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 보고 싶다면 스스로 觀하라
극락 보고 싶다면 스스로 觀하라
  •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
  • 승인 2017.05.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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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데휘 부인 극락 체험기 上
극락의 전각 모습. 일본 교토 지은원 소장 ‘관경16관변상도’의 부분. 1323년 작품으로 고려 왕실 정업원이 발원해 조성됐다.

“부처님! 제가 과거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이렇게 사악한 아들을 두게 되었나요?” 
아사세 태자는 아버지를 폭력으로 제압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굶겨 죽이려합니다. 게다가 아버지 역성을 든다며, 어머니(위데휘 부인)를 지하 골방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극락의 풍경이 상세하게 기술된  〈관무량수경〉의 서두는 이렇게 극적인 드라마로 시작됩니다. 옛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성을 잃고 날뛰는 아들이 빼든 시퍼런 칼에 자칫 죽을 뻔한 위데휘 부인. 깜깜한 골방에 갇힌 그녀는 참담한 심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과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뀌자 떠받들어주던 시녀와 신하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일제히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그녀는 번뇌의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어째서 우리 가족은 갈가리 찢어져야 하는가’,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내게 이럴 수 있나’ 깊은 골방에 속절없이 갇힌 부인은 어둠 속에 쓰러져 절규합니다. 

아버지·어머니 가두고 핍박한
희대의 패륜아 아사세 태자
절망에 고통받던 위데휘 부인
“극락을 보여달라” 청원하자
“참회 통해 자신보라”는 화답만


도대체 극락은 어디 있나 
그리고 부인은 “더 이상 이 혼탁하고 사나운 세상에서는 아예 살고 싶지 않습니다. 더럽고 악한 이 세상,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 가득하고 못된 무리들이 득실거립니다”라며, ‘아예 죽고 싶다’고 부처님께 호소합니다. 부인은 지체 높은 왕후의 몸.

하지만, 가족 간에 저질러진 패륜 앞에서 위엄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속절없이 괴로워합니다. 부인의 간절한 청에 마침내 부처님이 나타나자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끊어 버리고 바닥에 몸을 던집니다. 그리고 엎드린 채로 울부짖습니다. 도저히 이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없으니 지금 당장 ‘극락을 보여 달라’라고 종용합니다.

“저는 지금 부처님 앞에서 오체투지하며 참회하고 구원을 빕니다. 진정으로 간절히 원하오니, 부처님께서는 제게 청정한 업(淸淨業)으로 이루어진 편안하고 즐거운 세계(極樂世界)를 보여 주십시오. 바라옵건대 그곳에 태어나기 위한 마음가짐(思惟)과 바른 수행법(正受)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견치 못했던 운명의 장난, 불교에서는 이를 ‘업보’라고 합니다. 현생에서 당최 크게 잘못한 일 없었던 위데휘 부인은 순간 억울한 분심과 함께 억장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전생의 일은 알 수 없기에 먼저 오체투지하며 참회를 구합니다.

이 같은 기막힌 운명이 닥쳤을 때, 스님들께 해법을 여쭈면, 이구동성 먼저 참회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난데없이 당한 것도 마냥 억울한 마당에, 대체 무얼 잘못했다고 거기다 참회까지 하라니! 여차하면 제 잘못 없다고 고소와 소송이 난무하는 요즘 세태에 이해가 안가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참회라는 방법 속에 진정한 구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서 마음을 모아라
이러한 상황에서 먼저 참회하고 수행 방법을 구하는 부인의 모습에서 불자(佛者)로서의 기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범부라서 마음이 약하고 생각이 못미처서 천안(天眼)의 지혜를 없기에 부처님의 세계를 볼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방편이 있어 너에게 이를 보게 하리라”라고 하며 부처님을 극락의 풍경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인을 ‘범부’라 하셨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중생을 이르는 말입니다. 범부란, “교만하고 게을러서 아견(我見)만으로 전부를 헤아리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아는 것이 적고 오욕에 빠져있으면서도 자신의 식견만이 옳다고 하는 어리석은 상태인데, 대부분의 중생들이 예외없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중생을 통칭하여 범부라고 합니다.  

“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 아미타 부처님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그대는 마땅히 마음을 오롯하게 모아(繫念) 청정한 업으로 만들어진 저 세계를 명료히 관하라(諦觀). 내가 그대를 위해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하겠다. 그리고 미래 세상의 일체 범부 중에 청정한 업(淨業)을 닦으려는 자들 역시 서방극락정토에 태어나도록 할 것이다.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3복(三福)을 닦아야 한다. 첫째,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연장자를 공경하고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않고 열가지 선(十善)을 닦는다.〈세속의 선업〉 둘째,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여러 가지 계(戒)를 지키고 위의를 범하지 않고 자신을 삼가는 것이다.〈계를 지키는 선업〉 셋째, 보리심을 발하고 인과를 깊이 믿고 대승 경전을 독송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는 것이다.〈수행하는 선업〉” -〈관무량수경〉中

일본 교토 지은원 소장 ‘관경16관변상도’의 극락왕생한 여인의 모습.

