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선지식에게 듣다- (사)고요한소리 회주 활성 스님

(사)고요한 소리 창립 30주년 기념법회서 만난 활성 스님을 어렵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 출가 이후 딱 3번 세속 일에 관여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리산서 수행 정진해온 스님은 인터뷰에서 "중도를 어떻게 실천하라"는 화려한 수사를 늘어놓지 않았다. 다만, 왜 부처님 가르침의 기본인 사성제, 팔정도, 중도를 지금 우리가 왜 생각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오로지 기본이 스님이 강조한 것들이다.

현대사회는 빠르고 번잡하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고,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경쟁과 소유는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처세술이 된지 오래다.

반대로 우리는 경쟁과 소유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약육강식의 순환에서 벗어나 탈세속의 삶을 꿈꾼다. 얼마 전부터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힐링 열풍은 경쟁과 소유에 지친 삶을 위로받고 싶었던 현대인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현실의 삶과 이상적 가치의 간극이 크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생존 경쟁을 위해 살아가는 데 자신의 내면에는 이로부터 벗어나고픈 욕구가 강하게 상존하고 있다.

문제가 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나의 괴로움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모른다. 문제의 해결은 이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지를 알아내 벗어나는 데 있다. 감로수 같은 선지식의 법(法)이 필요한 시대다.

탐·진·치 부추기는 현대 사회
想이 만든 신기루, 문제의 시작
방편 아닌 근본적 접근 필요해
팔정도 실천하는 ‘中道’가 해법

도래할 융섭의 4차산업 시대엔
포용성 있는 불교가 강점 있어

부처님오신날, 불자에게 메시지
“三寶 공경하고 오직 지족하길”

오직 불교 중흥 위해 정진
지리산에서 오로지 수행만을 정진해 온 활성 스님은 숨겨진 선지식이다. 활성 스님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하다 경봉 스님을 만나 “한 생, 안 난 셈치고 살라”는 말을 듣고 출가했다. “불교 중흥의 동량이 되라”는 뜻으로 ‘살리는 소리(活聲)’이라는 법명을 받은 스님은 “주지 소임 살지 않고, 재 안 지내며, 상좌 안 둔다”는 원력을 세우고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했다.

출가 이후 세간에 나와 활동한 것은 봉암사 산문 막기, 10.27법난 해결, (사)고요한소리 창립 등 세 번에 불과하다. 세 번의 외출 모두 부처님과 종단, 출가 사문에 받은 은혜를 보답하고 불교 중흥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특히, 불전 원전 번역 단체 (사)고요한소리 창립은 부처님 원음을 살려 대중에게 전하기 위한 활성 스님의 평생 불사이다. 중흥과 보은의 원력이 담긴 (사)고요한소리는 창립 이후 30년 동안 부처님 원음을 전하며, 초기불교 대중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15일 열린 (사)고요한소리 창립 30주년 법회에서는 처음으로 활성 스님의 대중 법문이 이뤄졌다. 은둔 선지식의 대중법문을 세간이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스님과의 언론 인터뷰 역시 처음 시도된 것이다. 

인터뷰 중 활성 스님에게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스님의 답변은 "오직 지족하라"였다.

삼독심을 부추기는 사회
어렵게 허락받은 인터뷰, 지체할 틈이 없었다. 곧장 물었다. “평소 ‘중도(中道)’를 강조하시는데 현대사회에서 ‘중도’는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구현될 수 있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스님은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말했다. “지금 사회는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부채질하는 사회죠. 경쟁적으로 누가 더 탐욕하고 진심(瞋心)을 강하게 내서 성공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실제, 앞에서는 중도의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도 돌아서면 탐·진·치를 추구합니다. 이렇게 탐·진·치의 추구가 상식이 된 사회에서 단순하게 ‘중도’만을 외친다고 해서 사람들이 실천할까요?”

어리석은 질문에 돌아온 현답(賢答)과 같은 반문이다. 문제는 탐·진·치 삼독심을 권장·장려하는 사회 구조와 풍토다. 우리는 더 많이 욕망하고, 이를 위해 성내고 싸우며, 자신의 문제와 고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삼독의 악순환은 우리를, 사회를 잠식했다.

활성 스님은 문제 해결은 방편과 근본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방편적 접근은 사회 정책을 바꾸거나 윤리·도덕관을 바로 세워서 대중들을 계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 사회는 “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스님의 처방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철기 문화가 시작되는 시점에 나투셔서 법을 설했습니다. 철기 문화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많은 것이 변했지요. 부족 국가가 왕조 국가로, 청동기서 철기로, 모계 사회서 부계 사회로 등 혁명적 변화들이 이뤄집니다. 변화는 위기도 함께 내포합니다. 부처님은 철기 문화가 도래한 사회에서 인간이 헤매지 않도록 길을 정해준 것입니다. 앞으로 도래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도 모든 것이 변할 것입니다. 미증유의 변화와 위기에서 필요한 것은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리적 접근입니다.”

탐·진·치는 왜 권장되는가
근본·진리적 접근, 이를 위해서는 우리사회는 탐·진·치를 왜 권장하게 됐는지를 살펴야 한다. 스님은 문제의 근본을 찾아갈 수 있는 깊이가 있어 “불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즉 오온(五蘊)에서 문제가 시작됨을 역설했다.

