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 스님(봉은사 청년부 지도법사)

카이스트에서 학업을 과감히 중단하고 출가의 길을 선택한 도연 스님. 어디선가 좌절하고 있을 청춘들을 위해 자신의 방황 스토리를 기꺼이 내놓는 스님의 모습에서 부루나 존자의 모습을 본다.

2006년 카이스트 휴학 후 출가
‘성적을 위한 공부’에 회의 느껴
“행복하지 못할 거란 불안감”
교회 가르침서 해답 찾지 못해
명상 후 1년만 수행해보자 결심

출가 1년 만에 찾아온 고비
탁발 수행·학업생활 병행 중
2011년 학사경고 받아 방황
부모님도 “이제 그만하라” 설득
1달간 수행 중단… 초발심 되새겨


2016년 조계종으로 종단 변경
10여년 대한불교법상종에 몸담아
‘自利利他’ 뜻 품고 조계종 行
인도철학 전공하며 ‘자기수양’
명상클래스 열어 대승불교 실천

청춘… ‘홀로서기’‘출가정신’
20대 들어서면 ‘마음의 독립’ 필요
‘정신 독립’도 해야 진정한 홀로서기
“행복은 결코 획일화 되지 않아”
5월 책 〈누구나 한 번은…〉 발간

카이스트에 다니다 말고 스님이 됐다고? 대체 무슨 연유에서 일까?

몇 해 전 카이스트를 10년 만에 졸업해 화제가 된 스님이 있다. ‘10년 만에 졸업’도 ‘카이스트’도 이슈의 대상이 아니었다. 입학 때는 노벨상을 꿈꾸던 물리학도가 졸업 때는 승복을 입은 수행자가 됐다는 그 자체만으로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일류대학을 제쳐두고 스님이 됐다니, ‘도대체 왜?’란 물음이 절로 따라 나온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도연 스님이다. 10년 동안 도연 스님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던 걸까.

5월 29일 서울 동국대 교정에서 만난 스님은 “단지 그곳에 자신이 찾던 행복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곳에 행복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인가. 궁금증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삶에 회의감 들 때 부처님법 만나
“고2때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어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국립대학을 가야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삭발도 했어요. 대학을 가고 싶은 이유는 단순했어요. 좋은 대학을 가야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근데 막상 대학에 오니 생각과는 너무 달랐어요. 또 성적을 위한 공부를 해야 했죠.”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할수록 코너에 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영영 행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러던 중 불교를 만났다. 사실 스님은 출가 직전까지 ‘신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불교’를 떠올리면 향냄새 때문에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교와의 인연이 깊었을까. 20살 청춘의 스님이 삶의 회의에 빠져있을 때 불교가 나타났다.

“교회를 매우 열심히 다녔어요. 하지만 교회에서의 가르침이 제게 궁극적 해결책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 포교당에서 수행하는 젊은 스님들을 봤는데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스님들을 따라 명상을 하게 됐는데 그 순간 막연히 행복할 수 있단 확신을 느꼈어요.”

스님은 그 길로 법상종에서 출가해 ‘석하’란 법명을 받았다. 1학년을 막 마친 2006년 초였다. 부모님과 지인들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스님의 결단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스님 표현에 의하면 ‘출가를 저지르고야 만 것’이다.

처음에는 1년만 수행해볼 생각이었다. 당장 삶의 탈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에 1년 동안 삶 속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보고 그 답을 구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디 수행이 하루아침에 끝날 일인가. 1년이 지났을 때 스님은 수행과 깨달음은 삶 전체를 두고 닦아야하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빨리빨리 하고 다른 걸 또 하는 습성이 있었어요. 수행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죠. 근데 막상 그게 아니더라고요. 삶의 문제들은 일평생을 두고 산적해 있습니다. ‘수행은 끝이 없다’는 말을 몸소 느꼈어요. 하면 할수록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년간 수행에 전념한 후 2007년 학교로 돌아왔지만, 스님으로서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다보니 쉽지 않았다. 생활비, 책값, 교통비 등을 탁발을 통해 자급자족하다보니 공부할 시간은 더더욱 부족했다. 스님의 마음속에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이 꿈틀거렸다.

“일주일의 절반을 선원에서 지내다보니 과제할 시간은커녕, 탁발도 수행도 해야 하니 방황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님도 이제 그만하고 돌아오란 말씀을 계속 하셨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고비였네요.”

실제로 스님으로서 생활도 그만뒀다. 수행도 일절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공부만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일반 학생으로서 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연 스님은 다시 서울 포교당으로 돌아왔다.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으니 처음 포교당에 왔던 그 순간 일어났던 초발심이 타올랐다.

도연 스님이 동국대 중앙도서관에서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스님은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에 입학한 후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청춘의 기로서 출가… ‘청춘을 말하다’
10여년 가까이 법상종에 몸을 담았던 스님은 카이스트를 졸업한 해인 2015년, 現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조계종 행자로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유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란 대승불교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선학과 경전을 체계적이고 깊이있게 배우고 싶었어요. 선지식을 만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상구보리) 또 개인적인 공부와 수행으로부터 배운 부처님법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었습니다.(하화중생)”

물론 다시 행자로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힘든 행자생활도 도반들과 함께하니 그야말로 모든 날이 좋았다. 사미계를 받은 후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도연 스님에게 배움은 언제나 새롭고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 1학년 학생이다.

