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도다이지(東大寺)

도다이지 본당에 있는 대불. 높이만 16.2m에 달한다. 당시 개안식은 인도 스님이 개안하는 등 국제 행사로 성대히 봉행됐다

나라(奈良) 사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 도다이지(東大寺)를 고르는 일본 사람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요새 외국인 관광객의 인기도 끌고 있어 휴일과 평일까지 여행 시즌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도다이지와 도다이지 주변이 언제든지 붐빈다.

官 주도 불사, 백성에 협력 요청
권선·창건자 모두 도래인 후손들
기술자들도 한반도서, 국제 공조
관음보살에게 참회하는 ‘修二會’
한번도 거르지 않은 법회 ‘눈길’


도다이지는 728년에 요절한 쇼무(聖武) 천황의 황태자 모토이(基) 천황을 추도하기 위하여 건립된 긴쇼산지(金鐘山寺)가 시작이다. 741년에 쇼무 천황이 고쿠분지(國分寺) 건립에 대한 조서를 발표했다. 고쿠분지란 오곡풍요(五穀豊饒), 국가진호(國家鎭護)를 위해 나라(현재 부나 현에 해당함)마다 세워진 사찰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조서로 긴쇼산지가 야마토코쿠(大和國, 현재 나라현) 고쿠분지인 긴코묘지(金光明寺)로 승격되었고, 이후에 사찰의 명칭이 도다이지로 바뀌었다. 당시는 천재지변이나 전란으로 불안한 사회이었기에 쇼무 천황이 국가가 평화롭게 번영하는 것을 기원하여 노사나대불 제작에 대한 조서를 발표했다.

조서에는 “돈이나 권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민중의 마음과 힘을 모아 대불을 제작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자”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말로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대불 제작이 국가 프로젝트이면서도 백성들에게 이렇게 협력을 청한 점이 도다이지 대불 제작 특징이다. 권선은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고 민중을 교화하거나 다리를 놓는 등 사회사업을 열심히 했고 민중한테 큰 신뢰를 얻고 있었던 명승 교키(行基) 스님이 맡았다.

대불 제작이 3년간에 주조 과정을 8번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동원된 연인원이 무려 260만 명이었고 사용된 동이 500t이었다고 한다. 752년 대불개안공양회(大佛開眼供養會)가 성대하게 열리고 인도 스님인 보다이센나(菩提僊那)가 개안을 했다. 이 법회에서 일본, 중국을 비롯한 무악(舞樂)이 봉납되었다니 참으로 화려하고 국제적인 개안식이 아니었을까.

국제적이라고 하면 도다이지 건립의 주역 네 명이 국제적이다. 발원을 한 쇼무 천황, 개산조사(開山祖師)인 로벤(良弁) 승정(僧正), 권선을 맡았던 교키 스님, 개안을 맡았던 보다이센나를 도다이지 건립의 사성(四聖)이라고 부르는데 쇼무천황 외에는 로벤 승정과 행기 스님은 한반도에 유래가 있는 도래인 출신 일족이고 보다이센나는 인도 출신이다. 도다이지 건립하는 데 대공사 주역을 맡았던 사람도 도래인 출신이고, 도래인 출신인 불사, 주조사(鑄造師) 등 기술자들도 활약했다. 도다이지는 해외에서 건너온 사람이 없이 건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다이지는 국가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인 동시에 불교의 교리를 연구하는 곳으로서 화엄종(華嚴宗)을 비롯한 남도육종(南都六宗, 남도는 나라 지역), 그리고 헤이안 시대 이후는 진언종(眞言宗), 천태종(天台宗)을 포함한 팔종(八宗)을 연구하는 학문 사찰이 되었다. 도쇼다이지를 소개했을 때 썼는데 감진(鑑眞) 스님도 도다이지에서 많은 사람한테 수계를 내렸다.

도다이지가 역사상 병화로 전체적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이 두 번이 있는데, 하나는 1180년이고, 다른 하나는 1567년이었다. 1180년엔 대불전을 비롯한 가람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다음 해부터 복원이 시작되어 조겐(重源) 쇼닌(上人)을 중심으로 권선이 진행되었다. 대불 수리는 마침 규슈 하카타에 있었던 송(宋)나라 공장(工匠)이 맡았고, 1185년에 새로 만들어진 대불 개안(開眼)이 진행되었다. 10년 후엔 대불전 낙성을 축하하는 법회도 열렸다.

이후 1567년에도 대불전을 비롯한 주요 건물이 소실되었다. 당시 복원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재건은 소실된 지 100년 이상 후에 있어야 시작했고, 1692년에 수리된 대불의 개안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도다이지로 가는 역에 분수대 위의 교키 스님의 동상. 스님은 백제 도래인의 후손으로 도다이지 창건 권선을 맡았다.

그 때 나라에 30만 명이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대불이 백성들의 신앙을 많이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불에 이어 대불전도 재건되었지만 당시 큰 나무가 거의 없고 자금도 부족해 대불전 정면이 원래 폭의 약 3분의2 정도로 축소되었다. 측면 길이와 높이는 창건 당시 그대로 복원되었다.

