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고류지와 닌나지

일본의 국보인 고류지 봉안 목조미륵반가사유상. 한국에도 유사한 형태의 국보 반가사유상이 있어 양국의 긴밀한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고류지(廣隆寺)
교토는 나라보다 더 늦은 시기에 창건된 절이 많지만 고류지는 603년에 건립된 사찰로 교토에서 가장 오래 된 절이다. 또 쇼토쿠타이시(聖德太子)가 건립한 호류지(法隆寺), 주구지(中宮寺)등 일본 7대사(日本7大寺)의 하나이다. 원래 명칭이 하치오카데라(蜂岡寺), 하타노키미데라(秦公寺) 등 몇 개 있었지만 오늘날은 고류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니혼쇼키(日本書紀)에 의하면 도래인 하타노가와카쓰(秦河勝)가 쇼토쿠타이시한테 불상을 하사받고 이 불상을 본존으로 사찰을 건립한 것이 고류지의 시작이라고 한다.

목조반가사유상 봉안처 고류지
신라 渡來 佛母가 조성 추정돼
한일 불교 깊은 우호관계 확인
닌나지, 日황실 사찰의 대표격


창건 당시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으나 화재나 전란 등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지금은 창건 당시보다 작아졌다. 현재 고류지는 주택가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인 난다이몬(南大門) 바로 앞에는 참배길이 아니라 자동차나 노면전차가 왕래하는 큰 길이 있다. 게다가 경내도 넓지 않아서 옛날 호장한 사찰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도 내가 고류지를 교토 지역 사찰 중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장 오래된 사찰이여서가 아니다. 도래인 하타 씨와 연관있는 사찰이고 일본 불상 가운데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느낌이 드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다이몬에서 들어가면 가장 뒤쪽에 신레이호덴(新靈寶殿)이라는 건물이 있고 아스카 시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불상이 상설전시로 공개되어 있다. 고류지 팜플렛에 의하면 신레이호덴에는 국보 20점, 중요문화재 48점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국보로 지정된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분도 안치되어 있다. 한 분은 보관(寶冠)미륵, 또 한 분은 얼굴이 우는 것처럼 보여서 ‘우는 미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관미륵의 아름답고 이지적인 얼굴, 깊이 사색하는 사유의 자세,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불상이다. 어디서 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신라에서 전해진 것 아니면 일본에서 도래불사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관미륵은 일본에 있는 불상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불상이다. 사랑스럽고 청년처럼 젊어보이고 너무 인간적이다. 신레이호덴에 가서 보관미륵을 만나면 영원히 앞에 서있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서울에 거주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만나는 것 또한 한국 생활가운데 가장 큰 기쁨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고류지의 반가사유상이 옛날의 한반도와 일본의 깊은 관계를 현대의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용히 알려주는 것 같다.

신레이호덴에는 또 한일 간의 깊은 관계를 알려주는 도래인 하타 노가와카쓰 부부의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다. 여기서 도래인 하타 씨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고류지, 교토 대표적인 관광지인 아라시야마(嵐山)지역이 교토시 우쿄구(右京區)에 위치한다. 우쿄는 원래 가쓰라가와(桂川)강의 범람이 많은 지역이었다.

여기에 하타씨가 집단으로 도래했고 최신기술을 구사해 강에 제방을 쌓아 농지화했기 때문에 우쿄는 비옥한 땅이 되었다. 하타 씨는 농사, 제방 외에도 양조, 양잠, 베짜기 등 신기술을 일본에 전했으며 일본고대 사회가 발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타 씨를 ‘하타’라고 발음하는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故우에다마사아키(上田正昭)의 〈도래渡來の고대사古代史〉에 의하면 하타씨 가운데 베짜기를 맡아서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기직(機織)의 일본 발음인 ‘하타오리’의 하타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고, 비단을 산스크리트어로 ‘하타’라고 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고도 한다. 또 도래인이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에 한국어 ‘바다’가 ‘하타’가 되었다라는 주장도 있다. 경상북도에 있는 옛날지명인 ‘파단(波旦)’이 일본에서 ‘하타’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저자 우에다 교수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818년 고류지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때 고류지를 재건한 사람도 역시 하타 씨 출신인 도쇼(道昌) 스님이었다. 도쇼 스님이 강에 다리를 놓거나 홍수대책으로 제방을 개축하거나 민중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를 두고 사람들은 교키(行基) 스님의 재래(환생)라고 칭찬했다. 아라시야마에 도쇼 스님의 공을 기념한 석비가 있다. 또 고류지 신레이호덴에는 도쇼 스님이 제작했다고 전하는 허공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일본 황실 사찰 닌나지의 오무로자쿠라. 개화 절정기에 닌나지는 벚꽃 극락이 된다

닌나지(仁和寺)
우즈마사 고류지역에서 노면전차를 타고 가타비라노쓰지 역에서 기타노하쿠바이초(北野白梅町)행으로 갈아타야 한다. 오무로닌나지(御室仁和寺)역에서 내리면 북쪽방향으로 닌나지의 훌륭한 문이 보인다.

닌나지가 위치한 이 곳은 헤이안 시대 초기부터 경승지(景勝地)로 알려져 있고 많은 귀족이 별장을 지었다고 한다. 여기에 886년 고코(光孝) 천황이 사찰을 발원했다. 그러나 이듬해 고코 천황이 세상을 떠나자 천황의 아들인 우다(宇多) 천황이 아버님 유지를 받들어서 888년 사찰을 개창했다. 당시의 연호인 ‘닌나(仁和)’가 닌나지라는 사찰 이름으로 붙여진 이유다.

