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의 절 수행

 

젊음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딸과 함께 20여 일 동안 나라밖 여행을 다녀왔다. 서유럽의 이 도시, 저 도시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하다 보니, 만사를 다 잊고 이국의 정취에 젖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일이었다. 취업을 준비를 하고 있는 딸에게는 이번 여행이 어디에 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로운 여행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모녀 사이라도 적지 않은 날들을 하루 24시간 함께 있으면 트러블이 있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집에서는 내가 보호자였지만 역할이 바뀐 낯선 여행지에서 딸아이는 내 보호자 노릇과 가이드 역할을 능숙하고 충실하게 해냈다. 걷기보다는 차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체력이 약하다 싶어 과연 잘 다닐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여행하는 내내 먼저 일어나 준비하고 정확하게 여행지를 잘 찾아 안내했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쇼핑하는 것이 즐거운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오랜 시간 잘 걷고 무엇이든 잘 먹고, 동행자인 엄마는 물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절 바르고 친절했다. 모르는 것은 쫓아다니면서 묻고 바로 해결했다. 적극적이고 씩씩했다. 평소 좀 더 적극적이고 경쾌했으면 하고 아쉬워했던 딸아이의 모습은 거기에 없었다. 딸과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다.

불안한 마음은 현재에

집중하지 않을 때 발생해

한배 한배하며 평정심 찾아

 

“아, 사람은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저절로 잠재된 제 실력을 발휘하게 되어있구나!”

그러니까, 부모는 자식이 그러한 힘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의 삶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바라봐주면 되는 것이다. 인생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부모들에게 말한다. 자식이 잘 못된 길로 가는 것만 바로 잡아주는 역할만 하고 나머지는 그에게 맡기라고. 그런데 참, 그게 어렵다. 조금 늦게 일어나면, 저렇게 게을러서 전쟁터와도 같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한다. 책을 좀 더 많이 읽으면 좋을 텐데, 시간을 좀 더 알뜰히 썼으면 좋을 텐데 등등의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모든 것이 괜한 걱정이라는 것을 나의 딸은 이번 여행길에서 보여주었다. 그냥 젊음 자체만으로 충분히 완성되어 있는 존재였고 넘치도록 아름다웠다. 그리고 엄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개척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부모는 그야말로 자식이 지혜와 자비를 구족한 부처와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을 믿고 그가 서서히 꽃피워나가는 것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숲속의 나무들이 제 스스로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에 아이들 이름 뒤에 ‘부처님’을 붙여 저장해 놓고 있다. 전화를 받을 때‘부처님’을 눈으로 보며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면 매번 자식을 부처로만 바라보는 일은 아직 요원하다. 자식을 위해 수없이 108배를 하고 3천배를 했지만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딸 얘기로 서두가 길었다. 젊은이들이 108배를 하면 정말 큰 힘을 발휘하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몇 회에 걸쳐 젊은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미래가 불안한 젊은이들에게 108배를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 뉴스에 난 젊은이의 소식을 들었느냐면서 전해준 소식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한 어머니가 공무원 시험에 연거푸 세 번을 실패한 아들을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태우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모르면 몰라도 어머니는 한없이 위축되어 있었을 자식을 위로했을 것이다. 너는 아직 젊고 기회는 또 있다고, 괜찮다고 안심하라고. 그런데 아들은 잠시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갔다가 영영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생명을 스스로 버렸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큰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랍고 가슴이 덜컥했던 것은 공시생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본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반응이다.‘자살을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 심정만은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저 공시생들이 보인 반응을 보며 이러한 가슴 아픈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 앞에 마음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오래 강의를 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편은 우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면서 젊은이들을 위한 108배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간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존재인지, 살아있어 꿈을 품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충분히 아름다움 존재인지를 108배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남편도 꾸준히 108배를 해오고 있는 터라 108배로 얻는 희망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체로 삶은 불안하다. 변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삶의 당연한 이 이치를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내가 노력하는 것이 성취되지 않을까봐 두렵고, 겨우 얻은 지금의 안전함이 깨질까봐 두렵다. 그래서 두려움의 덩어리가 희망의 그것보다 더 커질 때 그 무게에 눌려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두려움은 내가 관념으로 형상화시켜 만들어 낸 것일 뿐 실체가 없다. 108배는 자신이 만들어낸 두려움이 허상임을 깨닫게 하고 자신이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몸을 움직여 만들어진 정화의 힘 때문이다.