스님의 책가방을 잠시 들어보니 돌덩이를 몇 개 넣어둔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안에 뭐가 들었냐고 여쭈니, 집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이 있는데 혹시 책이 없어서 못 볼까봐 어렸을 때부터 늘 모든 책을 짊어지고 다녔다고 한다. “사실 안 보는 경우가 더 많아요”라며 수줍게 웃지만, 강의가 없던 그날도 도서관에 가려고 학교에 왔다는 스님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었다.

“원효 스님, 보조 지눌 스님, 서산 대사 등 큰스님들의 가르침과 사상을 배우는 게 가장 흥미롭습니다. 불교는 공부하면 할수록 삶의 해결책을 제공해주는 탁월한 종교란 걸 알게 돼요.”

아무리 공부에 욕심 많던 스님이라지만 산스크리트어는 여전히 어렵기만하다. 공부할 내용도 너무 방대해서 쉽지 않다며 멋쩍게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학생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스님의 ‘청춘’이 궁금해졌다. 스님은 청춘을 ‘홀로서기’ 그리고 ‘출가정신’이라고 정의했다.

“20대로 들어서면서 인간은 홀로 서야하는 시기를 맞게 되죠. 그 전까지는 부모님이 안식처였다면 이때부터는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안식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독립’입니다. 또 자신만의 삶의 가치관을 갖는 ‘정신의 독립’도 함께 해야 진정한 홀로서기입니다. 스님들만 출가하는 게 아니에요. ‘스물에 미련해지지 않으려면 부모를 떠나야하고, 마흔에 어리석지 않으려면 스승을 떠나야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20대를 보내서였을까. 청춘의 한 가운데서 출가한 도연 스님은 ‘포기=좌절’의 굴레 속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을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스님은 연애, 결혼, 좋은 대학, 대기업 취업 등 자신 앞에 놓인 과제들 중 어차피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해야한다면 ‘지혜롭게 포기하라’고 말한다.

“4포 세대, 7포 세대, N포 세대란 말 많잖아요. 그런데 포기한다고 해서 꼭 좌절해야할 필요는 없어요. 전 학교를 포기하고 출가했었는걸요. 그 자체로 슬픈 일이 아니에요. 포기했을 때 오히려 더 높은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해요. 물질적 가치를 포기함으로써 정신적 가치, 궁극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지혜로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행복은 결코 획일화된 것이 아닙니다.”

스님의 말은 ‘남들 다 가려고 하는 곳에 내 행복도 있는 건 아니다’라는, 당연하지만 외면했던 사실을 깨닫게 했다.

도연 스님의 카이스트 졸업사진. 스님은 2015년 10년 만에 카이스트를 졸업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누군가에 도움 되는 삶 살고파”
도연 스님이 출가한 후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어느 하나의 에피소드가 답변으로 돌아오겠거니 질문했는데 스님은 ‘명상할 때’ ‘걸림 없는 삶을 산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을 때’라고 답했다. 자세히 보면 결국 스님은 매 순간 행복하다.

“일반 사람들처럼 대학을 졸업해 직장에서 조직생활을 했다면 저와 잘 안 맞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스님으로서 저는 세속에서보다 조금 더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누군가가 시켜서, 또는 떠밀려서 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빨리 하지 않아도 되고요.” 이것을 스님은 ‘걸림 없는 삶’이라고 표현한다.

무엇보다 행복한 순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방황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다. 내 고난이 누군가에게 힘이 줄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니 ‘힘들었지만 허투루 산 것은 아니구나’란 생각도 든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스님의 가장 큰 화두도 ‘나와 남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길’을 찾는 것, 즉 자리이타행이다.

“이 세상 누구나 자신을 빼고 생각할 수는 없어요. 자기의 행복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욕심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에도 도움이 돼야겠지요. 반드시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해야만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씩 배우면서 또 조금씩 베풀어야 내게 기쁨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늘 회향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않겠어요?”

이번 5월, 책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를 낸 것도 같은 이유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려는 20~30대 청년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절망과 회의, 좌절 등 경험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미 스님이 책을 발간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행복으로 이르는 길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겁낼 일이 없었다. 책을 쓰는 것 뿐 아니라 일반인들을 위한 명상클래스도 막 문을 열었다.

“SNS를 통해 명상하고 싶은 사람을 제가 직접 모집해요. 따로 장소가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대관해서 5월 27일에 1회 명상클래스를 열었어요. 15명이나 오셨어요.(웃음) 제가 부처님법을 알려줌으로써 누군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찬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스님의 목표는 훗날 ‘마음의 행복을 주는’ 명상아카데미를 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불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행복을 원하는 누구나에게 문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도연 스님은 일반인들에게 절 문턱을 낮추는 것이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기만의 삶의 길을 찾아가기에도 버거운 때에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골똘히 고민하는 이 젊은 스님에게서 한국 불교의 밝은 미래를 본다.

도연 스님은?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세계적인 물리학자를 꿈꿨으나 자신에게는 그 길이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돌연 출가, 10년 동안 탁발과 참선·위빠사나 명상을 중심으로 수행해 왔다. 2012년부터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각종 연구소와 서울 홍대의 명상센터에서 에너지 명상 및 참선을 지도했다. 외교부 산하 NGO단체 ‘세계시민학교’와 서울시교육청 위탁형 대안학교 ‘숲속작은학교’에서 봉사했다.

도연 스님이 5월 발간한 책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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