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흥인

세상은 온통 연초록이다. 여린 잎새가 바람결에 일렁인다. 싱그러운 연둣빛에 눈이 부시고 마음은 평온하다. 대선정국에 있는 복잡한 세상의 일과는 무관하게 바람은 일렁이고 봄 햇살은 눈부시다.

얼마 전 지나가던 불자가 큰 길에 연등이 달려서 둘러보니 사찰 안내판이 있어 참배하러 왔노라고 했다. 도량에서 일을 하고 있던 중이라 자연스레 인사를 하게 되었다. 잔디밭에 서서 대화를 하던 중에 “스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겠냐”며 “30년 이상을 한 업종에 종사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 막막하고 답답하다”며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드 문제로 중국과의 일도 어긋나고 그저 매일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자는 듯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면 좋겠다고, 내일 아침에 해 뜨는 것이 두렵다고 고단한 심경을 털어 놓았다.

한국사회, 각종 문제·갈등 ‘얼룩’
일자리 못 구한 청년 100만 명
정치 혼란, 국제 정세 악화일로

올해 부처님오신날 여느 때보다
더욱 간절하게 희망을 기원한다
밝고 광명이 넘치는 사회가 되길

요즘 우리나라에 이런 심경을 가진 사람이 한 둘이겠는가. 지난해 실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이중 청년들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 청년층 실업률은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치솟은 상태라고 하는데, 특히 올 1분기(2017년 1~3월) 중 대졸 이상 학력의 청년 실업자 수는 최초로 5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국가 총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섰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런 경제적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영세업자들은 유지하며 살아내는 것이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파란지붕 아래 주인이 되고자 대선 후보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외친다. 그 외침은 감동 없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전국 하늘을 떠돌고 있다. 아마도 대선주자들의 토론을 보며 많은 국민들이 내쉬는 한숨은 지하를 뚫고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다.

과연 저 사람들 관심 안에 진정으로 국민들이 안중에 있는지 의문스럽다. 명쾌한 정책 대결이 없는 토론이며, 질문은 어디로 가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되풀이 하는 태도며, 젊은 날의 허물은 허물이 아닌 것처럼 뻔뻔하기 그지없는 변명에 능청스런 태도는 분명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하는 처사로 보였다. 한탄스럽기 그지없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공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미 파란 지붕의 집은 주인을 잃었고, 가까운 북쪽에서는 철없는 아이가 불꽃놀이 하듯 미사일을 들고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있다. 이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을 극에 달하게 하고 있으며, 가까운데다 덩치까지 큰 나라 중국은 그 발전의 속도가 가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처럼 날로 심화되는 우리나라 대내외적인 문제들, 청년 실업 문제며 심각한 국가 경제문제, 북한을 포함한 외교문제 등은 충분히 준비할 시간 없이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이며 어려운 숙제일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은 이제 옛 말인 것 같다. 오히려 난세에 국민이 현자가 되어야 하는 시절이다. 한 사람은 탐욕에 눈이 멀어 국민과 국가를 무시하고 포기할 수 있는 행위, 눈 가리고 아웅다웅하는 행위, 정신이 500년은 나간 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은 국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의 난국을 바로잡기 위해 마음의 눈을 밝게 뜨고 관심을 놓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만들어 준 권좌에 앉은 사람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며 무시하거나 군림하면 안 될 일이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권력이 국민을 길들여 왔다. 힘 있는 권좌는 부릴 대상이 아니라 두려워할 대상이라고 길들여 왔음에도 모두 그것은 자기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나라 법은 법을 아는 자들의 전유물이 되었으며, 법의 잣대와 돈의 힘은 힘없는 국민 위에 군림해왔다.

그러나 이제 대중들은 알게 되었다. 국민의 지혜로운 힘은 어리석은 나라님의 눈과 귀가 되어 오탁악세(五濁惡世)가 아닌 오청선세(五淸善世)가 되도록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권력에 비굴하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위치에서 어떤 일과 역할이 주어져도 당당할 수 있도록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지켜야할 도덕성, 즉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선생님은 선생님답게, 의사는 의사답게, 법조인은 법조인답게, 사업가는 사업가답게, 종교인은 종교인답게 그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역할에 걸맞게 살아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스스로 지체 없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 자리를 뭉개고 앉아 비비적거리며 변명과 망어를 일삼는 자는 그 과보를 받을 것이다. 인과는 승속에 차별없이 이뤄진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부처님오신날에 더 큰 희망을 갖게 된다. 두 동강난 우리나라의 허리가 빠른 시간 안에 치유되기를 빌고, 두 갈래로 갈라져 상흔이 깊은 국민들의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가볍게 치유되기를 축원하며, 부디 국민들의 손이 정직하고 지혜로운 대통령을 선택하여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이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 밝은 광명이 비치는 나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축원 올린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직장 지원서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마련되어 삼포, N포 세대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마음 놓고 사랑하고 결혼해서 2세를 걱정없이 키울 수 있는 나라, 지도에서 허리선이 사라진 우리나라, 한 나라의 땅덩어리 크기와 국민 머릿수나 경제의 힘보다 문화선진국 국민성이 존중받는 나라, 조금 더 성숙된 국민성으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용서하고 위로 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만들며 살 수 있는 나라,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그런 나라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점이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각성과 더불어 그런 대통령과 정치인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 바로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지난 과거의 허물에 매여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고 부처님께서 남겨 놓으신 이 말씀을 기억하며 지혜롭게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다. 그러므로 기쁨과 슬픔을 가다듬어서 선도 없고 악도 없어야 비로소 집착을 떠나게 된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지도 말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도 말라. 오직 현재의 한 생각만을 굳게 지키라. 그리하여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진실하고 굳세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 〈법구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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