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하천연(丹霞天然:739~824) 선사는 유학을 공부하여 과거에 응시하러 장안으로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나 불법의 이야기를 듣고 과거를 포기하고 출가를 하였다고 알려진 스님이다.

처음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를 친견하고는 석두희천(石頭希遷) 선사를 찾아가 3년의 지도를 받은 뒤 다시 마조 선사 문하로 돌아와 공부하였다.

어느 날 법당에 들어가 불상의 목에 걸터앉았다. 이상하고 무례한 행동에 대중이 깜짝 놀라 마조 선사에게 고했다. 마조 선사가 법당에 들어가 보고 “참으로 천연스럽구나!”하였다. 이 말에 단하 선사가 내려와 절을 하고 “스님께서 주신 호(號)에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천연(天然)이란 법호를 쓰게 되었다.

그는 제방을 찾아다니며 여러 선지식들과 교류했다. 한 번은 낙양의 혜림사에 가 머물게 되었다. 날씨가 무척 추운 겨울이었다.

그는 밤이 되어 취침을 위해 아궁이 불을 때려고 했으나 장작이 없었다. 그는 땔감을 못 찾아 법당에 들어가 목불을 안고 나와 쪼개서 아궁이에 불을 때버렸다. 다음 날 아침 법당에 불상이 없어진 것을 안 원주(院主) 스님이 아궁이에 불 땐 흔적을 보고 목불을 태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주 스님은 단하 선사를 사정없이 꾸짖었다.

“세상에. 목불을 쪼개 불을 지피다니 미쳐도 보통으로 미친 게 아니군.”

단하 선사는 태연히 말했다. “난 부처를 태운 게 아니오. 부처를 태웠다면 사리가 나와야 하지 않소.”

“목불에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

“사리가 안 나온다면 나머지 목불도 태워버려야 하겠군.”

이런 말이 오고간 다음 원주 스님의 눈썹과 수염이 그만 빠져버렸다고 한다. 이상의 이야기는 <오등회원(五燈會元)> 5권 ‘단하천연장’에 소개된 이야기이다. 이후 이 이야기는 ‘단하소불(丹霞燒佛)’이란 공안(公案)으로 채택되어 널리 유행되었다.

<선문염송설화>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부가되어 있다.

“목불을 땠다는 이야기는 높고 뛰어난 안목에서 나온 것이다. 원주 스님이 그것을 보고 꾸짖은 것은 대반야의 도리를 비방한 것이므로 눈썹과 수염이 빠진 것이다.”

또 다른 데는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한 곳도 있다.

“‘원주 스님이 날씨가 추운데도 단하 선사에게 땔거리를 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단하 선사로 하여금 목불을 태우게 만들고 마침내 눈썹과 수염이 빠지게 되었다’라고들 하지만 그러나 원주는 쇠를 팔아서 황금을 얻고 일장의 부귀를 누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엉뚱한 말을 한 것이라 하겠다.”

<선문염송설화>에는 또 진정극문(眞淨克文) 선사의 설법이 소개되어 있다.

“진정극문이 법좌에 올라 단하가 목불을 태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갑자기 주장자를 잡고 ‘이것이 목불이다’ 하고 주장자를 던지며 말했다. ‘누가 태워 보겠는가. 그대들이 분별하여 머뭇거리면 눈썹과 수염이 빠진다. 분별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침내 소리를 높여 행자야! 주장자를 다시 집어 들어라‘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이 외에도 단하 선사에게는 공안을 이룬 일화들이 몇 개 더 있다. 단하 선사가 남양혜충(南陽慧忠) 국사를 찾아갔을 때의 일화다. 시자에게 국사가 계시느냐고 물었다. 시자가 대답하기를 “계시기는 계시지만 손님을 만나보지 않습니다.” 단하 선사가 말했다. “너무나 깊고 멀리 계시는구나!”

시자가 이어 “부처님의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합니다.” 단하 선사가 다시 “용은, 용의 새끼를 낳고 봉황은 봉황의 새끼를 낳는구나!” 하였다.

혜충 국사가 낮잠에서 깨어나자 시자가 단하 선사가 찾아와 있었던 일은 국사에게 말하였다. 국사는 시자를 스무 방망이나 때려서 내쫓았다. 나중에 단하 선사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남양국사라는 존칭을 받을 만 하구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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