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돌아가는 이 자체는 내 근본에 가설이 돼 있다

일체제불의 마음은 내 한마음이 되고

일체 법은 내 한 생활의 법이 되고

일체 몸은 내 한 몸이요, 그것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자리에, 정기법회에 이렇게 앉게 된 것이 아주 먼 옛날 같습니다. 너무 철새처럼 돌아다니다가 보니까 아주 먼 옛날에 같이 앉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여러분한테 말씀드릴 것은 첫째, 지난번에 알래스카로 해서 또 뉴욕으로 해서, 롱아일랜드로 해서 또 오하이오 주로 해서 또 산호세로 해서 L.A.로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너무 다니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서울엘 와도 내 둥지가 아니고 전체 어디든 가도 내 둥지가 아니더군요. 그런 반면에 여길 가도 내 둥지 저길 가도 내 둥지더군요, 또. 그러다 보니깐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한 비눗방울과 같이 그 방울이 한데 모여 떠다니다가 흩어지고, 흩어지다 깨지고, 깨지다 다시 모이는 것이 역력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반면에 때에 따라서는 보기가 너무 역겹고 가엾고, 그 뼈아프게 가슴에 흐르는 눈물은 한이 없었습니다. 또 한편 우주의 모든 인류가 찰나 생활로서 그렇게 즐거운 거 또 나쁜 거, 빠른 거 또 빠르지 않은 것에 아랑곳없이 찰나찰나 그냥 초를 다투며 돌아가더군요. 그런 걸 볼 때 우리 한국에 계신 여러분은 좀 더 여유 있게 이 공부를 자나 깨나 하시니 여러분에게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참 감사하구나! 모두들 정신력을 길러서 우리 조그마한 국토를 지키고 또 지구의 주인으로서 지구의 수명을 좀 더 연장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여러분이 다 가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를 가서 보니까, 이번에도 합창단이 행사가 있어서 거기 가게 됩니다마는, 한국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허덕거리고 물질세계로만 치닫고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거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오히려 외국 사람들이 무심(無心)으로써 정신적으로 해탈하는 데에 노력을 더 기울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뉴욕에 가니까 뉴욕은 뉴욕대로, 또 롱아일랜드에 가니 그곳은 그곳대로 지도법사를 모시고 폭력 문제나 또는 마약 중독자들이라든가 이런 미국 사람들에게 그 길을 인도하고 있는데 많이 좋아지고 있고 성과가 좋다는 그런 소식을 듣고 감사했고요, 또 뉴욕의 신도님들이 이 공부를 하려고 너무나들 노력을 하시는 걸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오하이오 주에 들렀는데, 그 주립대학에서 한 80명이 이 공부를 하고 있고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천주교나 기독교분들도 있고요. 또 부부들이 살기 때문에 부부가 다 한데 합치니까 아주 자리를 메웠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그날이 법회 날이요 또 부활절이에요. 그래서 거기에서 질문이 “부활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더군요. 그 질문 하나하나가 너무도 진지했습니다. 그때 대답한 거 한마디만 얘기하죠.

“부활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더군요. 그래서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생명은 있었으니, 초초마다 부활절이 아니겠느냐.” 그랬죠. “여러분이 생각을 일으키는 대로 부활절이지 딴 데 부활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 오신 날도 항상 우리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인등을 켜는 것이고 바로 부활절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겠느냐? 불교라는 것은 어느 종교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돌아가는 끝없는 진리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佛)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을 말하고, 교(敎)는 여러분이 좋은 말씀을 하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풀 한 포기도 불교 아닌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했죠. 그러니까 너무나 좋아서 그분들이 박수들을 치고 이랬죠. 그러고 나서는 산호세로 갔습니다.

