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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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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연재 고원영의 ‘저 절로 가는 길’
驪江서 세상 어지럽힌 龍의 흔적 보다⑨ 신륵사 가는 길
  • 고원영(조계종 산악회 부회장)
  • 승인 2017.04.2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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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변 여강길을 걷다가 잠시 쉬는 도반들의 모습. 옛 사람들은 한강에 풍랑이 일거나 좋지않은 일이 발생할 때 용이 사나운 기세를 뿜어서라고 믿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한 4대강 사업을 여전히 진행하는 준설선의 모습에서 날뛰는 용의 모습이 그려졌다.

용 제압한 나옹 설화 전해져
신륵사 곳곳 용 관련 흔적이
강월헌서 4대강 준설 문제 고찰

여주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우만리 가는 버스를 탔다. 우만리 정자나무 옆에 버스는 나를 내려준다. 그 사이 비가 살짝 내린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다.

우만리나루터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멀리서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대번에 남한강을 지키는 수호신장임을 알 수 있다. 우만리는 ‘우만이’라는 조선시대의 장수가 태어난 동네로 이 느티나무가 우만이 장수의 현생인지도 모른다. 수령 300년인 이 울울한 느티나무는 신륵사 전탑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등대 역할을 했다.
우만리 사람들은 음력 정월 보름이면 남한강물을 떠다가 밥을 지어 날이 밝기 전에 강으로 흘려보냈다. 남한강에 사는 용을 배불리 먹여 사고를 막고자 하는 액땜이었다는 이 이야기는 잠시 후 내가 도착할 신륵사에서도 이어진다.

느티나무 곁에 다가가자 교복 입은 학생들이 보이는 듯했다. 1972년 홍수로 나루가 없어지기 전까지 이곳에는 아침이면 여주읍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은 배에서 내렸다. 그들은 또 저녁이면 날이 어둡기 전에 강 건넛집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배에 올라탔다.

부라우 나루터와 영월루 강변.

배가 드나드는 나루에 선 사람에게는 강을 건너야 할 어떤 이유가 있다. 아주 오래전 부처에게도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갠지스강 건너편에 있는 바라나시를 바라보던 부처도 나루에서 배를 타려 했지만 사공은 뱃삯이 없는 부처를 거절했다. 부처는 하늘을 날아 갠지스강을 건넜다.

부처는 바라나시의 동북쪽 외곽에 있는 사르나트로 갔다. 부처가 강을 건너야 했던 이유는 당신의 보호관찰자이자 도반이었던 다섯 명에게 깨달음의 기쁨을 나눠 주기 위해서였다.

사르나트에서 다섯 도반을 만난 부처는 먼저 당신이 유미죽을 먹은 이유를 이해시키기 위해 중도를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이어서 사성제와 무아와 12연기법를 차례차례 가르쳤으리라.

다섯 명 가운데 먼저 콘단야가 알아차렸다. 콘단야가 울면서 기뻐했지만 부처 또한 기쁨이 넘쳤다. 아마도 당신이 깨달았을 때보다 기뻐했으리라고 나는 추측한다.

“에히 빅쿠!”
부처가 콘단야에게 ‘이리 오너라’ 소리친 것은 당신의 깨우침이 타인의 깨우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에히 빅쿠의 중국말은 선래비구(善來比丘)이다. 영어로는 매우 감동해서 소리치는 ‘Come On’에 해당하지 않을까? 요컨대 불법이란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서 감동이 오가야 한다.

우만리 나루터에서 파란 리본이 나뭇가지에 달린 길을 따라 부라우 나루터를 향해 갔다. 해가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가는 금세 사라졌다. 비를 품은 구름이 하늘과 강에서 동시에 떠다녔다. 강가의 숲은 생명력으로 넘쳤다. 잠시 내린 비가 파놓은 물웅덩이에 풀씨가 날아들어 둥둥 떠다녔다. 강가에 물억새가 우우우 피었다. 개와 고라니가 유채꽃이 핀 숲길에 똥을 싸서 그 위에 파리가 맴돌았다.

부라우 나루터를 나와 영월루로 가는 강변을 걷는다. 강이 봄 햇살을 튕기며 느리게 몸을 트는데 어디로 흐르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강의 그런 속도가 내 발걸음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나는 저 강의 고요도 믿을 수 없다. 남한강은 홍수와 범람이 잦았다. 강이 미친 듯 날뛰면서 주변을 도탄에 빠뜨릴 때 옛사람들은 강에 사나운 용이 산다고 믿었다. 용의 기세를 잠재우려면 신통력을 지닌 스님이 필요했다. 고려 때의 스님인 나옹이 적임자였다. 그는 즉각 신통력(神)을 발휘해 능히 용을 제압(勒)했다.