현재 대불전 정면이 약 57m, 측면이 약 50m, 높이 약 47m로 세계에서 목조 건축물로서 최대급 크기이지만 창건 당시는 더 컸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대불전 대수리를 했을 때 대불전 앞에 있는 참배로도 정비되었는데 인도, 중국, 한반도 그리고 일본의 돌이 사용되었다. 불교가 일본으로 전래된 길을 이 돌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도다이지에 여러 행사가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유명하고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오미즈토리(お水取り)’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슈니에(修二會)’이다. 슈니에의 정식적인 명칭이 ‘십일면관음회과법요(十一面觀音悔過法要)’이고, 752년에 시작된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진행돼 왔고, 올해 2017년이 제1266회이다.

도다이지의 나가쓰도(二月堂). 매년 관음보살에게 죄업을 참회하는 ‘슈니에’가 열리는 곳이다.

슈니에는 평소에 범한 잘못을 관음보살 앞에서 참회하고, 맑고 깨끗한 마음과 몸을 얻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자는 법회다. 고대인이 재앙이나 역병, 전란이 즉 국가의 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국가의 병을 슈니에를 통해서 없애고, 천하태평, 오곡풍요 그리고 민중의 행복을 기원했다는 것이다.

매년 음력 2월에 열린 이 법회는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니가쓰도에서 진행됐다. 이는 나라를 비롯해 간사이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한테 봄의 도래를 알려주는 행사이기도 하다. 슈니에는 렌교슈(練行衆)라고 부르는 승려 11명을 뽑아 렌교슈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전년 12월부터 여러 준비를 한다. 렌교슈는 모든 사람의 죄를 이 사람들을 대신에 참회해 관음보살한테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이른바 관음과 사람을 잇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매년 3월 1일에서 14일까지 저녁이 되면 송명(松明, 관솔불)이 잇달아 니가쓰도 아래에서 계단을 통해 무대에 올라가 정말 장관이다.

이 행사는 굉장히 인기가 있어 멀리에서 일부러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12일에 더 큰 관솔불이 사용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보러간다. 옛날에 시작한 물과 불로 재앙을 없애고 행복을 기원하는 슈니에는 현대인들에게도 아주 매력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슈니에 외에 추천하는 것은 대불전 관상창(觀相窓)이 열리는 날이다. 1월 1일 오전 0시에서 아침 8시까지 관상창이 열리고, 대불전 밖에서 대불을 예불할 수 있다. 장엄히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 정말 좋다. 8월 15일에 만등공양(万燈供養)라는 행사가 있을 때도 저녁에 관상창이 열린다. 기본적으로 1년에 1월 1일과 8월 15일 2번 열리지만 이외에도 관상창이 열릴 때가 있다. 평소에 방문하는 것도 충분히 좋은 체험이 될 수 있지만, 행사가 있을 때 시간을 맞춰서 찾아가면 색다른 도다이지를 느낄 수 있어 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도다이지 경내와 주변 볼거리
도다이지에 갈 때마다 느낀 게 대불전에 많은 방문객이 있는 반면에 대불전 외의 도다이지 경내 볼거리에는 대불전처럼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는 것이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도다이지를 방문할 때는 남대문을 통해서 대불전에 가고, 다음엔 대불전 동쪽에 있는 니가쓰도(二月堂), 홋케도(法華堂)를 보러가는 것을 추천한다.

대불전에서 니가쓰도로 잇는 길도 걸으면 참 좋다. 니가쓰도는 슈니에 때 올라갈 수 없지만 평소에는 무료로 올라갈 수 있다. 관음보살이 비불(秘佛)이고, 건물 안에 못 들어가지만 예불 공간인 무대는 괜찮다. 니가쓰도 무대에서 대불전을 비롯한 도다이지 경내 건물도 바라볼 수 있어 고도 나라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니가쓰도는 17세기에 슈니에 때 불이 나 소실되었기 때문에 재건된 건물이지만 니가쓰도 남쪽에 있는 홋케도는 나라 시대에 지은 것이며 도다이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병화로 큰 피해를 입은 도다이지에서 나라 시대에 세워진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정말 귀중하다.

시간이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북서쪽에 있는 데가이몬(?害門), 쇼소인(正倉院)도 가보시기를 바란다. 데가이몬은 도다이지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여덟 개 기둥이 있는 훌륭한 문이다. 데가이몬 동쪽엔 쇼소인이 있다. 756년에 쇼무 천황이 세상을 떠난 후 고묘 황후가 천황의 유물을 도다이지 대불에 바치고 쇼소인에 보관했던 것이 보물 창고 쇼소인의 시작이다. 지금은 도다이지가 아니라 구나이초(宮?廳) 관할로 되어 있다. 평일에 10시부터 15시까지 쇼소인 외관을 무료로 공개한다.

쇼소인 보물이 지금 쇼소인 가까이에 있는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에 보관되어 있는데 매년 10월 하순에서 11월 상순까지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쇼소인전이 열리고 이 보물들이 공개된다. 실크로드를 경해서 전한 보물도 있어 쇼소인이 실크로드 동쪽의 종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대인이 전한 국제성이 풍부한 아름다운 보물을 보러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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