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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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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연재 박태수의 ‘명상은 세상과의 소통’
느낌을 놓치면 감정만 남는다명상은 세상과의 소통 ⑨
  •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 승인 2017.04.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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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六根)으로 느끼는 대상
있는 그대로의 1차적 느낌과
감정 붙은 2차적 느낌 나뉘어
“내 감정 내려놓고 바라보라”

내 느낌은 어떤 것인가
봄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명상센터 앞뜰에 있는 백목련의 화려했던 모습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대신 그 가지에 연둣빛 잎들이 자리하고 있다. 뒷산에는 산 벚꽃이 참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연분홍빛을 띠며 온 산을 수놓고 있다. 춘삼월 호시절이다. 꽃잎을 따서 전을 부쳐 먹는 화전놀이하기에 좋은 때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들뜬다. 가수 백설희가 부른 노래 가사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고개…”를 흥얼거려본다. 마음은 저절로 하늘을 떠다니는 것 같다.

‘안 되겠다. 이 들떠 있는 마음을 평안하게 해야지.’

마음먹고 걸음에 주의를 두고 명상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잠시나마 다른 세상에 들렀다가 왔다.

우리가 살면서 순간에 존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느낌은 감춰지지 않는다. 나는 느낄 수 있고, 내가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 내 얼굴과 몸으로 나타난다. 내가 불쾌한 경험을 기억하면 느낌들은 부정적이 되고, 남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다. 반대로 유쾌한 경험을 하면 남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세상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다. 인간은 타고난 조건으로써 정서와 사고, 행동의 특성이 있다. 그 중에서 정서, 즉 느낌은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내적반응이다.

이러한 느낌은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느낌은 신체에 여러 형태, 떨림, 심장이 두근거림, 맥박이 빨라짐, 소름 끼침 등으로 나타난다. 깜깜한 밤중에 길을 걷다가 길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머리끝이 솟구치고, 등에 식은땀이 나며 맥박이 빨라진다. 누군가와 언쟁을 하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커지고 얼굴이 붉어지며 호흡은 가빠진다. 이처럼 느낌은 몸을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몸을 알아차리면 지금 내가 어떠한 마음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느낌의 경험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형된다. 화난 느낌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그 강도가 얕아진다. 조금 전 누군가와 다투어서 몹시 화가 났더라도 돌아서면 그 화가 언제 났는지 모를 때가 있다. 분명 조금 전에 화가 났는데, 기억으로는 남아있어도 지금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상(無常)이다. 화는 곱씹으면 남아있지만 그냥두면 사라진다.

이러한 느낌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1차적 느낌과 2차적 느낌으로 나눌 수 있다. 1차적 느낌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 그 순간의 느낌이다. 2차적 느낌은 1차적 느낌이 왜곡되어 나타난 느낌이다. 가령 복잡한 버스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애기를 업고 가방을 들고 서 있는데, 뾰족한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 그녀의 발을 밟고 지나갔다고 하자. 발이 밟히는 그 순간의 느낌은 아픔이다. 이것이 1차적 느낌이다. 그녀는 아픈 발을 바라보면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참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사과 한마디 없이 서 있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1차적 느낌인 아픔 대신에 얄밉고 화로 가득 찬 2차적 느낌만 있다.

이러한 상황을 대화로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1차적 느낌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아주머니는 발이 밟히는 순간 아픔을 느끼고 큰 소리로 “아야!”하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면 아가씨는 놀라면서 “아이고, 아주머니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고 사과할 것이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아프지만 사과하는 아가씨에게 더 이상 나무랄 수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요”라며 괜찮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2차적 느낌인 화난 상태로 대화를 나눈다면, “아가씨! 남의 발을 밟았으면 사과를 해야지, 그냥 지나가면 어떡합니까?”라고 큰 소리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 화난 소리를 들은 아가씨는 “복잡한 버스 안에서 밟을 수도 있지 뭘 그래요”라고 대꾸할 것이고, 이 말에 더욱 화가 난 아주머니는 성난 말투로 “뭐예요, 말 다했어요?”라며 상황은 험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일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가령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골목길에서 다른 차가 나오는 순간 브레이크를 밟음으로써 충돌의 위기를 면했다고 하자. 이때 우리의 1차적 느낌은 놀라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데 대한 안도일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고개를 들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순간 이처럼 위험에 이르게 된 것이 상대방 운전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게 될 것이다. 1차적 느낌이 왜곡되면서 2차적 느낌으로 변형된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본 것에서 생각이 개입된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대화로 연결해 보자. 양자 모두 1차적 느낌으로 만난다면 어느 쪽이든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습니까?”라든가 “미안합니다. 제가 좀 바쁘게 서두르다 그만”이라고 말하면서 험악하게 될 상황이 쉽게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나 2차적 느낌으로 말한다면, 상대 운전자를 향해 “야 이 자식아! 운전 똑바로 해” “뭐야 이 자식아! 너도 조심했어야지!”라며 소리를 지르게 될 것이다. 이처럼 2차적 느낌으로 만난다면 자동차는 부딪히지 않았지만 결국 사람은 크게 다치게 될 것이다.