생전에 청빈한 율사로 이름을 떨친 해인사 지족암의 일타 스님은 자애롭기로 이름이 난 수행자이셨다. 요즘은 고시공부를 주로 도심의 고시촌에서 한다는데, 예전엔 많이들 절 암자에서 준비했다. 시끌벅적한 도시와 멀리 떨어져 조용한 지족암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타스님은 밤낮 방에 들어앉아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젊은이들에게 매일 아침 예불 시간에 108배를 하도록 권했다.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면서 합격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을 가졌던 그들은 108배를 하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결과 대다수가 무난히 시험에 합격했다. 야구선수 박찬호씨가 미국에 프로야구리그에 진출해 최고의 투수로 활동할 때, 승부에 대한 불안감을 매일 108배를 하는 것으로 다스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현재에 집중할 때 불안감이 사라진다

17년 동안 줄곧 ‘깍뚜기’,‘만년 3등’소리를 줄곧 들으면서 본업인 노래보다는 예능에 출연해았던 코요테의 김종민씨. 그가 지난해 2016년 KBS연예대상을 받았다. 일간지 기자가 “지금 전성기라고 해도 언젠가는 슬럼프가 또 올 텐데, 그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방송에서 사자성어 맞추기 퀴즈를 하던 중 질문자가 “오매?”하자 “가!”로 대답하고(정답은 오매불망),“미인?”하자“박멸”이라고 대답했던(정답은 미인박명) 그다. 이처럼 늘 대중에게 어리숙한 바보로 비쳤던 그가 저 기자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했을까.

“단순해지는 거다! 뭐가 안 풀릴 땐 일단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몸을 열심히 쓰면서 부딪쳐보는 거다. 그렇게 하루 종일 고되게 부딪쳐보고 집에 돌아갈 때쯤이면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 뭐 어쩌겠어?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문제가 풀린다. 실력도 그렇게 는다.”

그러면서 그는 팔굽혀펴기를 예로 들었다.

“10개까지는 할 수 있다. 거기에 하나를 더해 11개를 만드는 게 정말 힘든데, 죽을힘을 다하면 11개를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하면 12개, 13개가 된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걱정 안한다. 11개를 일단 만들어 놓으면 뭐든 될 테니까”

20대 후반, 30대 초에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불안해서 사업에 손을 댔다가 몇 번이나 망한 적이 있다는 그가 팔굽혀펴기를 예로 들어 인생의 핵심을 설파한 것처럼, 108배도 그렇다. 처음엔 108배 하기도 힘들지만 그 산을 넘어서고, 1080배, 3천배를 하다보면 그가 말한 것처럼 뭐가 돼도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몸을 움직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절 108번 하는 것도 힘들었던 자신이 3천배를 해냈다는 쾌감을 맛보았을 때, 무엇이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이는 수행이 무슨 극기 훈련도 아니고 그렇게 3천배를 수없이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극기 훈련이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고 무엇을 넘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성철스님은 자신을 극기하는 자만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고 일갈하셨다.

지금 현재에 집중할 때 안심을 얻는다. 다시 말해 불안감을 확실하게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난 과거에 매달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마음이 가 있으면 마음도 몸도 무겁다. 가볍지 않으면 넘어지게 되어있다. 절 수행을 열심히 하고 있는 젊은 도반이 홀로 삼보일배를 하며 설악산 봉정암에 올라갈 때의 일이다. 밤이 늦은 시각, 깊은 산중에서 폭설을 만났다. 눈보라 속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머리에 두르고 있던 헤드라이트도 꺼져버렸다. 예상치 못한 일 앞에 당연히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을 때, 그가 선택한 것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에만 집중한 것이었다. 뭔가 불안하다 싶으면 마음이 현재에 있지 않을 때다. 현재에 깨어 있게 하는 수행이 108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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