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봉 스님, 처음 공개… 5일치 8장 분량

영천역사문화박물관장 지봉 스님이 공개한 ‘조보’ 중 일부. 실물로 공인될 경우 세계 최초 신문으로 인정받는다. 사진 제공= 지봉 스님

선조 10년(1577) 음력 11월 28일. 선조는 조정 신료들에게 “내가 우연히 조보(朝報)를 보건대 매우 우려할 일이다. 끝까지 추문해 엄히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꾸짖는다. 이에 조정은 조보 발행에 참여한 30여 명을 잡아 추문하고 형벌을 내렸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됐던 세계 최초의 신문 ‘조보’의 유일한 기록이다. 이 같은 기록을 통해 조선 중기에 이미 신문이 발행되고 있었음이 추정됐지만, 그간 실물이 나오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보’의 실물로 추정되는 문서가 서지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스님의 노력 끝에 발견됐다.

“조보 첫 확인, 의미 높아”
獨서 나온 신문보다 앞선
1577년 발행, 일간지 표방
국정부터 날씨까지 담아내
선조 격분…3개월만에 폐간


영천역사문화박물관장 지봉 스님은 최근 고서적 경매사이트에서 입수한 ‘조보’ 실물을 공개했다.

지봉 스님이 입수한 조보는 8장. 1577년 음력 11월 6일, 15일, 19일, 23일, 24일 총 5일치 분량이다. 내용도 다채롭다. 6일자에는 인성 왕후의 안부를 묻는 내용, 왕과 신하가 학문을 논하는 경연이 열리지 않다는 기록이 담겼다. 15일자에는 소 수백 마리가 역병으로 죽었다는 소식, 23일자에는 날씨와 별자리까지 기록돼 있다. 심지어는 조정 신하들의 인사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조보는 지금의 일간지처럼 매일 활자 조판으로 발행됐고, 사대부부터 글을 읽을 수 있는 지식인 계층에게 판매됐다. 사실상 민간 주도 일간 상업지였다는 것이다. 특히, 조정의 소식을 담기면서 사대부와 지식인 계층에게 정치에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백성에게도 나라 소식이 전해질 수 있었다.

입수된 ‘조보’ 문서가 공인될 경우 한국은 세계 최초 신문을 발행한 국가로 인정받게 된다. 그동안은 독일에서 1660년에 발행된 ‘라이프치거 차이퉁(Leipziger Zeitung)’이 세계 최초 신문으로 공인돼 왔다. 조선시대 조보의 발행은 이보다 83년 빠르다.

영천역사문화박물관장 지봉 스님은 “그간 조보는 실록 기록만 있을 뿐 실물이 확인되지 않아 공인받지 못했다”면서 “조보 문서가 공인될 경우 조선은 역사상 최초로 민간 상업 일간지를 발행했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보는 선조의 분노로 발행 3개월 만에 폐간됐다. 지봉 스님은 “왕권 기반이 약했던 선조는 조정의 소식이 가감 없이 백성과 외국에 전달되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라며 “민간 조보의 발행은 당시 조정의 큰 사건이었다. 기자와 판매원이었을 30여 명의 사람들이 추문을 당하고 형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보를 입수한 사람들도 숨길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역사에서 잊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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