한강 등대 역할을 한 신륵사 전탑.

영월루에 오르자 강 건너 전탑을 수호신장처럼 세운 신륵사가 보인다. 한눈에 보기에도 절이 있는 봉미산 기슭을 남한강의 또 다른 이름인 여강(驪江)이 둘러싼 모습이었다. 봉미산과 여강, 한글로 풀자면 용의 꼬리와 검은 말이 묘하게 상치하는 곳에 신륵사가 있다. 신륵사 부근에 용마가 자주 출몰했다는 오랜 전설은 바늘과 실의 관계이리라. 이쯤이면 내가 한남대교 위에서 보았던 용을 찾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내 보았다. 강 한가운데서 모래를 퍼올리는 거대한 준설선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4대강 사업의 모습이 꿈결인 듯 내 앞에 펼쳐졌다. 낮은 언덕과 나무들을 거느린 강가에서 포클레인 몇 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엔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눈을 세게 감았다 뜨는 것으로 이명박 정권의 악몽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고 용은 다시 등장할 것이고, 마치 불멸인 듯 세상을 휘젓고 다니면서 맘껏 조롱할 것이다.

용을 잠재운 신통력의 소유자 나옹도 왕명을 받아 양주 회암사에서 밀양 영원사로 가는 유배길인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나옹의 문도는 즉시 신륵사에 사리탑을 세웠다. 비를 세울 대리석과 화강암을 구하고 석종을 만들었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 이색이 썼다. 이색은 당시 신진사대부인 유학자면서도 대장경을 출간하였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1382년 2층의 장경각을 지어 대장경을 봉안한 인물이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절 안은 용들이 침범했던 흔적이 뚜렷했다. 문화재급 보물인 석종 앞 석등과 대장각기비각, 다층석탑에 용들의 돋을새김이 유난히 눈에 띈다.

신륵사는 안쪽보다 바깥쪽이 더 의미 있는 절이다. 이것은 전탑과 강월헌을 둘러보고 나서 결론 비슷하게 내린 내 생각이다. 흙으로 구운 벽돌로 차곡차곡 쌓은 전탑은 그 체감률이 매우 안정적인데, 신라의 전탑과 달리 몸돌에 비해 지붕탑이 얇은, 전형인적 고려의 전탑이다. 그런데 왜 남한강이 훤히 굽어 보이는 곳에 전탑을 쌓았을까. 아무래도 수운(水運)이 활발했던 남한강과 관련해서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와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흘러온 물이 한물로 합치는 남한강에는 곡식이나 소금, 그 밖의 생필품을 나르는 배들이 많았는데, 신륵사 전탑은 그 배들에게 방향을 알리는 일종의 등대 역할을 했다. 신륵사를 벽사, 벽절로 부르는 데는 신륵사 전탑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전탑에서 나옹의 당호를 따서 지은 강월헌(江月軒)으로 내려선다. 동대라고 부르는 바위에 삼층석탑이 있는데, 그 곁에 정으로 팠음직한 음푹한 구멍이 발에 걸린다. 다비장임을 알리는 소대가 틀림없다. 회암사에서 중창불사를 성공시키고 낙성문수회를 열었던 나옹은 왜 갑자기 유배라는 왕명을 받았을까? 그 시기가 불과 한 달이다. 다비를 마친 신륵사 스님 달여는 꿈에 용이 나타나서 강월헌을 불태우고 홀연히 여강으로 사라지더라 했다.

용과 버천상이 새겨진 신륵사 석등.

용은 어디에 있을까. 강월헌에 앉아 강을 내려다본다. 용이 등장할 기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느새 해가 이울어 강은 더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하루치 작업을 마쳤는지 준설선도 별 움직임이 없다. 눈에 보이는 준설선도 무상하거늘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용을 찾으려 한단 말인가. 지독하게 안개라도 끼지 않는다면 뜬눈으로는 절대로 용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눈을 지그시 감아보았다. 환상에 사로잡히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용이 있다는 생각도 용이 없다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오히려 환상에서 벗어나야 진짜 용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에 잠겨 오랫동안 강월헌에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내 머리는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과거는 이미 흘러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 또한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 사라져버리므로 과거ㆍ현재ㆍ미래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데, 과연 시간이란 게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쪾걷는길 : 우만리 나루터 남한강 대교 - 부라우 나루터 금은모래강변  영월루 - 신륵사
쪾거리와 시간 : 8.5km, 4시간 예상

고원영(조계종 산악회 부회장)  noduc@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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