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피와 어버이 마음

신록이 눈부신 5월이다. 푸르른 산사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얼마 전 영주 부석사에 갔다가 극락루를 지나는데, 정말 극락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신록 위로 펼쳐진 극락의 모습을 폰에 담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다들 멋진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다.

월남 전쟁터 나간 아들 걱정에

성철 스님 찾자 “3000배 해라”

“아들 살아 돌아와 가피 깨달아”

함께 간 일행이 없었으면 무량수전 창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아래서 108배를 하고 나왔을 것이다. 절을 하지 못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려 하는데,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들어오더니 좌복을 놓고 조용히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를 위해서 절을 하는 저 모습이 지혜와 자비를 모두 갖춘 부처님과 가장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봄이 시작되면서 단양으로, 팔공산으로, 여러 절을 다녀왔는데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신록으로 물들어 있는 산사가 여전히 그립다.

절이 어느 때보다 아름답기 때문일까, 5월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비롯해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들어 있다. 해서 5월에 쓰는 첫 번째 글은 세상 어머니들의 108배에 대해 쓰려고 한다. 어머니들의 108배는 자식들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자식을 위한 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절을 한 분께 들은 이야기다.

오래전 월남전이 한창일 때다. 한 어머니가 아들을 월남전에 보내놓고는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엔 밭일을 하느라 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지만, 밤에 잠자리에 들면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이웃집 사람이 ‘저, 백련암에 도인 스님 한 분이 사시는데,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낸다고 하니 한번 가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밭을 매던 호미를 내던지고 백련암으로 올라갔다. 마침 산책을 마치고 암자 뜰 앞에 서 계시던 성철스님을 만났다. 마당 흙바닥을 아랑곳하지 않고 넙죽 절을 올리고 다짜고짜 사정을 말했다.

“시님, 지 아들을 좀 살려 주이소. 지가 시키는 대로 다 할라요.”

성철 스님이 초로에 접어든 여인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뙤약볕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에 쭈글쭈글 한 손, 허름한 옷매무새로 보아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다급한 심정으로 뛰어올라온 게 틀림없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늦게 둔 막둥이 아들이 전쟁에 나가 있다 아입니까. 지가요, 시님, 밤이면 잠이 안 옵니다. 세상사 마, 좋은 게 하나도 없십니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안다. 자식이 아픈 것 보다 내가 더 아픈 게 부모 마음이라는 걸, 자식이 행복하지 않으면 부모가 더 불행한 걸 말이다. 그런데 하물며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 자식을 보내놓고 어떤 음식인들 맛있을 수 있겠으며, 편한 이불 속에서 잠이 제대로 오겠는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사연을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성철 스님이 물었다.

“아들을 살려야 되겠지요?”

“그라믄요, 시님. 아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지가 무슨 일이든 할랍니다.”

“그라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 집에 쌀이 좀 있지요? 쌀을 좀 퍼가지고 와서 밤을 좀 해갖고 법당 부처님 앞에 올리시오.”

“그거야 몬 하겠십니까. 당장 해올리지요.”

쏜살 같이 집으로 달려가 쌀독에서 쌀 한 됫박을 퍼가지고는 다시 백련암으로 올라갔다. 얼마를 걷고 뛰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자식만 살릴 수 있다면 먼 거리를 걷는 게 대수이겠는가. 정성스레 밥을 지어 그릇에 담아 부처님 앞에 올려놓고는 스님이 계신 방문을 열었다.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시님, 시키는 대로 밥을 지어 올렸습니다. 인자, 부처님이 우리 아들을 살려주시는 거지요?”

성철 스님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허허,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이고, 이 보살 좀 보소. 공짜로 아들을 살리려고 하네? 보이소. 저 법당에 올라가면 여러 사람이 절을 하고 있을 기요. 퍼뜩 가서 3천배를 하고 내려오시오.”

절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3천배를 하려면 쉬지 않고 해도 7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아니, 안다고 해도 자식을 살릴 수만 있다면 3천배가 아니라, 3만배를 그 자리에서 하다가 죽어도 하겠다고 덤빌 존재가 세상의 어머니들 아닌가.

“야, 시님. 하겠십니다. 고맙십니다.”

“배고프다고 밥 먹으러 내려오고, 똥마렵다고 변소 가고, 힘들다고 쉬었다가 하면 다 허사인 줄 아시오.”

“알겠십니다. 시님, 시키는 대로 하지요.”