“중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통해 존재를 인식하는지 봐야 합니다. 바로 ‘색·수상·행·식’입니다. 부처님은 상(想)을 신기루로, 식(識)을 마술사로 비유했습니다. 상을 통해 세상을 보니 모든 것이 환(幻)인 것입니다. 마천루가 높이 올라가는 것을 발전으로 생각하고, 자본주의·공산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휩쓸립니다. 이것 모두 상에서 비롯된 문제들입니다. 실체를 바로보지 못하고 환을 통해 모든 것을 보고 인식하니 문제는 해결이 아닌 악화만 될 뿐입니다.”

환을 좇는 사회, 우리는 탐·진·치의 신기루만을 향해 간다. 이에 대한 스님의 이어진 비판은 조용하면서도 매서웠다.

“현대사회를 한번 보세요. 경제적으로는 탐욕이 권장되고, 정치적으로 진심(瞋心)이 넘칩니다. 사실 정치는 증오를 동력으로 합니다. 종교는 어떨까요? 맹목적 신심, 즉 치심(癡心)을 권합니다. 전 세계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IS가 그 예입니다. 이런 문제를 불교적으로 보면 원인은 ‘상’에 있습니다. 색·수·상·행·식에 집착이 붙으면 오취온(五取蘊)이 됩니다. 오취온의 문제를 파악하면 그때부터는 해결의 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오온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 그 길이 ‘중도’이다. 현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진리적 접근은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에 있다는 것이다.

“원인이 파악됐다면 이를 희석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처(處, āyatana)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육처(六處)라고 합니다. 처는 입(入)으로도 번역됩니다. 그럼 무엇이 들어올까요. 바로 상과 수, 식이 들어옵니다. 우리는 처가 아닌 도(道)를 닦아야 합니다. 도는 향상일로의 삶입니다. 부처님이 제시하는 것이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고 그것을 파악해 잠재우고 그것과 대치되는 더 좋은 지혜를 열어라’ 입니다. 그러면 해탈이 가능해진다고 설하십니다. 중도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제 상놀음을 멈추고 중도를 실천하는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중도는 팔정도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사)고요한 소리 창립 30주년 행사서 만난 활성 스님이 연등 앞에서 환하게 웃어보이고 있다. 숨은 선지식인 스님은 처음으로 이날 대중법문을 설했다. 언론사 카메라 앵글 앞에 선 것도 처음이었다.

중도는 팔정도
다시 한 번 우문(愚問)을 던졌다. 중도와 팔정도를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스님은 곧바로 대선국면을 예로 들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 국민이 대통령 후보 자격을 논하는 데 있어 제일 싫어하는 게 무엇일까요? 거짓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국민들은 거짓된 사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네거티브 공세를 하지 말라고도 하죠. 이것은 팔정도의 정어(正語)를 실천하라는 국민의 주문입니다. 바른 말, 포용하는 말을 하라는 겁니다. 삼독심의 사회에서도 이렇듯 바른 길을 찾는 것은 아직 희망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누가 보아도 올바른 삶이 곧 팔정도의 실천임을 강조했다. “사회가 혼탁할수록 맑아지려는 자정 욕구도 커집니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좋고, 거짓보다는 참이 좋다고 생각할 겁니다. 예를 들어 전쟁을 막으려는 것은 살생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는 정업(正業)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이런 바른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따라가면 됩니다.”

비관도 낙관도 말라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활성 스님은 현재 한국불교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스님은 한국인의 특이한(?) 민족성을 먼저 이야기했다. 한국은 불교가 토착종교인 샤머니즘을 융섭·승화하고, 불교 사회를 거쳐, 500년의 유교 왕조를 경험했다. 이후 근대기를 맞이하며 가톨릭과 개신교가 한국사회에 들어와 현재는 어엿한 주류 종교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두고 스님은 “우리 민족은 세계사적 보편 가치를 열심히 수행하여 이를 유전자 안에 축적시킨 특이점을 가진다”고 평가하며 “앞으로 한국 국민은 내재된 창발성으로 세계를 선도할 것이고, 불교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불교를 전망해야 한다”고 했다.

“불교세가 강하냐, 약하냐를 논하는 것은 안목이 좁은 것입니다. 불교는 모든 것을 포용·융섭하는 종교입니다. 통합·융섭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불교는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힘센 장님과 눈 밝은 앉은뱅이가 있는데, 이런 앉은뱅이가 힘센 장님에게 올라타면 길을 잘 다닐 수 있을 겁니다. 힘센 장님이 바로 ‘청맹과니 과학’이고, 눈 밝은 앉은뱅이는 불교입니다. 비관도 낙관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른 안목을 갖고 공부하며, 자기 본분을 잘 지키면 됩니다.”

인터뷰 말미, 불기256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자들에게 메시지를 부탁했다. 겸연쩍이 웃어 보인 스님은 ‘삼보예경’과 ‘지족’을 당부했다.

“이 시대에 부처님의 은혜는 정말 사무치게 큽니다. 부처님은 깨달아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진리를 법으로 펴신 분입니다. 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승가입니다. 이를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라 합니다. 요란한 행사를 할 것이 아니라 삼보의 가치를 바르게 인식하고 진심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고 지족하는 삶을 사십시오. 오탁악세에 부처님 법을 만나 수행하고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지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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