는 무수한 여의주를 품고 있고, 알알이 여의주에서는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고, 무량한 빛줄기들은 다시 깃발과 같은 파장으로 일제히 진동하며, 깃발들은 다시 무수한 보배 일산으로 변해 허공에 펼쳐집니다. 우주에 펼쳐진 일산 속에는 삼천대천세계가 다시 펼쳐지고, 시방세계의 불국토가 그 안에 나타납니다.

그 무수한 불국토 중에 하나가 우리가 사는 지구이겠지요. 법계가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 마음과 물질을 넘나들며 어머 어마한 스케일로 ‘무상(無常)’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망망대해 속의 잠시 스치는 한 점, 모래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극락 진입할 때 만나는 여의주
“그 찬란한 빛의 위신력과 공덕을 찬탄하는 지극한 마음이 끊어지지 않으면, 바로 부처님 나라인 극락을 맛볼 수 있다”고 〈아미타경〉에는 쓰여 있습니다. 염불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을 때, 비로소 만나게 되는 극락의 요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극락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린 다수의 변상도(變相圖: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도해하여 알기 쉽게 표현한 것)에서 둥근 여의주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보석 중의 왕인 여의주에서 부드러운 연못물이 흘러나온다. 열 네 줄기의 물줄기가 흘러나와 황금의 연못을 만든다. 연못 바닥에는 눈부신 금강석이 깔리고 개울마다 둥글고 탐스러운 연꽃이 피어난다. 그 흐르는 물소리는 삶이 무상하다는 진리를 알게 해준다. 여의주에서는 아름다운 금빛 광채가 나고, 그 광채는 백 가지 보석 빛깔의 새로 변한다.
-극락의 연못을 상상하는 ‘보지관(寶池觀)’ 중에서

극락의 연못, 여의주에서 팔공덕수가 뿜어져 나오고 그 물은 연못으로 들어가 연꽃을 피운다. 연꽃에서는 영혼이 연화화생하게 된다. 조선초기 〈관무량수경〉 변상판본.

연화화생의 원리
여의주에서는 물만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서로운 빛도 뿜어져 나옵니다. 이 빛은 다시 아름다운 극락의 새들, 극락조로 화신합니다. 극락조는 ‘괴롭고, 공하고, 덧없고… 내가 없다’라는 천상의 진리를 지저귑니다. 이러한 유기적인 환상의 끊임없는 순환이 계속됩니다.

경전 내용에서 부단히 만나게 되는 여의주는 바로 부처님 또는 불성(佛性)의 추상적 표현입니다. 우주만큼 큰 여의주가 있는 반면에, 모래알만큼 작은 여의주들도 있습니다. 영롱한 여의주의 향연입니다. 우리는 보통 부처님이라 하면, 사람의 모습으로 화신한 후덕 원만한 모습에 익숙해 있습니다. 여의주(법신)와 부처님(응신)은 동격으로 여의주가 추상적 표현 그대로 라면, 부처님 형상은 구상적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불상이나 불화이건 간에 본질적인 불성(佛性)의 모습인 원상(圓相)의 여의주가 없는 존상은 없습니다.

부처님 머리인 육계 한 가운데에서 둥그렇게 불뚝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여의주’인데 이를 전문용어로 육계 보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의주’·‘여의보주’·‘보주’·‘마니보주’·‘영락구슬’·‘보배구슬’ 등은 모두 ‘빛을 발하는 둥근 상’이라는 공통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는 궁극의 깨달음 또는 불성(佛性)을 표현할 때 쓰는 다양한 용어들입니다.

또 몸체에서 둥근 빛을 발하지 않는 부처님과 보살님은 없는데, 편의상 몸에서 나오는 빛을 신광(身光)이라 하고 머리에서 나오는 빛을 두광(頭光)이라고 합니다. 빛을 발하는 둥근 상을 2차원의 평면에 묘사할 때는 일원상(一圓相) 또는 원상(圓相) ‘○’의 형태로 묘사합니다. ‘생명의 빛이 나오는 둥근 원’으로 규정되는 ‘만다라’의 역시 같은 조형적 맥락입니다.

고려시대 및 조선 전기의 ‘관경16관변상도’를 보면 화폭의 상단 가운데에 커다란 여의주가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서는 상서로운 물이 뿜어져 나와 극락의 연못을 만들고, 연못에서는 연꽃이 피어나고, 이 연꽃에서는 죽은 영혼이 극락왕생하게 됩니다. 여의주(생명의 원천) → 물(생명수) → 연꽃(생명의 꽃 Cosmic Lotus) → 생명의 탄생(蓮花化生)하는 유기적인 구도를 풀어서 도해하고 있습니다.

여의주는 극락세계 전체를 만들어 내는 원천적 역할을 합니다. 조선 후기의 ‘극락도’에서는 거대한 여의주가 화폭 하단의 가운데에 금빛 또는 붉은 빛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여의주는 궁극의 불성의 표현으로서, 삼라만상을 만들어내는 바탕입니다.

연기법을 모르면 해방될 수 없다
틱낫한 스님은 종이 한 장에서 나무와 빛과 흙과 공기와 물을 봅니다. “생명과 움직임으로 가득 찬 이 거대한 세계는 항상 생성하고 변화하지만 그 중심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라고 인도의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은 말했습니다. 그 법칙(다르마 Dharma)이란 ‘변화와 생성’의 법칙이라고 정리하고 있는데, 이것을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자면 ‘무상(無常)과 연기(緣起)’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공(空)입니다.

"변화의 법칙은 부단히 결합과 해체를 반복하며 움직이고 있는 이 세상의 존재의 법칙을 말한다. 강물은 일견, 항상 거기에 그렇게 흐르는 듯 보이지만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헤라클레이토스(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흩어져서는 다시 밀려오고 밀려와서는 다시 흩어져 간다. 모든 것은 유동하는 변화의 산물이며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불변적인 요소가 있을 수 없다.”, “만물은 유전하며 같은 상태로 한 순간도 존재하지는 않는다”, “만물은 흘러가고 결코 머무는 일이 없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도 이구동성 말 한 바 있습니다.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라고 이미 말씀하신 바 있지요. 노자 역시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진리는 흐르는 물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법(法)”이라는 한자를 보면 물 수(水) 변에 갈 거(去)가 합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흐르는 물처럼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일견 겉으로 찰나적으로 상(相)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존재는 부단한 흐름 속에 있다는 것. 유형과 무형의 세계는 함께 공존합니다. 중생의 눈으로는 유형의 세계만 보이지만, 수행을 통해 지혜의 눈(혜안)을 개발하면 무형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은 나무가 되고
짐승이 되고 그리고 떠도는 구름이 된다.
그리고 모습이 바뀌어 낯선 것으로 돌아와
내게 묻는다.
내 무엇이라 대답하랴.
-헤르만 헤세의 시詩 〈이따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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