산호세에서 신도들하고 법회를 보고, 또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강당에 섰습니다. 그곳 법회에는 샌프란시스코의 경찰국장 또 한미 연합회에서도 나왔고 또 샌프란시스코의 그 종교 출판사의 뭡니까? 무슨 국장? 편집국장! 편집국장도 나왔더군요. 너무나들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거기 식으로 인사하는 것을 지켜보려니까 아, 몸을 붙들고 이리 뺨을 맞추고 저리 뺨을 맞추고 그러는데 ‘아휴 참, 인사도 참 가지각색으로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허허허. 사랑을 한다면 입을 맞추고 표현을 하고 그러는데, 인사한다는 표현이 이렇게 거창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리고 또 거기에서 그 강당을 주선한 분들을 비롯하여 목사 또 천주교의 신부님 또 그 교인들, 불교인들을 막론하고 거기 전부 운집을 했더군요. 신문사의 기자는 물론이고요. 그랬는데 거기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생각이 나는 것은 글쎄, 이렇게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아니, 한국의 스님들은 왜 그렇게 싸움들을 잘하느냐고요. 허허허. 그거 질문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깐 말입니다, 아니, 그쪽에서는 왜 사람까지 죽이느냐고 하려다가, 허허허, 그것 역시 둘로 갈라지는 대답이기 때문에 대답은 안 했습니다. 단 이렇게 대답했죠. “화산이 왜 폭발하는 줄 아느냐? 돌과 돌이 한데 부딪치면 불이 번쩍 일어나듯이, 만약에 그 양쪽 돌이 부딪치지 않으면 불이 안 일어난다. 그런 반면에 화산이 폭발해서 얼마나 세계적으로 연구 자료가 됐고, 또 개발이 됐고, 과학적으로 여러 가지 연구 자료가 됐느냐. 연구를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과학이 발전이 되지 않았느냐?”라는 얘기를 하면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송장이나 그렇지 어떻게 우리 산 사람들이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느냐. 그것이 발전하는 거다. 우리 한국의 스님들은 서로 부딪치는 데에서 번쩍번쩍 불이 나는, 그 불 자체를 연구할 양으로 그렇게 한다. 허허허. 그러니깐 발전의 길이지 그건 싸우는 게 아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럭하고 보니까 참, 모두들 웃으면서, 그걸 가지고 물고 늘어지려고 했는데 그걸로써 고만 그냥 합류화돼 버리고 말았죠. 서로들 얼굴들을 쳐다보고 웃고 즐기고 손바닥을 치고 야단들 났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그 광경과 모두들 바쁘게 돌아치는 여러 한국분들을 보고 그럴 때, 그래도 여기가 여유가 있고 살기가 좋구나 하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참, 자식과 부모 사이, 부부 사이 이런 것이 너무 각박하고 서로 얼굴을 대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할 그런 여유도 없는 속에서 그래도 잘 버티고 살아나간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한국 부인들이나 남편들은 얼마나 여유가 만만할까. 그런 데서도 이 공부를 못 하신다면 정말이지 아마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래의 집이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 몸이 바로 여래의 집이며, 바로 거기가 부처님 계신 강당이며, 바로 그거를 이리로 옮기고 저리 옮기고, 변소에 가도 자기 집을 자기가 끌고 다니는 운전수이기 때문에 너무나 배울 점이 많지 않은가. 또 우리 생활이 마치 찰나찰나 프로펠러가 돌아가듯 그렇게 돌아가는데, 우리가 거기에 딱 붙어서 물러서지 않아야지,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다가 떨어지고 이러면 안 됩니다. 무조건 눈 꽉 감고 그냥 너하고 순응해서 같이 돌아간다는 그런 믿음과 바로 거기다 일임하고 물러서지 않는 믿음, 올바르게 항상 거기다가 입력하는 그 믿음이 필요하고 또 중용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거기다 놓고 돌아간다면 바로 중용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진실하게…, 우리가 요 핵심만 말을 하죠. 아니, 얘기를 하다 딴 데로 샜네요.