1차적 느낌은 순수하다
마지막으로 부정적 느낌을 표현하고 나면 정화작용이 일어난다. 느낌은 표현하지 않으면 미결과제로 남아서 새로운 경험에 방해가 된다. 그 순간 일어난 부정적 느낌은 그 순간에 정화시키는 것이 가장 훌륭한 대처방법이다. 그 순간 해결하지 않고 남겨 둔다면 두고두고 따라다니면서 그 감정으로 인해 만난 사람과의 관계를 방해할 것이다. 우리 자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에너지장의 일부다(Waters, 2000). 우리는 미세한 에너지(생명력)를 감지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자신의 에너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느낄 수 있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연민, 용기, 용서, 신뢰와 같은 삶의 원동력으로 우러나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보살피도록 하지만 부정적인 에너지는 우리를 편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고, 그로 인해 우리는 약해지고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우리 자신의 에너지가 분노, 욕망, 섹스, 미움의 에너지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인생은 초라하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한 상담봉사자가 자신의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1차), 반복되자 화가 났다(2차). 그래서 2차적 느낌으로 “앞으로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오지 마세요. 저 혼자 하겠습니다”라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그 분은 “좋아요. 그럼 다시는 나오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나갔다. 그 순간 나는 당황스럽고 낭패감이 들었다. 그래서 재빨리 그 분이 나간 문으로 따라 나가면서 “돌아오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한 말 취소하겠습니다”라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분은 “알았어요. 조금 있다가 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일촉즉발, 그 분과 내가 영원히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뻔 했던 순간이었다. 그렇다. 1차적 느낌을 놓친다면 아름다운 인생도 놓치게 될 것이다.

명상은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들어오는 여러 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이 대상들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고 현재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밖의 대상인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 등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감각대상과 만난다. 이때 만남이 일어나는 현상을 아무런 생각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이다.

만일 눈으로 들어오는 대상인 어떤 여성(1차적 대상)을 보았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 예쁘다, 말이라도 한번 걸어봤으면’ 하는 등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킨다(2차적 대상). 그러나 명상에서는 여성이라는 대상을 그냥 ‘사실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알아차린다. 만일 1차적 대상이 아닌 2차적 대상인 ‘좋다, 예쁘다’라는 느낌을 가진 대상으로 만나면 취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고 이 욕망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강해지면 결국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가령 눈으로 가방을 본다면 ‘가방이 멋있다. 나도 저런 가방을 가지고 싶다’ 등으로 대상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보는 것을 ‘알아차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없이 보는 것에는 ‘좋다, 나쁘다, 가지고 싶다’ 등의 탐(貪)·진(瞋)·치(痴)가 일어나게 되고, 결국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그냥 ‘가방’일 뿐이다.

이처럼 그때그때 나타나는 현상에다 집중하고 관찰하다 보면 대상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고, 알아차림이 지속되면서 그 대상의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1차적 느낌은 상황이 일어나는 그 순간의 느낌이니 1차적 대상 자체를 말함이요, 2차적 느낌은 왜곡된 느낌이니 감정이 개입된 2차적 대상을 말함이다. 처음 일어나는 느낌과 처음 마음이 가는 대상은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이다. 1차적 느낌에는 헤매는 마음이 없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래서 만나는 그 순간의 대상은 ‘있는 그대로’의 느낌이요, ‘순수한’ 대상이다.

인간은 출생 시부터 사망할 때까지 원하든 원치 않든 필연적으로 관계를 통해 느낌으로 만난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의 삶에 중요한 메시지로 남아 그의 인생에서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옳고 그름으로 인해서 생기기보다 감정으로 인해 생긴다. 관계에서 1차적 매체는 느낌이다. 느낌을 놓치면 인생도 놓치게 된다.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hyunbulnews@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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