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놓치면 만남도 이별로 이어져
순간 놓치면 만남도 이별로 이어져
  •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 승인 2017.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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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세상과의 소통 ⑩

자주 보면서 생기는 친숙함
분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
조화 못 이루면 관계 무너져
차이 수용하며 점차 맞춰가야

마음을 덮어 방해하는 장애물
‘친숙성’에 대한 현실적인 예로 ‘선거’를 들어보자. 대통령 후보자들의 얼굴과 이름, 기호의 반복성은 그것을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운 느낌을 준다. ‘싫어하면서도 닮는다’는 말이 있듯이 친숙성은 대상에 대한 감각적 자극에 의한 것으로 우리의 삶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보던 TV드라마를 즐겨보고, 탤런트나 가수도 자주 보던 사람이 더 친숙해진다. 그러다보니 그 대상이 실제로 어떠한 특성을 갖고 있는지 판단 분별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어 새로운 대상을 맞이하는 데 방해로 작용한다.

우리의 마음을 덮어서 삶을 방해하는 5가지 장애물이 있다. 이를 오개(五蓋) 또는 오장(五障)이라고 한다. 우리의 마음을 덮어서 바른 마음이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번뇌와 같은 것이다. 욕망, 분노, 혼침과 졸음, 들뜸과 우울, 회의적 의심 등은 우리의 마음을 덮어 바른 마음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한다. 이러한 장애들의 실상을 관찰하여 알면, 그것이 있다가도 없어지고, 곧 사라지면 다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이러한 장애에 끌리거나 반복해서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개를 없애지 못하는 것은 이것들이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애는 色·受·想·行·識이라는 5가지 요소인 대상과 관련된다. 색은 어떤 성질이 있고,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없어지는가를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고, 감수작용이나 지각 표상이나 의지의 활동도 어떤 조건에 의해서 있게 된 것이며 또한 조건이 사라지면 없어진다는 것도 알아차려야 한다. 또한 色이면서 색이 아니고, 受이면서 수가 아니고, 想이면서 상이 아니고, 行이면서 행이 아니고, 識이면서 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5가지 대상에 대한 마음의 작용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인 연인간의 사랑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남녀의 사랑은 만남에서 비롯되는데, 만남을 촉진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근접성이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직원이나, 같은 전공, 동아리 멤버 등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가 되기 쉽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가 관계의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은 ‘친숙성’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듣는 음악을 더 좋아하고, 자주 먹는 음식을 더 좋아하며, 자주 걷는 산책로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유명인의 사진을 보면 볼수록 더 친숙한 느낌을 갖게 되어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 연정을 품기도 한다.

튼튼한 철길 같은 관계
이처럼 남녀의 관계는 친숙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중하게 이루어진 만남이 조화롭지 못하면 파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 상담을 하러 온 대학생 K양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같은 학과의 예비역 선배와 만나 서로 사랑한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상대에게 자기의 마음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상대방이 섭섭하게 대할 때나 보고 싶을 때, 만나고 싶지 않을 때 ‘섭섭하다’ ‘보고 싶다’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마음을 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늘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만나다보니 뭔가 답답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만나기가 두렵고 꺼려진다. 이러한 결과는 만남이 잘못되었다기보다 제대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 쌍의 연인이 만나 행복한 관계를 지속하려면 어떤 형태의 만남이 이루어져야할까? 한 쌍의 연인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을 나누면서 같은 길을 가자는 약속을 하면서 탄생한다. 이러한 만남은 마치 평행선을 이루며 함께 가는 철길과 흡사하다.

철길은 단단히 다져진 땅에 수없이 많은 침목(나무토막 또는 콘크리트)을 일정한 간격으로 깔고 그 위에 긴 강철을 두 줄로 놓아 쇠못으로 단단히 고정시켜 기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이다. 철길은 평행선을 이룬다. 평행선은 조화와 평정의 상징적 모습이다. 그것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지만 함께 한다. 먼 거리에서 평행선의 끝을 보면 마치 신기루처럼 만나고 있다. 이것은 원근 착시 현상으로 나란히 가고 있는 평행선은 먼 거리에서 수렴되어 마치 한 점으로 만나는 것처럼 지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길도 실제로는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두 개의 철길은 평행선으로 가고 있지만 수 없이 많은 침목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존하고 있다. 두 개의 강철은 연결되는 침목과 단단히 고정되므로 그 위에 엄청난 무게의 기차가 달릴 수 있다. 많은 침목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두 줄기의 강철, 그리고 그 위를 힘차게 달리는 열차, 이것은 마치 두 남녀가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이를 극복하고 함께 만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침목이 어느 한 개라도 헐렁해지거나 나사못이 빠지게 되면 그 위의 강철은 제 구실을 못하게 된다. 때로는 홍수에 의해 침목이 빠져 없어지거나 흙이 패이게 되어 철길이 휘어지게 되면 열차운행이 마비되기도 한다. 이처럼 연인의 만남도 연결고리가 풀어지면 관계는 단단하지 못하여 이별의 전조가 된다.

