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엘로라 석굴

엘로라 제10석굴의 전경. 차이티야 형식의 예불 공간으로 석수에는 당시 장인들의 노련한 기교가 담겨있다.

깎아내린 절벽, 검붉은 색의 바위덩어리, 그 울퉁불퉁한 단애(斷崖), 그렇고 그런 자연 속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이곳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 유산이다. 둘도 없는 보배 중의 보배이다. 엘로라. 인도 허리부분 쯤의 데칸고원, 바로 아우랑가바드의 북서쪽 20km 지점이다. 그러니까 또 하나의 세계적 석굴사원인 아잔타와 80km 정도 떨어진 거리이다. 아잔타와 엘로라. 이들이 이웃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데칸고원은 훌륭하다.

불교·힌두교·자이나교가 나란히
인도 3대 종교, 공존하는 석굴
범신론 기초… 미술적 가치 높아
34개 석굴 중 불교석굴은 12개
제10석굴, 외관 아름다음 ‘유명’


나는 데칸고원을 걷는다. 푸르른 초원과 뜨거운 태양을 안고 걷는다. 자, 엘로라, 서부활극시대 꿈의 황금도시 엘도라도가 아니라, 세계 석굴사원의 보석, 거기가 바로 엘로라이다.

엘로라는 왜 보석보다 아름다운가. 인도 3대 종교의 집합소이기 때문. 오늘날 종교 분쟁의 현장을 보면서 종교의 화합정신과 존재 가치를 염두에 두게 하는 현장이다. 엘로라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이들 3개 종교가 사이좋게 나란히 있다. 어떻게 이런 사실이 가능할까. 바로 범신론의 넓은 도량이 밑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사찰에서 불교, 유교, 도교를 하나의 전각 안에 봉안한 사례를 연상할 수 있다. 이들 종교 또한 유일신 사상이 아닌 범신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아무튼 엘로라의 특징은 타종교와의 화합과 공존, 게다가 거대한 석굴사원이자, 석조미술의 백미를 간직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2세기 말 혹은 1세기 초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후 기원후 9세기까지 석굴사원의 전성기를 맞았다. 데칸고원 서부지역에 밀집되어 있음도 흥미롭다. 이렇듯 석굴 공사의 용이함은 바위 성분이 화강암이 아니고 현무암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대한 바위를 뚫고 정교하면서도 예술성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기계의 도움은커녕 순전히 인력으로만 이룩한 엄청난 난공사였다.

조그만 망치 하나로 이룬 거대한 건축, 어떤 것은 학교 교실보다 다섯 배 혹은 열 배 이상 큰 규모, 게다가 정교한 탑상 조각과 무수한 릴리프, 아름다움의 보물창고와 같다. 이런 석굴 하나 완성하는 데, 30년, 아니 100년도 더 걸렸다.

그러니까 3대 이상 대물림하면서 정성을 기울였다. 신앙심의 성공이다. 정말 신앙심 없으면 이룩할 수 없는 난공사 중의 난공사였다. 오늘날 자본의 논리로만은 이룩할 수 없을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석굴은 위에서 아래로 파 들어가면서 실내공간을 만들고, 어느 정도 공간이 만들어지면 불탑과 불상을 조각하고, 또 여러 군데에 문양 등 화려한 장식을 새겼을 것이다. 일반 건축물 형식의 석굴. 목조건축은 풍화와 화재로 사라지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석굴은 시간을 빗겨가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엘로라는 2km 길이에 34개의 석굴을 가지고 있다. 종교에 따라 3등분으로 구획정리할 수 있다. 제1석굴부터 제12석굴까지는 불교석굴이다. 이들 가운데 제1~제10굴은 5세기에서 7세기의 작품으로, 그리고 제11~12굴은 8~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13석굴부터 제29석굴까지는 힌두교 석굴로 7세기 내지 9세기 작품이다. 나머지 5개의 석굴 즉 제30석굴부터 제34석굴은 자이나교의 석굴로 9세기 내지 12세기에 조성되었다. 자이나 석굴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같은 지역에 이렇듯 타종교의 사원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 현대인에게 뭔가 반성하게 하지 않는가. 그래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변화할 뿐이란 말, 맞는 것 같다. 우주 만물은 변한다. 발전이라는 개념은 좀 교만스런 표현일 수 있다. 세상 천지에 변하지 않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엘로라 석굴의 원래 입주자는 현재 아무도 없다.

오늘날 엘로라 전성기 후예의 존재는 알 수 없다. 종교의 사원조차 영속성을 잃었다. 오늘의 엘로라는 도처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으로 가득할 따름이다. 석굴사원은 유명 관광지로 용도 변경되어 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현재 그곳은 불교도, 힌두교도, 자이나교도 없다. 그냥 석굴만 있다. 아니, 예술품만 남아 있다.