부처님은 부인에게 극락은 저 멀리 어디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마음을 모아라’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비유해서 설법하신 정토의 풍경을 시각화하면서 ‘관(觀)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범부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청정한 세 가지 복(三福)을 닦는다면 반드시 극락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경전의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 도입부 ‘경을 설하게 된 인연’에서, 부처님은 극락세계를 체험하는 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관무량수경’의 의미와 뜻
〈관무량수경〉이라는 경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량수(無量壽)’를 ‘관(觀)’하는 내용의 경전이라는 뜻입니다. ‘무량수’란 ‘아마타’를 말합니다. ‘아미타’라는 용어는 아미타바(Amit쮄bha)와 아미타유스(Amit쮄yus)에서 유래합니다.

아미타바는 ‘무량한 빛’이란 뜻으로 ‘무량광(無量光)으로 번역되고, 아미타유스는 ‘무량한 수명’이란 뜻으로 ‘무량수(無量壽)로 번역됩니다. 그러니 아미타는 삼라만상의 바탕이자 삼라만상의 작용을 한 몸에 품은 불성(佛性)을 가르킵니다.

이 같은 불성의 성품은 바로 ‘지혜와 자비’입니다. 그렇기에 아미타 부처님은 좌우의 협시보살로서, ‘지혜’를 상징하는 ‘대세지보살’과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을 두고 계십니다. ‘아미타불-대세지보살-관세음보살’의 ‘아미타삼존’은 삼위일체로서 불성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불성을 ‘관(觀)’하는 방법과 그 모습이 비유적으로 설명된 것이 〈관무량수경〉의 내용입니다.

불교에서는 ‘관(觀)’이라는 한 자(字)가, 불교 수행법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불자들이 애송하는 ‘관세음(觀世音)보살’ 또는 ‘관자재(觀自在)보살’도 ‘세음(世音)을 관(觀)하다’, ‘자재(自在)함을 관(觀)하다’의 뜻입니다. 관(觀)은 ‘고요한 마음(定心)에 머물러 대상의 본질을 바로 보는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관(觀)은 ‘위빠사나(Vipas?yan쮄)’를 번역한 것으로, 현상을 상세히 관찰하여 그 본질을 통찰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어떤 대상이든 그 본질은 무상(無常)과 연기(緣起)입니다.

‘관’하는 것을 쉬운말로 ‘알아차림’ ‘마음챙김’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이것을 반야지혜라고 하기도 합니다. 지혜는 팔리어 빤야(pan~n~쮄, 반야)로서, ‘통찰지·혜(慧)·아는 마음·명지(明智)’ 등으로 번역됩니다. 선가에서는 이를 ‘아는 놈’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관을 하고 있을 때, 알아차리고 있을 때 현상의 본질이 드러나고 궁극의 부처님의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토막 불교상식부처님 몸은 왜 황금색일까?
총 16관으로 구성되는 극락의 관법 중에, 하이라이트는 아미타부처님의 모습을 목전에 관하는 ‘진신관(眞身觀)’이다. 극락의 풍경을 단계로 보다가 드디어 아마타부처님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진신관’의 광경은, 〈관경16관변상도〉 화폭 가운데에 가장 크게 중점적으로 묘사된다. 아미타 부처님의 몸체에서는 찬란한 빛이 나오고 무수한 화불(化佛)이 뿜어져 나온다.

경전에 묘사된 진신관의 내용을 보면, “아미타불의 몸과 빛을 관(觀)하여라. 몸은 백천만 억 야마천을 장식한 염부단금색(閻浮檀金色) 또는 자마금색(紫磨金色)과 같이 빛난다. 그리고 키는 60만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니라”라고 기술되었다. 조형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부처님 육신의 색깔은 반드시 황금색이다.

많은 불교 경전에서는 염부단금색 또는 자마금색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서 ‘부처님의 몸은 어째서 황금색인지’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마금 또는 자마황금은 염부단금과 같은 말이다.

자마금은 신비로운 자색(紫色) 빛이 도는 가장 고귀한 황금이다. 인도 염부수 숲 속을 흐르는 강바닥에서 채취되는 사금으로 총 9급의 황금 중 최상품질의 금을 말한다. 사실 법계의 형상들은 지상에 그에 대비될 만한 것들이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방편으로서 표현을 해야 하기에, 지상에서 가장 상서롭고도 고귀한 물질의 빛깔로, 부처님의 몸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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