두 개의 철길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일생을 함께하는 연인과 같아서 서로가 관찰자와 대상자로서 역할을 한다. 이는 명상 수행자가 대상을 바라볼 때 대상자와 탈동일시(de-identification)하는 것과 같다. 흔히 명상과정에서 관찰자는 대상과 분리됨으로써 자기경험을 대상화하여 바라보게 되고 그 결과 수행자는 대상과 탈동일시가 일어난다. 수행자가 대상에 함몰되지 않은 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자기경험의 변화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 감소하며 점차 평정의 상태에서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행자는 대상을 놓치지 않고 확고하게 붙잡는다. 관찰하는 동안에 대상을 한 순간도 놓쳐버리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 대상이 생겨나는 처음 상태에서부터 지속되는 중간 상태를 거쳐, 사라지는 마지막 상태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따라가며 알아차린다. 즉 알아차림의 과정에서 틈이 있어서도 안 되고 끊임없이 이어져야만 한다.

나부터 확고하게, 다음은 소통
연인의 만남은 명상에서 수행자와 대상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끊어지지 않고 유지하듯이, 철길이 만나지 않으면서도 멀어지지 않고 한결같은 공간을 유지하듯 같아야 한다. 이러한 연인들 간에 보여주는 만남은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평행선의 한 선이 다른 선으로 기울어져 종속되는 모노레일 형이다. 이 형은 K양처럼 자신을 당당히 나타내지 못하고 상대방을 거슬리게 하지나 않을까 하여 눈치를 보거나 상대방의 뜻에 따라 만나게 되는 유형이다. 이들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한 줄로 서서 뒷사람이 앞사람을 따라가는 모노레일과 같다. 다음은 서로가 평행선을 이루며 함께 가고 있으나 침목이 듬성듬성하고 강철과 침목의 이음이 확고하지 않아 만남은 이어지되 약해서 언제 평행에서 벗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철길 형이다. 겉으로는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로가 자기의 마음을 잘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함께 있을 뿐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침목이 단단히 연결되어 있듯이 서로의 관계가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서 기차가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철길 형이다. 이 형은 힘들거나 즐겁거나 서로 간에 마음을 나누어 상대방이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둘이면서 하나인 듯 서로의 관계가 친밀하다.

위의 만남 유형에서 보듯이 우리가 소중히 만나 일생동안 아름다운 동반자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철길 형과 같은 만남이어야 한다. 실제로 만남을 지속하면서 평행을 이루어 독자성을 인정하는 연인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 자신이 길을 확고히 가야하고, 자신의 길을 가면서 함께하는 동반자와 끊임없이 관계를 나누어야 한다. 이 길은 자기 자신을 가장 귀하게 여김으로써 자신의 삶을 열어가는 것이요, 동반자와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공존의 조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파트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동반자로 맞이할 수 있는 철길형의 사랑은 어느 정도나 가능할까.

최근 필자는 이러한 철길 형의 사랑을 한 순간에 놓칠 뻔했다. 이미 출가한 자식들의 문제로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그 차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격해진 것이다. 마치 요즈음 대선 주자들의 토론처럼 자기말만 하고, 상대를 공감하지 못하다 보니 난장판이 되는 것과 같았다. 에고로 가득 차 있는 필자의 감정 상태가 지난 46년간의 삶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아차,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낭패감을 맛보면서 잠시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호흡명상은 기가 막힌 특효약이었다. 아마도 그 순간을 놓쳤다면 지금쯤 아내와 나는 서로 남남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 칼럼의 주제처럼 ‘순간을 놓치면 일생을 놓친다’고 했는데, 불과 열흘 정도 지나 그 경험을 하고 만 것이다. 열차가 달리다가 마주 오는 열차를 봤을 때는 이미 늦다.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대를 존중하지 못한다면 만남이 이별로 이어진다. 만나되 만남이 없는 것과 같은 철길 형의 사랑만이 연인의 관계는 물론 세상을 이어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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