우다 천황이 897년 31세때 왕위를 아들에게 양위하고 899년에는 출가해서 법황(法皇)이 되었고 904년 닌나지에 어실을 만들었다. 여기의 법황이란 출가 태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법황이 거주하는 곳을 오무로(御室)라고 부르는데 ‘닌나지에 있는 오무로’가 ‘오무로가 있는 닌나지’가 되어 이후로는 ‘오무로’가 닌나지 일대의 지명이 되었다.

닌나지는 대표적인 몬제키(門跡) 사원(寺院)으로 알려져 있다. 몬제키란 황실이나 귀족이 대대로 주지를 맡아오는 사찰 또는 이런 주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우다 천황이 출가해서 닌나지 주지인 오무로 몬제키가 된 것이 몬제키의 시작이다. 닌나지는 19세기 후반까지 황실이나 귀족의 자손들이 주지를 맡아서 이어져 온 격식이 높은 사찰이다. 황실과의 관계 또한 깊다.

헤이안 시대 후기에는 닌나지 본사를 중심으로 주변엔 닌나지 말사나 황실이 발원한 사찰이 잇따라 건립되어 오무로 일대는 크고 작은 사찰이 많은 지역이 되었다. 12세기 초에 위용을 자랑하던 닌나지 가람이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재건되었고, 주변 말사 가운데 사라진 곳도 있었지만 닌나지 전체적으로는 융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번성했던 닌나지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무로마치 시대 후기인 1467년에 전국의 슈고다이묘(守護大名)가 동군, 서군으로 나뉘어 싸우는 오닌노란(應仁の亂)이라는 큰 전란이 벌어졌다. 슈고다이묘란 원래 가마쿠라 시대 때 바쿠후(幕府) 무가정권의 정청(政廳)이 지방마다 배치한 군사, 경찰을 담당하는 슈고(守護)가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 권력을 확장한 결과 영주화된 것을 가리킨다.

오닌노란은 병사 약 27만 명이 교토에서 약 11년에 걸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일본 역사상 최대급 전란이었다. 닌나지에 진지가 있던 서군을 향해 동군이 쳐들어오고 그로 인해 닌나지는 오무로를 비롯한 당탑이 다 타버리고 온통 잿더미로 변했다.

닌나지 재건이 시작된 것은 에도 시대에 들어서부터다. 17세기 에도막부 3대장군인 도쿠가와이에미쓰(德川家光)가 닌나지 재건을 위해 지원했다. 당시 개축하고 있었던 교토 고쇼(京都 御所)에서 기존건물을 하사받고 닌나지로 옮겼다.

현재 닌나지 금당이 고쇼 시신덴(紫宸殿)을 옮겨 놓은 것인데 당시의 궁전건축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로 정말 귀중하다. 금당뿐만 아니라 닌나지는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일본미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갖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황실과의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그 연유라고 할 수 있다. 평소 닌나지의 금당에는 못들어가지만 교토문화재 특별공개 기간 중에 닌나지를 방문한다면 예불을 드릴 수 있다.

닌나지 입구인 니오몬(二王門)으로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보이는 곳이 고텐(御殿)이다. 고텐은 역대 몬제키가 거주했던 곳이며 고텐을 관람하면 일본 황실의 품격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고텐에 있는 신덴(宸殿)은 에도시대 고쇼에서 하사받은 건물을 옮긴 것이나 19세기 말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20세기 초 재건한 것이다.

고텐에서 신덴 외에도 건물이 몇 개 더 있는데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회랑을 따라 걸으면 마치 궁전에 들어와있는 느낌이 든다. 교토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는 사찰이 많지만 이렇게 황실궁전의 우아함을 느낄 수 있는 사찰은 닌나지뿐이라고 생각한다. 오중탑을 차경으로 한 고텐정원도 정말 예쁘다.

마지막으로 닌나지 대명사처럼 유명한 오무로자쿠라(御室櫻) 소개를 하지 않으면 닌나지 소개를 했다고 할 수 없다. 오무로자쿠라는 키가 아주 작으면서 보통의 벚꽃보다 꽃잎이 살짝 크지만 개화는 교토에서 가장 늦다. 오무로자쿠라의 개화 절정기에는 오중탑이 마치 벚꽃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모습으로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오무로자쿠라가 만개한 시기에 맞춰서 닌나지를 방문하면 교토의 우아함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고류지·닌나지 주변 볼거리
고류지, 닌나지 주변에는 킨카쿠지(金閣寺), 료안지(龍安寺)를 비롯해 볼거리가 많다. 아라시야마도 가까워 이 지역에서 하루 종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고류지 북쪽엔 도에이우즈마사영화촌(東映太秦映?村)이라는 테마파크가 있다.

영화촌에는 영화사 촬영소의 대하사극 세트장이 공개되어 있고 에도시대 거리풍경을 체험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는 현장을 직접 볼 수도 있고 대하사극 의장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 등 기획이 풍부하다.

이 지역의 교통 수단은 노면 전차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지만 킨카쿠지나 료안지를 경유해서 닌나지에 오는 버스는 이용승객이 많아서 불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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