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정토종 제3조 승원 대사

아미타불(자성불)이 염불하고 아미타불이 듣는다.

“애벌레가 세상의 끝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나비라고 부른다.” -리처드 바크

세상 사람들은 흔히,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 더 이상의 생명활동은 없다는 ‘단멸론’과 윤회를 통해 생이 이어진다는 ‘윤회론’ 중 한 가지 견해를 갖기 마련이다. 깨닫지 못한 중생의 입장에서 윤회를 인정한다면 ‘생사(生死)’를 애벌레가 의식의 진화를 통해 나비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볼 것이다. 반면, 윤회를 벗어난 깨달은 붓다(自性)의 입장에서는 생도 없고(不生) 죽음도 없다(不滅).

신도에겐 쉬운 칭명염불 권해

자비실천에 주변 저절로 감화

‘지금 여기’만큼 ‘생사해탈’ 중요

이런 후자의 입장에서는 시작도 끝도 없는 불생불멸의 존재가 바로 무아(無我)인 동시에 대아(大我)인 ‘참나’이다. 자성불의 입장에서는 시작도 끝도 없는(無始無終) 우주가 다름 아닌 우리의 참모습이다. 무한한 빛(無量光佛)이자 무한한 수명(無量壽佛)이 우리 ‘본래 얼굴’(本來面目)이다. 법장 스님이 성불하여 되신 아미타부처님이 우리의 자성불과 둘이 아니다. 아미타불이 염불하고 아미타불이 염불을 듣는 도리이다.

살아서는 현실정토를 이루기 위해 정진하고, 오온의 몸을 벗고서는 육도윤회를 벗어난 서방정토에 화생하여 불퇴전지보살로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한 후 구경에는 성불하는 가르침이 바로 정토법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혜원-선도 대사에 이어 정토종의 제3조로 추대된 승원(承遠) 대사의 염불수행과 가르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버린 음식 씻어먹으며 반주삼매 증득

승원 대사의 생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당나라 현종(712-756) 당시라고 한ㄷ. 지금부터 약 1,250여년 전 중국 형산(衡山)이란 지방에 계셨던 분이다. 당시 형산 서남쪽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그 밑이 널찍하게 비어 있었다. 대사께서는 거기에 조그만 움막집으로 암자를 지어 살면서 지극 정성으로 염불정진을 하셨다.

이때 대사께서 닦은 삼매는 가장 대표적인 염불삼매인 반주삼매(般舟三昧) 즉, ‘지금 바로 부처님이 눈앞에 현전하는 삼매(佛立三昧)’다. 후한(後漢)의 지루가참(支婁迦讖)이 197년에 번역한 정토종의 가장 선구적인 소의경전인 <반주삼매경>에 따르면, 염불행자가 7일 또는 90일(석달) 기간을 정해 몸(身)ㆍ입(口)ㆍ뜻(意)의 세 가지 업으로 마음을 가다듬어 바르고 온전하게 한 다음 부처님을 마음에 떠올리고 삼매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들이 수행자 앞에 현전(現前)하여 눈앞에서 부처님의 교화를 받는다는 법문이다.

 

살아서 부처님 친견하고 임종시 접인을 받는다

반주삼매를 닦는 구체적인 행법에 대해 정토종 제2조 선도 대사는 <관념아미타불상해삼매공덕법문(觀念阿彌陀佛相海三昧功德法門)>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도량에서 밤낮으로 마음 단속을 이어가며 전심으로 아미타불을 염하고 마음과 소리가 이어가되, 오직 앉고 오직 서서 7일간 잠을 자지 않으며, 또 때에 맞춰 예불 독송하며 염주도 잡을 필요없이, 단지 합장 염불만 알고 염념이 견불(見佛)하는 생각을 지어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미타부처님 진금색신의 광명이 철저히 비추고 견줄 바 없이 단정함을 그리워하면 심안으로 현전함을 볼 것이다.’”

이러한 반주삼매에 대해 인광 대사는 “반주삼매를 수행하지 않으면 눈앞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기 어렵고, 임종시 부처님의 접인을 받기 어렵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반주삼매는 살아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임종시 부처님의 접인을 받는 최고의 염불수행법인 것이다.

 

염불삼매 증득 후 신도들에게 칭명염불 권해

승원 대사는 담란-도작-선도 대사가 그러했듯이, 당신 스스로는 밤낮 없이 반주삼매를 닦는 한편, 생업에 종사하는 신도들에게는 간단하고도 쉬운 칭명염불을 권하였다. 저녁으로는 인근 마을에 찾아가서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시고는 간곡히 염불을 권하며, 이 사바고해를 여의고서 안락국(극락세계)에서 영원무궁토록 무량한 행복을 누리라고 가르침을 주었다.

대사의 움막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무소유’의 실천 그대로였다. 이상하게도 대사는 밥을 짓는 법이 없으며 또한 먹을 것을 구걸하는 일도 없었다. 다만, 마을에 내려갈 때 사람들이 버린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주워다가 깨끗이 씻어서 먹었으며 또 그러한 음식마저 없을 때는 진흙을 먹고 정진했다는 것이다. 진흙에 미네랄이 풍부해 간혹 먹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수시로 먹었다고 하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옷도 남들이 버린 것을 주워서 깨끗이 빤 후 기워서 누더기로 입었다.

