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에 대해 의견을 묻고 싶다. 흔히들 사춘기를 넘길 무렵 이성(異性)간의 만남 등으로 받아들여 얼굴을 붉힐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매일 매일 매 순간의 일들이 첫 경험으로 다가온다. 밥 먹고 배설하며 책 읽고 일하는 것들이 모두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만남·설렘·헤어짐도 오늘의 경험
모양 치우침 없어야 지혜로운 삶


오늘은 무수히 많아도 오늘만의 오늘은 오로지 지금의 오늘 뿐이기 때문이다. 하루 세끼의 밥 먹는 일도 곰곰이 살펴보면 오늘 이 순간의 끼니가 특별하며 유일하며 첫 경험의 식사가 되기 때문이다.

천 번, 만 번의 식사도 같은 식사는 절대적으로 있을 수도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밥도 반찬도 분위기도 제 각각 다를 것이며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다른 식사이기 때문에 첫 경험의 식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친구와의 만남도 헤어짐도 같은 만남과 헤어짐이 되는 것이다. 한 순간도 같은 순간은 절대적으로 없는 것이다.

닮은꼴의 얼추 비슷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솔찬히 색깔과 무게에 있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움큼의 솔잎을 쥐고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면 같으나 같지 않고 길이와 색깔, 두께와 부피가 천 가지 만 가지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하듯 일생에 하루의 오늘은 무수히 많으나 오늘의 오늘은 오늘 뿐인 것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올 오늘인 것이다. 하여, 백년을 살아도 어제와 내일은 영원히 없고 오늘의 오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의 종교학자들은 불교를 오늘의 종교로 부르며 깊고 높은 철학적 과학성에 놀라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 차례 인용했던 짧은 이야기 하나 다시 옮겨 와야겠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어느 노 교수가 자동차를 몰고 강원도 어느 해변에 이르러 식사할 식당을 찾다가 어느 식당의 출입문에 붙어있는 재미있는 글귀를 만나게 된다. ‘오늘은 현찰입니다. 내일은 외상이 가능합니다.’ 노 교수는 식사를 끝내고 밥값을 계산하며 식당 주인한테 말한다.

“오늘은 현찰내고 식사했는데 내일 다시오면 외상 가능 합니까?”
그러자 식당 주인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자고나면 다시 오늘입니다.”

그렇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오늘 뿐인 것이다. 영원한 오늘만이 있을 뿐이다. 만남도 헤어짐도 설렘도 오늘만의 첫 경험이요 팍팍하고 지루한 권태로움도 오늘만의 첫 경험인 것이다.

천 번, 만 번을 식사해도 똑같은 식사는 있을 수 없듯 희망과 절망도 첫 경험임을 알아야한다. 흐르는 강물에서 목욕할 경우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감으로 같은 강물로 목욕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사람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 헤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내 자신도 순간과 찰라 지간에 인체 공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끊임없이 변화, 변모해 같은 모습의 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듯 생체변화의 생멸(生滅)의 윤회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같은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같은 시간은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장소 또한 자연의 변화 법칙에 의해 같은 장소는 이미 변화해 달라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닮은꼴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며 생각의 모순된 착각 속에서 생사(生死)의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염기염멸(念起念滅)이 그대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이며 머묾 없는 머묾, 모양에 치우치지 않는 자유로움이 지혜로운 삶인 것이다.

〈육조단경〉의 핵심사상은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이다. 생각에 끄달리거나 집착않는 무념(無念)과 모양과 형식에서 자유로운 무상(無相)과 머묾 없는 머묾의 무주(無住)를 행복과 자유에 이르는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 소중하듯 닫힌 문 열고 보면 날마다 좋은날의 첫 경험인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첫 경험이 날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소설 속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너와 나, 우리인 것이다. 작은 일에도 소소한 인연에도 선입견을 앞세워 다투거나 멀리하지 말 일이다. 모든 것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마음의 평화를 잃지 말 일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될 수 있게 날마다 새로운 첫 경험으로 행복과 자유 누리며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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