아까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얘기 했죠? 거기서 이제 또 L.A.로 갔습니다. L.A.에 갔더니 청년회의 회장이 말하기를 “각 절에서 어떻게 스님이 비구니인데 ‘큰’ 자가 들어가느냐.” 하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럭하고 목을 조이고 들어오니까, “스님네들 머리 속에 시스템을 다시 해야만 되겠다.”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러고선 ‘큰’ 자를 크게 해서 붙였더군요. ‘환영’이라고요. 그래서 거기 가서 있으면서 가만히 낌새를 보니까, 각처의 절에 나가는 청년 불자들이 한데 모인 모임입디다. 모임인데 청년 불자들만 강당을 세우지 못해서 아주 애를 쓰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나한테 무척 기대했답니다. ‘저 스님이 오시면은 강당 세울 뭐가 생기지 않겠나.’ 하는 기대요. 그것이 유리알처럼 환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속으로만 웃으면서 ‘아, 저렇게라도 하려고 하는데 참 감사하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가서 하루 있었습니다. 그 이튿날 설법을 해야 하니까요. 하루 있는 동안에, 가는 날 거기 있는데 어느 사람이, “어머니가 지금 생명이 위태합니다.” 사진을 가져와서 “이분입니다.” 하고 울었습니다. 딸이 울 때에 그것이 남의 자식 같지도 않고, 그것이 참 어떻게 생각하면은 애들을 기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할 때 애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그런 가엾은 생각이 드는 반면에, 나는 가슴에서 채 오기도 전에 “얘, 울기는 왜 울어?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응. 이끌어 주는 내가 있잖아?” 우선 급하니까 그렇게 해야지요.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닌데요. “내가 있잖아. 걱정하지 말아요.” 그럭하니깐 그 말에 안유가 됐는지 주소나 사진이나 이름을 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말을 했죠. “부처님 법에는, 부처님의 그 마음 성품은 체가 없어서 오고 감이 없기 때문에 주소도 필요 없고, 사진도 필요 없고, 이름도 필요 없다. 만약에 이 자리에 네가 있고 내가 있다면 부처님의 골수에 그 무진, 무한의 능력으로써 바로 너의 어머니를 건질 수가 있지 않겠느냐.” 하고선 웃음도 안 나오는 걸 기생처럼 웃었죠. 왜 기생처럼 웃음 안 나오는 걸 웃었느냐 하면은 그 사람을 볼 때 얼굴은 핼쓱하고 너무 참혹했습니다. 어머니가 숨도 못 쉰다는 겁니다. 죽음 직전에 도달했으니깐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야, 무슨 잘못되고 잘되고, 업이 있고, 인과가 있고, 뭐 너는 믿고 안 믿고, 모르고 알고 이런 생각을 한다면 안 되겠구나. 무조건 주지 않는다면 이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요. 우리가 무조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지 무조건이 아니라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데가 어딨습니까? 죄 안 지은 사람이 어딨고 말이에요. 죄가 있다면 모르는 게 죄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기서도 무조건, 무조건이다. ‘무조건이다’라는 그 한생각만 둥글게 가지고선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면서 그날을 지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렇게 오시는 분, 저렇게 오시는 분, 오시는 분들이 차례차례로 많았습니다. 그분들이 내놓고 간 돈과 내놓겠다고 적어 놓고 간 돈 이런 것이 저녁나절에 보니깐 모두 한 3만 5천, 6천 불이 되더군요. 그래서 그걸 청년부 회장한테 전했습니다. 이것을 보태서 청년들 강당을 세우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요.

다 털고선 나오니깐 일 불도 남지 않더군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저기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을 가리키시며) 저 사람 L.A.서 삽니다, 지금 저 사람더러 “나 용돈 좀 줄 수 없나?” 이러니까 “있습니다.” 그러고 2,400불을 주더군요. 2,000불만 달라는데 400불을 더 보태서 줬습니다. 그래서 사진 기사가 왔는데요, 거기는 여기처럼 그렇질 않아서 사진 기사가 아, 하나도 생기는 게 없어요. 그리고 이리로 저리로 뛰어야만 되는 그런 이치가 너무도 애처로워서 그냥 누가 오란 말도 안 했는데 왔지만, 누가 달란 소리 없어도 용돈 쓰라고 줬죠. 참 바빠서 집안 식구들 다 보기도 어렵지만 오늘은 일찌감치 저녁에 먹을 걸 좀 사 가지고 들어가서 식구들이 같이 오순도순 얘기도 하면서 음식을 좀 해 먹으라고 500불을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깐 마음이 아주 개운하더군요. 그러면서 내 이렇게 말을 했죠. “나는 내가 괴롭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한테 주기도 하고 그러지마는 내가 준 거는 하나도 없다. 나 괴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주고받고 이럴 것도 없고, 여러분이 나를 준 사이도 없고 내가 여러분을 준 사이도 없으니 그 도리를 알라.” 하고요. 이러면서 그 이튿날 법회를 하러, 아니 그날 저녁인가 봅니다. 모르겠습니다. 잘 잊어버리니까요.