 

무소유 실천하며 염불로 짐승까지 구제

시주에게 시은(施恩)을 짓지 않으시려고 그런 생활을 해나가시면서도 항상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여러 방편을 실천했다. 마을 입구나 길가에 큰 바위가 있으면 거기에 커다란 글씨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쓰거나 새겨놓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읽고서 선근(善根) 공덕을 짓게 했다. 들이나 산중에 가며 축생을 보면 염불하며 왕생극락을 빌었고, 위험에 빠진 짐승이나 물고기를 보면 꼭 건져 주며 염불로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발원했다.

언제 어디서나 염불행과 설법으로 무아(無我)를 실천하며 축생까지 구제하는 자비행을 보였으니,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사랑한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대사는 평생 진심(嗔心) 한 번 낸 적이 없으며,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해본 적이 없이 오직 선심(善心)으로 평생을 살아 작은 계율조차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인근 마을 사람들도 대사의 인자한 마음에 저절로 감화가 돼 모두가 스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염불수행을 하게 되었다. 그와 같이 수년을 교화하자 더욱 많은 신도들이 울력(雲力, 자원봉사활동)으로 미타사(彌陀寺)를 지어드려 수많은 불자들이 내왕하면서 정토수행을 하게 된 것이다. 대사의 덕망(德望)이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지자 교화를 받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아졌다.

혹, 신도들이 좋은 옷과 음식을 해 드리면 대중에게 나눠 주거나 가난한 마을 사람에게 갖다 주고는 부지런히 염불하여 다시는 이 괴로운 세상에 태어나지 말고 서방정토에 태어나라고 간곡히 권해주고 갔다.

 

아미타불도 칭찬한 극락세계 보살의 화현

승원 대사의 불가사의한 수행담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사는 이 세상에 생존해 있으면서 동시에 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받들어 모시고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부사의(不思議)한 분이었다. 훗날 정토종 제4조로 추존된 법조(法照) 스님이 한번은 정(定: 삼매)에 들어 극락세계를 보게 되었다. 이때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인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부처님 곁에 옷이 아주 남루한 차림을 하고 서있는 분이 있었다. 그래서 법조 스님은 속마음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른 분들은 모두 호화로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저 스님은 저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의아하게 여겼다.

그러자 아미타부처님이 법조 스님에게 물었다.

“네가 이 스님을 알고 있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이 스님은 너의 나라 형산에 있는 승원(承遠)이라고 하는 스님인데 참으로 장한 수행을 하고 있는 분이니, 네가 꼭 찾아가서 뵙도록 하거라.”

아미타부처님의 당부를 듣고, 법조 스님은 출정(出定: 삼매에서 깨어남)한 즉시 형산을 찾아가서 승원 대사가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바위 밑 움막집에서 혼자 있는 대사를 친견하고 보니 과연 삼매 중에 극락세계에서 본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법조 대사는 환희심으로 제자의 예를 갖추고 모든 수행법을 자세히 묻고 배움으로써 대를 잇는 정토문의 조사가 됐다.

 

삼매 속에서 극락의 승원대사 친견한 법조 스님

이러한 기록을 볼 때, 아마도 승원 대사는 가난한 스님의 몸을 빌어 중원에 왔지만, 실은 극락정토 보살의 화신으로 사바세계에 화현해 아미타부처님의 법을 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법조 대사처럼 삼매 속에서 아미타부처님과 극락세계를 친견한 사례는 반주삼매를 닦아 성취한 정토 조사스님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일들이다.

정토종 초조인 혜원(慧遠)법사가 삼매 속에서 3번 부처님을 친견한 사실, 3조 승원 대사와 4조 법조 대사가 16묘관(妙觀)을 닦을 때 항상 삼매 중에 극락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들은 사실 등은 전형적인 반주삼매의 도과(道果)인 것이다.

아미타부처님도 칭찬했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법력을 보인 승원 대사는 91세까지 중국에 정토법문을 널리 전하고, 다시 극락세계로 돌아갔다. 대사가 왕생하셨다는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마치 부모가 세상을 떠난듯 애석하게 여기며 남녀노소가 모두 나와 대사의 장례를 모셔드렸다고 한다.

 

작은 행복보다 생사해탈의 열반 추구해야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어서 우리 일생은 꿈결같이 흘러가고야 만다. 그런데, 요즘 명상이나 힐링 붐이 불면서 ‘지금 여기’의 행복을 강조하는 수행방편이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지금 여기’의 삶을 외면하고 죽음 이후의 왕생만을 강조한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일국의 왕자로서 모든 부와 권력, 명예와 쾌락을 향유했음에도 그 행복을 버리고 출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사윤회로부터 해탈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지금 여기’의 소소한 행복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온의 몸(五蘊身)을 버릴 때 식신(識神)은 또 어디로 윤회할 것인가를 깊이 반문해봐야 한다. 부디 부처님의 출가정신을 바로 보고 ‘생사해탈’이란 불교의 대의를 되새겨,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인 정토법문을 참구해 보시길 바란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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