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식 교수, 동국대 HK연구단 주최 원효 탄신 1400주년 국제학술대회서

“부자연스러운 서술 양태와
법장 <의기> 영향 등 볼 때
원효 입적 후 재편집 가능성
원효-법장 융합형태 시발점”

최연식 교수

현재 전해지는 원효의 대표 저술인 <대승기신론별기>가 그의 가장 이른 시기 저술로 간주되는 <기신론기>를 토대로 후대에 재편집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5월 19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서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단 주최로 열린 ‘원효성사 탄신 14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21세기 원효학의 의미와 전망’에서 ‘<대승기신론별기> 성립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는 주제로 이 같이 발표했다.

최 교수는 <대승기신론소>가 <별기>를 종합 정리한 것이라는 기존 해석과는 다른 견해를 내놨다. 그는 <별기>가 <소>에 앞서 찬술한 것이 아니고, <기신론기>를 모태로 하되 중국 법장의 <의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봤다. 따라서 원효의 <소>는 법장의 <의기>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의기>는 <별기>에 영향을 줌으로써 <별기>가 곧 ‘원효-법장’ 융합형태의 시발점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이에 대한 근거로 <별기>에 나타난 부자연스러운 서술 양태를 꼽았다. 그는 “<별기>는 본문 전체를 고르게 설명하는 <소>와 달리 본문의 적지 않은 부분에 아무런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 반면, 특정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긴 분량의 설명을 제시하는 특이한 서술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구체적 서술에 있어서도 전후맥락에 맞지 않는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들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어 “원래의 문장에 후대에 새로운 내용이 맥락에 맞지 않게 추가 삽입되면서 전후맥락의 연결이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원효 저술들의 체계적인 서술 모습을 볼 때 현재의 <별기>는 매우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별기>는 원효가 찬술할 당시 모습이 아니라 후대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 혹은 삭제돼 재편집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최 교수는 법장의 <의기>에 명시된 ‘별기’는 법장 자신의 다른 저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어 ‘<의기>에서 별기에 서술됐다’는 원효의 <별기> 내용과 관련해서는 “<별기>의 (재)편찬자가 <의기>에서 ‘별기’를 언급하는 문장에 주목하고, 그에 상응하는 내용을 추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별기>는 <의기>에서 언급한 ‘별기’가 아님에도 그와 관련되는 내용이 수록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의 <별기>가 후대에 재편집됐음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그는 “<소>와 <별기>에 사용된 ‘수연(隨緣)’의 개념을 <의기>와 비교할 때 <별기>가 <의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별기>는 언제 재편된 것일까? 최 교수는 원효가 입적한 687년 이후부터 동대사의 사경문서(寫經文書)에 기록된 원효의 <별기>를 일본에 가져간 심상이 신라에 유학한 시기(720~730년대 추정) 사이로 봤다.최 교수는 “<소>가 등장했다고 해서 기존의 <기>라는 이름을 일부러 <별기>로 바꿀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기신론)기>라는 책의 이름을 <(기신론)별기>로 바꾼 것은 <소>에서 언급된 ‘별기’를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며 “본래의 <기>를 새롭게 편집한 후 그 이름을 <소>에서 세 차례 거론되고 있는 <별기>로 바꿨을 수는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별기>로 재편집된 배경으로 법장 사상의 영향을 제시한 뒤 “학인들 사이에서 원효와 법장의 <기신론> 이해가 중시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양자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생겨났고, 그것이 <소>의 출현 이후 사람들의 주목에서 사라졌던 <기>에 법장의 사상과 부합되는 내용을 추가해 재편집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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