그래서 법회를 하러 가니깐요, 아이, 청년부의 청년들이요, 그 덩치들도 크고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했느냐 하면은, 여기 한국처럼 거기는 플래카드를 어디다가 걸어 놓을 데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이어서 이어서 서 가지고 그걸 쭉 붙인 겁니다. 아, 들어가다 보니까 이 배에다가 전부 해서 목에다 걸고 떡 그냥 섰습디다. 배에다가 간판을 모두 붙이고요. 허허허. 그러니 얼마나 우습습니까? 누가 하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참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왔으면 그냥 갈 수는 없다고 하면서 이 공부를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지 않나 하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아주 그 알 양으로들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 강당엘 들어가니까 아이, 이게 웬일입니까. 글쎄, 우리가 번역한 반야심경을 하지 않습니까? 모두들 그거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 아주 대단히 감개무량했어요. 반야심경에는 팔만대장경과 끝없는 진리가 포함돼서 들어 있는데 아, 그것을 읽고 있지 않습니까. 사무 사유(四無四有)의 그 돌아가는 불바퀴가 그대로 거기에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양으로 아주 그거를 천천히 읽으면서 그렇게 하고 있더군요. 얼마나 감개무량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질문도 받고, 저는 뭔 질문을 받고 뭔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끝났습니다. 지금 아마득합니다, 아주.

그렇게 끝이 나고 거기 L.A.에서 안양으로 바로 오다 보니까 아, 여기 한국에 도착했는데 글쎄, 그 생각이 왜 납니까? ‘아유, 한국을 가도 내 둥지라고 할 수 없는 그런 둥지겠지. 여기 가나 저기 가나. 그 둥지도 역시 마찬가지지.’ 하면서 그래도 한국의 둥지로 오니까, 아주 날아다니다시피 하고 그렇게 급하게 다니던 내가 가슴에선 아주 안도의 숨을 쉬는 그런 게 완연히 나타났습니다. ‘내 둥지 네 둥지 없다고 하면서도 여기서 난 게 내 고향이지 딴 데 있나.’ 하면서 참,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내렸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핵심적인 문제…, 수박 얘기를 지난번에도 했죠. 수박 가장자리가 퍼렇고 허옇고, 속이 뻘건 거를 말할 게 아니라, 핵심적인 그 안에 있는 것을 심어서 싹이 나게 해서 우리 스스로 자기 열매를 맺게 하고, 자기 나무에서 그 열매가 무르익게 하고 무르익으면 그 맛이 만 가지 맛이 나게 하고, 그 만 가지 맛이 나면 거기에서 그 씨의 그 밥이 아닐까요? 그러니 자기가 실험하고 자기가 체험해서 맛을 알아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항상 하는 말이지마는 다시 한번 거론할까 합니다. 문제는 핵심이 거기 있으니깐요.

항상 말했죠. 오신통 그것은 여러분의 시스템이 돼 있는 그런 기구와 같다고요. 영원한, 끝 간 데 없는, 자유스럽게 돌릴 수 있는 기구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전자에 부르던 오신통이라는 이름은 한문을 잘 아는 분들이나 어른들이나 알지 지금 애들은 모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 이름을 지금 현대 용어로 붙인 겁니다. 즉 말하자면 누진통(漏盡通)은 레이더망으로 쳤고 또 숙명통(宿命通)은 그 자기가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지켜보는 그 둥우리의 컴퓨터로 쳤습니다. 가장자리에 이렇게 그 네 군데로 줄을 이어서 붙어 있는 것은 천이통(天耳通), 즉 말하자면은 무전통신기죠. 또 사진기는 천안통(天眼通)입니다. 천체망원경으로 비유했죠. 그거는 스스로 사진이 찍히고 스스로서 볼 수 있고, 스스로서 보는 것도 천차만별로 볼 수 있는 겁니다.