엘로라 석굴 가운데 대표작은 제16굴을 꼽는다. 카일라사나타 즉 ‘안락한 주거 전당’이란 의미이다. 수미산 즉 카일라스를 안고 있는 거대한 규모이다. 높이 33m, 바닥 길이 54m, 정면 길이 46m 등등, 착공 이후 220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설도 있다. 이 석굴은 라슈트 라쿠타 왕조의 크리슈나 1세(재위 756~773년) 시대의 작품이다.

8세기 중엽이라, 그렇다면 우리의 통일신라와 겹치는 시대가 아닌가. 또 그렇다면, 토함산 석굴암과 겹치는 시대가 아닌가. 아하, 나는 제16석굴 사원 안을 거닐면서, 토함산 석굴암을 생각했다. 비록 힌두교 사원이지만 석굴사원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했다. 물론 커다란 비교는 무엇보다 규모이다. 천연 바위를 뚫고 조성한 제16석굴에 비하여 토함산 석굴암은 비록 작지만 인공 축조의 건축이라는 점, 이 점을 염두에 두게 했다.

엘로라의 특징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와 같다. 그것도 여러 종교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훌륭한 이야기 책이 아닌가. 이야기를 조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시설된 갖가지의 시각적 산물, 바로 예술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특히 이야기의 주체 즉 사람들 표현은 백미 중의 백미이다. 나그네의 시각으로, 좀 속되게 표현한다면, 관능적 여체 표현도 눈길을 묶어둔다. 그만큼 인체 표현의 박진감 있는 사실성과 표현력을 과시하는 부분이다.
엘로라의 불교사원으로 가보자. 제10석굴은 외관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외부는 자연석 상태로 거칠게 있으나 안으로 들어가면 본격 건축이 조성되어 있다. 차이티야 형식의 예불 공간이다. 내부는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석수의 노련한 기교가 가득 담겨 있다. 규모와 더불어 섬세한 장식 문양과 구조가 돋보인다.

엘로라 석굴 전경. 바위산을 깎아 낸 자리에는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등 인도 3대 종교의 사원이 들어섰다.

제11석굴은 3층 구조의 승방이다. 외부는 천연 바위 상태이나 좁은 계단을 올라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요새와 같은 건축이 나온다. 겉에서 보면 마치 현대식 아파트 같다. 복도를 따라 방이 연결되어 있다. 거기다 일렬로 세운 가지런한 기둥과 실내 구조는 합리적이다. 열주(列柱)는 제26석굴의 경우 두드러진다. 실내 양측에 서 있는 기둥들, 그리고 그 위에 가득한 다양한 문양들, 장엄하다. 내부 안쪽 중앙에는 불단이 조성되어 있다. 제5석굴은 학인 스님의 공부방이다. 도열한 실내의 기둥을 따라 좌우 2줄씩 분할된 공간은 마치 교실과 같다.

엘로라 석굴을 거닌다. 인도 불적 순례여행의 남단이다. 그러니까 네팔의 붓다 탄생지 룸비니에서부터 쿠시나가라, 바이샬리, 바라나시, 나란다, 보드가야, 산치 그리고 더 남하하여 아잔타를 거쳐 엘로라에 도착했다. 인도 지도에서 중간부분 쯤 이다. 서쪽으로 가면 아라비아 바다의 뭄바이로 연결된다. 오늘날 파키스탄 지역의 간다라와 비교되는 별도의 이색지대이다. 바로 석굴사원 지대, 데칸고원의 풍미이다. 엘로라 석굴을 거닌다. 나는 왜 이 순간에 중국의 소동파가 생각날까. 그의 시 ‘수조가두(水調歌頭)’를 읊조려 본다. 술잔을 들고 달과 친구 삼은 순간의 모습이다. 폐허의 엘로라 마당에서 떠오른 시 구절이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술잔을 들고 푸른 하늘에 묻노라/ 천상의 궁궐에서는 오늘 저녁이/ 무슨 해인지 모르겠네/ 나는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싶지만/ 당나라 궁전은/ 높은 곳이라 추울까 걱정이네/ 일어나 춤추며 맑은 그림자 희롱하니/ 어찌 인간 세상에 있는 것만 하겠는가// 달은 붉은 누각 돌고 돌아/ 비단 창문까지 낮게 떠서/ 잠 못 이루는 이를 비추네/ 응당 이별의 한이 있을 리 없건마는/ 어인 일로 언제나 이별할 때는 둥근 것일까/ 사람에게는 기쁨과 슬픔, 이별과 만남이 있고/ 달에는 어둡고 밝음, 둥글고 이지러짐이 있네/ 이처럼 세상사는 예로부터 온전하기 어려웠으니/ 다만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살아서/ 천 리 밖에서도 함께 저 달을 감상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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