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학기, 계룡산에 자리한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로 오게 되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자동차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연구소 들어가기 전 이미 춘천에 위치한 대학교의 2학기 강의를 받아놓은 터라 연구소 업무가 시작되면서 1주일에 한 번 계룡산을 떠나 춘천까지 가야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우연히 디자인도, 색상도, 가격도 마음에 드는 평소 원하던 차량을 구입할 수 있었다.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닦고 또 닦고 애지중지 몰고 다녔다.

하루는 세차를 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붙잡고 달려가는데 ‘딱’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작은 돌조각이 튀어와 앞 유리를 때렸고, 너무 놀라 차를 세우고 가만히 보니 엄지손톱 크기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모양 같은 흠집이 생겨버렸다. 이내 놀란 마음은 사라지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우째 이런 일이!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며칠 지나지 않아 점점 유리에 금이 커져서 결국 적지 않은 돈을 내고 갈아야만 했다. 차량 구입 후 약 2주 만의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온갖 ‘가정법’이 다 떠올랐다.

만약 내가 그때 단 1초만 그 지점을 늦게 지나갔거나, 혹은 빨리 지나갔더라면 돌의 속력이 유리를 깰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차장에서 참 친절했던 세차장 직원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지 말고 바로 출발했어야했다. 아니다. 내가 그날 운전을 한 건 오랜만에 연락을 준 지인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만도 원인은 아닌 듯하다. 내가 만약 그날 집에서 조금 일찍 혹은 조금 늦게 출발했더라도 그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터.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최고의 가정은, 차를 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2학기 강의를 받지 말았어야 했고, 연구소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고, 불교를 전공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선택했어야 했고…. 결국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이렇게 아무 소용없는 가정을 쓴 웃음과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슬러 올라가보니 차 유리가 깨지는 그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기 위한 원인이란 게 단순히 차와 돌조각의 만남만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수많은 원인과 원인들이 얽히고설켜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많은 원인들 중 어느 것 하나만 어긋나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생기고 마니 우리가 살아가며 맺게 되는 인연들은 결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일체지자(一切智者)께서만 아실 수많은 생의 셀 수 없는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들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당장 나 하나의 존재가 이생에 태어남도 부모님 2분, 조부 4분, 증조부 8분 등 10대조까지만 올라가도 210=1024분의 인연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결과다. 그러니 그렇게 태어나 어떤 누군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다.

흔히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게 되는 것은 바다 거북이가 숨 쉬러 바다 위에 고개를 내밀었을 때 때마침 거길 떠다니던 구멍 난 판자에 목이 끼이는 것과 같이 만나기 어려운 인연이라 하였다.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그분의 가르침과 인연 맺게 됨을 소중히, 그리고 기쁘게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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