또 타심통(他心通)이라는 것은 탐지기인데 천차만별로 생각을, 마음을 조절하고 마음을 낼 수 있고, 또 마음 내는 거를 볼 수 있는 거죠. 이 모두가 탐지기 하나면은 그 여러 가지 과목이 거기에서 다 나갈 수 있는 그런 탐지기죠. 그리고 신족통(神足通)이라는 것은 팩스로 이름을 붙였다면, 그것은 오고 감이 없이 턱턱 나옵니다. 지금 지원에도 다들 그걸 놨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탁 넣기만 하면 여기로 뚝 떨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오고 감이 없이 그렇게 오고 가는데, 그거는 우리가 물질로서 그렇게 빠르게 연구를 한 겁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는 체가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같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근본적으로 자기 한마음 주인공에 그 시스템이 돼 있고 또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하고 광대무변하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무한의 능력을 가지고 있죠. 이걸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정립을 해서 들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즉 말하자면 레이더망이 위에, 머리에 탁 있으면 이 중심, 기둥이 있다면, 그 아래로는 바로 그 기둥을 싸고 있는 컴퓨터가 붙어 있고 그 기둥을 싸고 있는 데에 또 붙어 있는 팩스 또 그 천체 무전통신기인 탐지기가 붙어 있고, 망원경이 붙어 있고 이렇게 해서 그것이 같이 돌아가죠. 이 심봉, 기둥은 돌아가지 않지만 말이에요. 그건 능력만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돌아가는데 돌아가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 돌아갈 수 있느냐 이런 겁니다. 그것은 사대(四大), 즉 지수화풍이 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수화풍이 있기 때문이죠.

이 세상에는 모두가 지수화풍 아닌 게 없고, 여러분도 지수화풍으로써 사대가 뭉쳐진 거죠. 그럼으로써 거기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이 이차적으로 대두되고 있죠. 그게 있기 때문에 누진통까지 여섯 가지의 시스템이 돼 있는 겁니다. 우리가 마음 내면은, 즉 말하자면은 지배인이 말을 하면 직원들이 다 돌려서 재료를 자동적으로 내놓듯, 그렇게 그 시스템이 돼 있다 이겁니다. 자동적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반면에, 현실에서 이렇게 찰나찰나 닥치는 고통과 고난과 그 괴로움, 병고, 액난, 그 애고(哀苦) 등의 문제들은 어디서 그렇게 나오느냐는 얘깁니다. 한편 숙명통(宿命通)이라는 컴퓨터는 과거에 살던 일생뿐만 아니라, 전체에 살던 자기가 한 것대로 인과가 바로 거기 입력이 돼 있는 겁니다. 인으로 인해서 과가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의 몸속에 인과로 뭉쳐진 그 생명들과 의식들이 바로 그 컴퓨터에 다 들어 있죠. 그리고 또 우리가 하고 지낸 것이 다 거기 들어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자꾸자꾸 나옵니다.

‘난 부처님을 믿으러 다니는데 하나도 해결이 안 되더라.’ 이런 생각은 좀 더 삼가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꾸자꾸 자기한테서 나오는 그 모든 고를 모르더라도 무조건 거기에 다시 일임하고 놓는 것이 바로 입력입니다. 되입력을 한다면 앞서의 인과나 유전성, 영계성 또는 세균성, 업보가 전부 무너지고 말아 버리죠. 없어지죠. 입력을 되하니까 말이에요. 그러니깐 그릇은 항상 넣어도 넣어도 비고, 넣어도 비고 이렇게 되니까, 자기를 밝게 얼른 발견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릇이 꽉 차서 못 발견하던 것을 그냥 얼른 발견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이 이것저것 거죽에서 여러 가지 헤아릴 수 없이 나오고, 타심통에서도 마음 난다는 것이 수많은 생각으로 나오는 것을 어떻게 다 탓을 하리까? 어떻게 배울 수 있으리까? 그러니 무조건 나오는 것은 다섯 가지고 여섯 가지고 간에, 오온의 진리가 전체 자기로 인해서 생긴 거고, 또 상대가 생긴 거니 무조건 안팎에서 일어나는 것을 거기에다가 놓을 수밖에 없다.

그건 또 왜냐? 허공 이 우주 전체가 인간의 근본 마음에 직결이 돼 있고, 세상살이 돌아가는 이 자체는 내 근본에 가설이 돼 있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우주 삼천대천세계가, 삼세가 그냥 하나로 뚫려 있다 이겁니다. 뚫려 있으니 벽도 없고 봇장도 없고, 뚫려 있으니 걸리지 마시고 돌아가는 데 모든 것을 거기에 놓고 일임하고 또 거기서밖엔 해결을 못하고…, 거기에 감사하십시오. 이런다면은 정말 우리가 노래하듯 일체제불의 마음은 내 한마음이 되고, 일체 법은 내 한 생활의 법이 되고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까? 일체 몸은 내 한 몸이요, 그것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로따로 있지 않기에 바로 컵은 컵이고, 접시는 접시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접시에는 접시의 물건을 담게 돼 있고, 천차만별로 그릇이 돼 있죠.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대행스님께서 1990년 5월 20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 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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