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지 않는 안주(安住)는 부패를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9일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새로운 소망이 펼쳐지는 거대한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대통령 보궐선거가 치러졌고, 국민들은 바르고 지혜로운 리더에 대한 뜨거운 열망 속에 새로운 대통령을 맞았습니다. 대통령의 사전적 정의는‘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우두머리인 최고의 통치권자’입니다. 대통령은 이런 막강한 권한을 지녔지만,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국민이 부여한 것입니다.

求法하는 지도자상 ‘선재동자’
리더는 下心·실천 뒷받침돼야
‘자리이타’ 사섭법도 기본 덕목


그래서 올바른 지도자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남용하지 않아야 하며, 경제·외교·국방 등 여러 난제들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 뛰어난, 하지만 사심 없는 전문가들을 찾아 자문을 구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역할을 불교에서 찾는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을 말할 수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을 찾아 하심(下心)의 자세로 자문을 구하고, 그에 만족하지 않은 채 또 다른 지혜로운 사람을 찾기를 반복하는 실천력을 수반한 지도자상은 선재동자가 아닐까 합니다. 구법(求法)여행을 떠난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을 시작으로 보현보살에 이르기까지 모두 53명의 선지식을 만납니다. 선재동자가 만난 여러 인물 중에는 공동체를 상생으로 이끈 최고의 리더도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선재동자가 묘광성에 겪은 일입니다.

선재동자와 대광왕
선재동자는 선지식을 찾아다니다가 묘광성(妙光城)에 도착했습니다. 대광왕(大光王)은 보배 누각, 보배 연못, 보배 나무 등 갖가지 빛깔을 가진 보배로 장엄된, 넓고 장엄한 연화장 사자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즐거워하는 마음이 넘쳤습니다. 선재동자는 오직 바른 법을 듣겠다는 마음으로 선지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오체를 바닥에 엎드려 왕의 발에 절한 후 합장하고 서서 여쭈었습니다.
“거룩한 이여, 저는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의 도를 닦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왕은 대답했습니다. “선남자여, 나는 한량없는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따라서 생각하며 자세히 관찰하고 깨달아 익혀서 그 법으로 왕이 되었다. 이 법으로 가르치고 정사를 행하며,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며, 중생을 어여삐 여기고 방편을 주어 참된 성품을 생각하게 하고, 큰 사랑에 머물며 장애와 속박을 여의고 자재함을 얻게 하느니라.”

왕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만일 가난하고 굶주리며 여윈 사람들이 와서 옷과 음식을 구하면 지난 날 착하지 못한 열 가지 나쁜 업 때문에 오늘날 가난하고 곤궁하고 헐벗고 굶주리게 된 것이니,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중생을 해치지 않으며, 만일 필요하면 네거리에 차려놓은 복락을 나누어 가져가도 좋다.”

도시나 시골이나 길거리마다 보살들이 있어서 어려운 중생에게 물건들을 보시하여 부족함이 없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을 거두어들인 이유는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하며 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바르게 믿는 마음, 탐애의 뜨거움을 덜어내고, 번뇌를 소멸케 하여 진실한 이치를 알게 함이며, 나쁜 짓과 원수를 버리고 잘못된 소견을 뿌리 뽑아서 모든 업을 청정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광왕이 삼매에 들었습니다. 대광왕이 삼매에 들자 성의 안팎이 진동하며 보배 땅, 보배 담, 보배 궁전, 누각, 축대, 창, 문 등이 서로 부딪히고 왕을 향하여 경례하는 모양을 지으며 아름다운 소리를 냈습니다. 산과 들과 초목들도 빙글빙글 돌며 임금을 향해 예경하고, 못과 샘물, 강과 바다가 넘쳐 왕의 앞으로 흘렀습니다. 용왕과 천왕들이 허공에서 풍악을 연주하고 천녀들은 노래하며 대광왕을 찬탄하였습니다.

이때 대광왕이 삼매에서 일어나 선재동자에게 말합니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보살의 큰 인자함이 으뜸인 세간을 따르는 삼매문(三昧門)을 알 뿐이니, 부동(不動)우바이를 찾아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의 도를 닦는지 물어 보아라.”

선재동자는 대광왕의 발에 절한 후 공손히 우러러보면서 하직하고 물어났습니다.
- 〈화엄경(華嚴經)〉 중에서

자리이타의 사섭법
진리를 찾는 구법여행의 주인공 선재동자는 53선지식을 만납니다. 53선지식은 보살이 수행해 가는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의 대승 52위를 말합니다. 선재동자는 모두 55명과 만나지만, 문수보살을 두 번 만나고, 44번째의 변우동자는 다른 선지식을 소개하는 역할만하고, 51번째와 52번째의 선지식인 덕생동자(德生童子)와 유덕동녀(有德童女)는 언제나 함께 있기 때문에 한 선지식으로 봅니다. 결국 선재동자가 법을 구한 선지식은 모두 52인이기 때문에 대승 52위에 각각 맞추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풍요와 평화의 공동체를 이끈 리더인 광명왕은 선재동자에게 마음을 깨끗이 하고 선근을 심는 보살행인 ‘네 가지 거두어 주는 일-사섭법(四攝法)’을 전합니다. 이는 중생이 불법(佛法)을 배우고 실천하는 네 가지 보살행을 말합니다.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물질적·정신적으로 베푸는 보시섭(布施攝) ②부드럽고 온화하게 말하는 애어섭(愛語攝) ③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행섭(利行攝) ④서로 협력하고 슬픔과 기쁨을 같이하는 동사섭(同事攝)입니다.

공동체의 이상향 ‘화엄’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후 권력을 남용·오용하게 되면 국민을 실망시키고, 사회와 국가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진리를 구하던 선재동자와 같은 하심과 이를 위한 실천력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또한 묘광성을 다스리던 대광왕처럼 백성들이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게 해야 함은 물론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공경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백성들이 할 일은 당연히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며 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바르게 믿는 마음 탐애의 뜨거움을 덜어내고, 번뇌를 소멸케 하여 진실한 이치를 알게 함이며, 나쁜 짓과 원수를 버리고 잘못된 소견을 뿌리 뽑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화엄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전하는 의상대상의 ‘법성게(法性偈)’에는 ‘한 찰나에 우주 일체가 펼쳐지고, 하나는 곧 전체이며, 전체는 곧 개체로서 티끌 속에 온 세계를 머금는다(一中一切多中一 一微塵中含十方)’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 세상이 화엄의 세계라면 우리 사회의 생명력이 강해지려면 상호 연결성이 강해져야합니다. 공동체의 하나 됨은 자신(개인)을 고집하지 않고도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비경쟁적인 구조에서 피어납니다.
우리 시대 리더는 자리이타의 사섭법을 잘 펼치는 지혜의 군자(君子)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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