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제자가 스승을 찾을 때 한 다발의 회초리를 준비해서 갔다고 합니다. 학문과 덕행을 함께 절차탁마할 때 스승을 향한 철저한 신뢰와 그에 따른 절대적 순종이 교육의 바탕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체벌을 비롯해 여러 교육적 제약이 따르는 오늘날 교육현장에서는 인격 도야(陶冶)를 위해 학문적 지식과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배우는 학습법이 실험되고 있습니다.

가섭에 보인 부처님 ‘염화미소’
사제 관계, 긴밀한 유대있어야
청정심 실천, 교육계 고민해야

시대와 무관하게 스승과 제자 간에 신뢰와 믿음이 존재하려면 부처님께서 두타(頭陀)제일 가섭존자에게 보인 염화미소(拈華微笑)와 같은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정신적 이음이 필요합니다. 염화미소는 제자의 행동 하나로 그 근기를 파악하는 스승, 스승의 빙긋 웃는 미소만으로도 그 뜻을 이미 파악하는 제자 간의 말 없는 문답이며, 소통입니다. 교사와 학생이 아닌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고 전수받는 관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긴밀한 정신적 유대가 가능해야 합니다. 교육은 스승과 제자 서로의 정신적 성숙을 이끄는 위대한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하실 때 첫 제자인 가섭존자에게 가사와 발우를 물려주셨습니다. 가사와 발우를 물려준 행위에는 이후 승단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영도자, 스승의 역할을 맡긴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가섭존자는 부처님 뒤를 이어 수많은 불제자들의 스승이 된 것입니다. 가섭존자는 스승의 역할을 맡은 직후 유독 아난존자를 혹독하게 꾸짖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섭 꾸짖음으로 해탈한 아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수많은 아라한(眞人)들이 따라 열반(滅度)을 하게 됩니다. 가섭존자는 세상이 오래지 않아 다시 깊은 어둠에 빠져들 것을 염려하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뜻을 모아 부처님의 말씀과 승단의 규칙(經律)의 통일 작업(결집)을 해야겠다. 이를 통해 세상을 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보호하며, 열반에 이르기 전까지 세상을 교화하리라.’

가섭존자는 결집 대중을 모으고 아나율을 시켜 모임에 참석한 이들 중에서 범부(번뇌에 얽매여 있는 사람)가 있는지 살펴보게 했습니다. 아나율은 대중을 둘러본 다음 대가섭에게 아뢰었습니다.
“부처님 시자였던 아난은 앞으로 더 닦고 배워야 성취할 수 있는데 이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가섭존자는 아난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당장 일어나서 떠나시오. 그대는 부처님의 말씀의 요체를 결집할 수 없소. 그대에게는 허물이 있소. 첫째 여인이 출가하여 사문이 되게 했으며, 둘째 악마 파순의 가르침을 따르는 허물을 저질렀소. 셋째 세존께서 그대를 꾸짖을 때 한을 품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으며, 넷째 세존의 금실로 짠 옷을 발로 넘었고, 다섯째 부처님 열반 당시 사라쌍수에 이르러 물을 청할 때 물을 드리지 않았으며, 여섯째 부처님이 이러저러한 말씀을 설하시어 금계를 따르도록 하였으나 그대는 염두에 두지 않았소. 또한 일곱째 세존의 음마장(陰馬藏)을 여러 대중들에게 보였으며, 여덟째 부처님의 자마금색을 여인들에게 보여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게 해 부처님의 발을 더럽혔소. 아홉째 그대만 세 가지 번뇌가 있어 더 배워서 도를 이뤄야 대중을 교화하는 일을 할 수 있소.“

가섭존자의 질타에 아난은 사방을 둘러보며 슬피 울며 말했습니다.
“세존께서 열반에 드실 때 저에게 ‘그대는 슬피 울지 마라. 나에게 누(累)가 되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대가섭께서 지금 작은 오해로 저를 용서하지 않으시니 마음을 푸십시오. 이후로 잘못하지 않겠습니다.”

“울지 마시오. 그대는 인자의 공덕을 널리 갖추었으니 진리의 요체를 모임에서 반드시 여실하게 말해야하니, 충고하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소. 아난이여, 이제 일어나 스스로 물러나시오.”

아난은 자리에서 일어나 슬픔 마음으로 비구들을 둘러보고 수심어린 기색으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날 밤 기지자(祇支子)의 지도를 받아 일체의 번뇌를 끊고 아라한도를 얻었습니다.

이튿날 가섭존자는 아난에게 “훌륭하고 훌륭하오. 그대가 깨달음을 얻어 내 마음은 뛸 듯이 기쁘오. 그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법안이 열렸고, 이제 법을 들어 널리 간직할 수 있으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가 무엇인지 대중에게 전해주시오.”

존자들이 모두 함께 권하자 아난은 사자가 거닐 듯 사자좌에 올라 첫 마디를 토했습니다.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 <가섭결경(迦葉結經)> 中

스승이 지닌 연민의 마음
부처님 열반 직후 가섭존자를 비롯한 500명의 제자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는데, 이를 ‘제1차 결집’이라 부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단의 규율을 다함께 암송하는 형식(口傳)으로 진행된 1차 결집은 가섭존자가 주축이 되어 왕사성 칠엽굴에서 진행됐습니다. 경(經)은 아난존자, 율(律)은 지계제일인 우바리가 암송하고, 이후 500 비구의 승인을 받는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평생 부처님을 곁에서 모셨던 아난존자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가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가섭존자가 아난존자를 호되게 꾸짖고, 결집하는 대중의 무리에서 나가게 한 이유는 제1차 결집 당시 철저한 검증과 논의가 필요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건을 통해 아난존자가 부족했던 한 조각을 채워 깨달음을 얻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스승은 지식과 기술이 능통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배우는 제자의 근기에 맞춰주는 지혜와 함께 자제력과 연민의 마음도 필요합니다. 어린아이가 원한다고 칼을 함부로 손에 쥐어줄 수는 없습니다. 배우는 자의 근기에 맞게 이끌고, 스스로 성장하는 기회를 지켜보는 자제력 역시 스승의 역할입니다.

제자의 4정근
부처님은 진리를 설하며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잇는 법맥을 보면 십대제자 중에서 지혜제일인 사리불이 법맥을 계승한 게 아니라 두타행을 실천한 마하가섭이 뒤를 이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37도품(三十七道品)’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하는 방법을 네 가지로 적고 있습니다. 바로 ①아직 생기지 않은 악(惡)은 일어나지 않게 하고 ②이미 생긴 악을 끊어내고 ③ 아직 생기지 않은 선(善)을 일으키며 ④이미 생긴 선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게 하는 노력입니다. 즉, 이 네 가지 정근(精勤)은 선을 키우고 악을 버리도록 이끄는 가르침입니다.

<유마경>에는 ‘내가 맑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청정을 보지 못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스승의 자질을 논할 때도 청정한 품성은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청정성은 그 가르침을 배워서 실천하는 불제자에게 가장 중요시됩니다. 청정한 본심과 실천, 우리 교육계도 한번쯤 생각해 볼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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