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성소수자 불자모임 회원들이 말하는 ‘차별금지법’


알려지지 않은 차별·혐오범죄 ‘심각’
아웃팅 당해도 구제법 없어 신고 못해
“똑같은 사랑, 性으로만 봐 괴로워”
차별금지법, 최소한 인권 보장 기대

2000년 10월 인터넷 카페 개설 후
조계사서 한 달에 1번 예불·세미나
現 지도법사 효록 스님 체계적 지도
심리상담, 순례 등 신행 활동 다양

 

이번 19대 대선에서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4월 25일 대선후보 4차 TV토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동성애를 반대하느냐”고 질문했고 문 후보는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후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동성애는 찬반 문제가 아니다”고 비판하자 문 후보는 “동성애 합법화는 반대하지만 차별은 안 된다”고 정정했다. 이 과정에서 홍 후보는 문 후보에게 “동성애 때문에 대한민국에 에이즈가 얼마나 퍼져있는지 아느냐”고 재차 물어 논란을 가열시켰다.

이에 대해 여론은 즉각 “성적 지향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러한 상황 속 19대 대통령과 20대 국회 임기 중 차별금지법 제정에 성소수자를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반쪽짜리 법안’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보호 대상에 성소수자를 포함시키는 것을 두고 다년간 갈등을 빚어 왔다. 성소수자 포함 여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의 핵심 관건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 개신교 집단이 성소수자를 차별금지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조직적인 반대 운동을 펼치는 반면, 시민사회계에선 성소수자를 반드시 대상에 포함시켜야한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불교계도 시민사회계와 궤를 같이한다.

이 가운데 직접 당사자인 성소수자들을 만나기 위해 4월 22일 서울 독산동의 여래심리상담연구소를 찾았다. 30~50대 남자 성소수자 5명(이하 A~E)은 이날 그들만의 삶과 불교, 또 현재 뜨거운 찬반 논란이 펼쳐지고 있는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다양한 생각을 털어놨다.

 

혐오범죄ㆍ아웃팅 등 당해도 구제법 X
“동네 사우나에서 젊은 남학생이 아저씨에게 일방적으로 맞는 걸 봤어요. 정황을 들어보니 학생이 수면실에서 자고 있던 아저씨를 (성적으로)건드렸나 봐요. 그런데 정말 무서웠던 건 주변에서 방관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게이인 그 학생이 맞아도 된다는데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거죠. 지금 생각해도 무서워요.”

조선시대 혹은 인도 카스트제 아래서나 발생할법한 이 이야기는 성소수자 A씨가 직접 목격한 실화다. 사건의 발단은 분명 아저씨를 성추행한 학생의 잘못이다. 그런데 왜 아저씨는 학생을 경찰에 고소하지 않고 폭력으로 해결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하나 경찰에 신고하거나 말리지 않고 학생을 향해 손가락질 했을까. 또 학생은 폭력을 당하고도 왜 신고할 수 없었을까.

이처럼 성소수자들은 성적지향이 다르단 이유만으로 각종 차별과 혐오범죄에 속절없이 노출돼 있다. 성소수자란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해도 이들을 구제할 법이 없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폭력 중 하나는 ‘아웃팅(Outing)’이다. 아웃팅은 커밍아웃과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적 경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아웃팅을 당하는 것은 2차, 3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단 점에서 성소수자들에게 매우 두려운 일이다. 직장에서 아웃팅을 당한 후 편견어린 시선을 견디지 못해 그만둔다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법적으로 고소한다 해도 아웃팅 당한 성소수자의 물질적·정신적 피해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은 것도 큰 문제다.

“감추고 싶은 비밀을 강제로 밝혀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건 범죄 아닌가요? 저희에겐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않을 자유가 있어요. 근데 아웃팅을 당해서 불이익을 받아도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명제는 아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이들에 대한 차별이 부당하단 인식을 심어주고 차별할시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저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드라마틱하게 개선될 거라고 생각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하는 이유는 최소한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단 기대 때문입니다. 지금은 게이란 이유로 차별ㆍ폭력을 당해도 보호받을 법적 장치가 없으니까요.” -

 

편견, 오해, 시선 폭력 가장 두려워
“제가 게이란 걸 어디에서도 말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힘들어요. 고질적인 원인부터 시작되는 불안과 우울감이 큽니다. 이성 간 사랑하듯 우리도 똑같이 사랑할 뿐인데 동성애자라고 하면 에이즈, 난잡한 성생활 등 성(性)적으로만 바라봐요. 그런 편협한 사고로만 저희를 바라보는 게 가장 힘듭니다.”

E가 언급한 것은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고충이다. 학계에서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관계를 명백히 검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가 에이즈 발병의 주된 원인이란 편견을 갖고 있다.

성소수자 법회 지도법사 효록 스님은 “심지어 내 주변에도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라 일러줘도 ‘아님 말고’식”이라면서 “우리가 대수롭게 넘어가는 일이 성소수자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선의 폭력’도 견디기 힘든 일 중 하나다. 공공장소에 ‘성소수자 출입금지’란 말이 쓰여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연인과 손을 잡고 걷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결혼과 같은 사회 관습에 따르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도 일종의 시선 폭력이다.

C는 “주변의 눈치 때문에 결혼한 성소수자도 많이 봤다. 결혼이 의무가 아닌데도 결혼하지 않으면 우리를 죄인처럼 바라보는 것 같다”면서 “한국사회에 당연한 것처럼 정해진 문화적 관습에 따르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17년간 佛法 아래서 ‘서로 위로’
불교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이들이 성소수자기 때문에 불교를 믿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같은 처지에 있는 성소수자 불자들과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치유가 된다. 17년간 이들이 성소수자 불자모임을 지속해오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다른 사찰 신행모임에도 따로 참여하고 있어요. 주로 경전공부나 봉사활동을 합니다. 그곳에서도 배우는 게 있지만 이곳(성소수자 법회)에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성소수자로서 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성소수자인 나에게 필요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수 있죠.” -

성소수자 불자 모임은 2000년 10월 시작됐다. 인터넷 다음카페 회원들이 오프라인 상에 모여 조계사에서 한 달에 1번 함께 저녁 예불에 참여한 것이 시초다. 회원들은 예불 뿐 아니라 불교 경전, 수행법 등 공부하는 세미나도 함께했다.

그러다 2015년 4월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소개로 현재 지도법사 효록 스님을 만났다. 자신들끼리 불교공부를 하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효록 스님을 만난 후엔 법회 뿐 아니라 심리 상담 등 신행·수행 활동을 병행하며 더욱 체계가 잡혔다고 한다.

“효록 스님은 수행과 심리상담 공부를 함께하신 분이라 저희에겐 정말 최적이에요. 불교적 가르침 뿐 아니라 저희가 겪는 심리적 고통에 대해 상담도 해주세요. 둘 중 하나만 탁월하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저희들을 지도하기 쉽지 않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C도 효록 스님 칭찬에 입을 모았다. C는 “우린 정신과를 가더라도 성 정체성을 감출 수밖에 없다. 일반 의사들에게도 심리 치료를 받기 쉽지 않은 현실”이라면서 “효록 스님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행을 통해 얻은 지혜를 알려주시니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불교가 자신들을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하는 이들.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와 다름없는 부처님 제자였다. 이들 앞에 하루빨리 제2, 제3의 효록 스님이 나타나 더 큰 부처님 가피를 전해줄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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