밤을 새워 절을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절이었지만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에 나와 잘못한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전쟁터로 나간 자식에게도 잘 못한 게 한둘이 아니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마음만 아픈 게 아니었다. 차츰 다리도 끊어질 듯 아파왔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자식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텼다.

3천 번의 절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끝은 있어 동이 틀 무렵 절이 끝났다. 법당 아래 계단을 설설 기어서 내려오는 모습을 성철 스님이 보고는 시자에게 명했다.

“야야, 저 보살, 고마 차부(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거라.”

무뚝뚝하기만 스님도 밤새 자식을 위해 절을 한 어머니의 마음을 읽었던 것이다. 그 뒤 그 백련암으로 올라오는 그 어머니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밭농사를 짓는 틈틈이 쌀을 이고 백련암으로 올라와 정성을 다해 밥을 지어 올리고는 절을 했다. 어느 날은 혼자 108배를 하고 내려가고, 어느 날은 신심 깊은 사람들과 섞여 3천배를 하기도 했다. 절을 하는 동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자식 걱정이 덜했다. 내 자식은 살아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고는 안심했다. 남들이 하는 주문(능엄주)도 외웠다. 한글을 떼지 못한 어머니는 손자뻘 되는 동네 아이들을 불러 사탕을 나눠주고는 부탁했다.

“얘들아, 이것 좀 읽어다오.”

아이들이 읽어주는 능엄주를 한 줄 두 줄 외우다 보니, 어느 날 다 외우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주문을 외우고, 절에 와서 108배를 하면 시름이 사라졌다. 그렇게 안심을 얻고 절을 하면서 지내는 사이 아들이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월남에서 돌아왔다. 고마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아들이 말했다.

“총탄이 빗발처럼 날리는 속에서 적군과 싸우는데 엄마가 ‘얘야, 이리로 와라’하고 막 부르는 거야. 나도 모르게 엄마 목소리를 듣고 따라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시체 더미에 있었어요. 둘러보니 산 사람은 나 하나 뿐이었어.”

그 뒤 그 어머니는 108배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때때로 백련암에 올라가 절을 하며 누가 연세가 드신 분이 어찌 이리 절을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아들이 살아 돌아와 말하는 걸 듣고 부처님 가피가 무엇인줄 알았다 아입니까. 큰시님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절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촌에서 농사짓는 것밖에 모르는 내가 어떻게 3천배를 하고 능엄주를 외울 수 있었겠십니까? 그 은혜는 내가 죽을 때까지 몬 잊는 거라요. 그래서 바쁜 농사철엔 몬 와도 좀 한가할 때는 이리로 와서 절을 하는 거라요. 절, 참 좋소. 내 아들도 살렸다 아입니까? ”

부처님의 가르침은 말할 것도 없이 타인과 소통하며 슬프고 기쁜 일을 함께 나누는 자비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108배는 그 마음을 실현하는 수행이다.

자식으로 인해 어머니들은 수행을 한다. 또 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자라면서 속 한번 썩이는 일 없이 착하게 자라고 천하에 둘 도 없이 총명했던 딸이 결혼하고 얼마 안 돼 급성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단 몇 달 만에 딸을 잃은 어머니는 도무지 살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108배를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분이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108배를 하면서 모든 걸 내려놓지 못했다면 살지 못했을 거예요. 꼭 108배들을 하세요.”

자식이 수행을 하게 하는 스승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다. 내 경우도 딸로 인해 하루 3백배를 한 게 어느덧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큰딸이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해인사 금강굴에 계신 불필 스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스님께서는 나의 딸에게 입시가 끝날 때까지 하루 3백배를 할 것을 명하셨다. 입시공부를 하는 동안 매일 절을 하면 네가 원하는 모든 일이 이뤄질 것이며, 힘든 입시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3백배 숙제를 내준 것이다. 백번 옳은 말씀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딸애는 한 달 정도 열심히 하더니 슬그머니 그만두었다. 나도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입시생으로서는 무리이다 싶어서 강권하질 못했다. 그런데 스님께서 간곡한 말씀과 함께 내린 과제를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하지 고심하다가 딸을 대신해 3백배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내가 매일 수행과제로 3백배를 하는 건 순전히 딸 덕분인 것이다.

곧 부처님오신날이다. 아직 108배를 시작하지 못했다면, 세상 사람들의 정화를 위해 오신 부처님을 기억하며 108배 한번 올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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