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섭 교수, 22일 화성불교유적 세미나서 주장

도반 의상 스님과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던 원효 스님이 어느 무덤에서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뒤 유학을 포기하고 무애행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 스님이 해골물을 마신 무덤, 즉 오도처의 위치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현재에는 평택 수도사가 원효 스님의 유력한 오도처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효의 오도처는 평택 수도사 등 현재 사찰들이 아닌 화성 당항성(현재 당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1, 2차 걸쳐 구도길 오른 원효
2차엔 鷄立領路로 화성에 도착
당은포- 中등주 유학길 추정해
“해골무덤, 신흥사·수도사 아냐
화성 당항성 인근 무덤일 것”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4월 22일 한국불교문인협회와 화성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제1회 화성불교문화유적 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한 논문 ‘원효의 오도처와 화성 당항성 관계사 고찰’서 이같이 주장했다.

고 교수가 원효의 오도처로 화성 당항성을 꼽은 것은 원효와 의상의 구법루트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신라는 진흥왕대에 화성 당항성을 영토로 편입하고 이 일대를 나당 교통의 관문으로 삼았다. 당항진은 당나라로 나아가는 나루터였고, 이곳에는 당항지역을 관할하는 당항성이 있었다. 당항성은 경기도 화성시 구봉산에 자리하고 있다.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은 2차례 걸쳐 당나라로 유학을 추진한다. 육로를 통해 고구려를 가로지르는 루트의 1차 유학은 실패했고, 11년이 지나 진행된 2차 유학은 기존 육로가 아닌 해로를 통해 이뤄졌다.

고 교수가 주목한 것은 신라 견당사들의 루트였다. 당시 견당사들은 북쪽으로는 소백산맥을 넘어 화성으로 가는 죽령로(竹嶺路)와 경주-문경-충주-여주(수로)·직산(육로)-화성 당은포의 계립령로(鷄立領路) 등을 주로 이용했다. 2가지 루트 중 고 교수가 주목한 것은 바로 ‘계립령로’다. 원효의 1차 유학은 육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죽령로를 이용했을 수 있지만, 2차 유학은 죽령로보다는 백제 고토로 가는 지름길인 계립령로를 통했을 것이라는 게 고 교수의 설명이다.

고 교수는 “신라 견당사들은 경주에서 당나라 장안까지 3~4개월 동안 육로와 해로를 통해 오갔다. 원효와 의상 또한 견당사들의 행로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전제하며, “계립령로를 선택한 원효와 의상은 충주 서북지역에 있는 여주 수로를 통해 남양만 당은포로 향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원효와 의상은 당은포에서 중국 등주로 가는 항로로 당나라 유학을 떠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경주에서 당은포까지 이르는 지름길이자 직선경로인 계립령로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여주 수로를 육로의 직산보다 여주 수로를 이용했을 것이다. 실제 수로는 육로보다 보행자의 부담이 적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같은 구법루트를 감안하면 원효와 의상 스님이 잠을 청했던 무덤이 화성 신흥사와 평택 수도사로 국한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당시 남양만 당항포의 관할지가 당성이었고, 당성이 현재 경기도 화성에 있으며, 중부횡단항로로 나아가는 출발지점이 남양만 당은포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효의 오도처는 당항성 인근 어느 무덤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라며 “또한 원효의 오도처가 무덤이었다면 그곳이 현재의 사찰이기 어렵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원효 사상과 화성 당성’을 주제로 열리는 이날 학술발표회에서는 선진규 한국불교문인협회장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원효의 화회(和會)사상과 평화교육(김용표 동국대 명예교수) △원효 설화 그리고 문화콘텐츠화(이재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 등의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논평자로는 정희경(동국대 강사), 정성준 (티베트대장경역경원 연구교수), 정진원 (동국대학교 강사) 등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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