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재동자 이야기 中

선재동자가 선지식 마야부인을 친견하는 모습.(‘〈화엄경〉 입법계품 변상판본, 고려시대’) 입법계품의 변상도를 보면, 선재동자가 한 명이 아니라 복수로 등장하는 것이 발견된다. 이는 선재가 시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마치 동영상을 보듯이 화면 속 여러 명의 선재를 순차적으로 따라가며 감상하면 된다.

선재동자는 총 53명의 선지식들을 만나는데, ‘어떻게 하면 진정한 보살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일관되게 집요히 추구합니다. 그런데 찾아가는 선지식마다 본인이 깨달은 삼매를 가르쳐 주고서는, 하나같이, 본인은 그것 밖에는 모른다며 겸손히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경지는 저 무궁무진한 우주와도 같은 큰 보살의 경지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큰 경지로 나아가라’며 더 위대한 선지식들을 소개 소개해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요즘 수행 지도자들의 ‘자신이 시도한 방법이 최고이고 다른 방법들은 모두 문제 있다’라는 식의 풍토와는 사뭇 다릅니다.

선재가 구도 여정서 만난 선지식들
뱃사공부터 아이·神까지 ‘각양각색’
위안부터 생사 끝까지 몰아붙여서
삼매 전하고 “더 정진할 것” 요구

그런데 선지식들은, 뱃사공·아름다운 여인·노인·비구·청신녀·어린 아이·야인·땅의 신·밤의 신·허공 신·보살 등으로,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수 년 때로는 수 십 년에 걸친 여정을 마다않고 찾아온 선재동자에게, 선지식들은 자신이 체험한 삼매를 고스란히 체험하게 해줍니다. 함께 손을 잡고 삼매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생사의 기로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하고, 꼭 껴안아 주기도 하고, 설법을 해주기도 하며 보살의 경지를 열어 보입니다.
 
설화적 요소의 선지식들
선재는 자신의 보리발심을 찬탄해준 미가장자를 만난 후, 12년이 걸려 다음 선지식인 해탈장자(解脫長者)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몸에서는 막강한 광명이 발산되어 시방 세계를 충만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선재동자는 이 같은 삼매에 든 해탈장자를 관찰하기를 6개월하고도 6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시방을 두루 비추어, 무한한 이익을 중생에게 주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를 통해 널리 관(觀)하는 힘을 성취하기만 해도, 즉 보안(普眼)이라는 경지의 눈을 스스로 갖추기만 해도, 그 자체로서 중생에게는 무한한 이익이 됨을 알게 됩니다.

선재가 아홉 번째 만난 선지식은 비목선인(毘目仙人)인데, 그는 사슴 가죽을 뒤집어쓰고 땅바닥에 앉은 야인(野人)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살 예비생으로서의 선재를 바로 알아보고 “선재는 기필코 모든 중생을 구하고 기필코 모든 괴로움을 없앨 것”이라며 칭찬합니다. 선재가 비목선인의 경지가 어떤 경지인지 묻자, 그는 다짜고짜 선재의 머리를 만지고 손을 덥석 잡습니다. 그러자 선재는 순식간에 삼매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선재동자는 갑자기 자기 몸이 시방으로 10불찰 미진수 세계에 가서 10불찰 미진수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음을 보았다.”

손을 잡는 순간, 선재동자의 몸은 수천 개의 화불로 분파되며, 사방 끝 간줄 모르고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선인이 손을 놓는 순간, 선재는 자신의 몸이 본래대로 돌아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만나는 선지식마다 격려와 기운을 더해주기에, 선재동자는 기나긴 순례를 하면서 서원이 점점 견고해 지고 고달픈 생각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나아가는 동안, 그의 원(願)이 성취되어 그 몸이 법계에 두루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를 반복합니다.

선지식들은 근엄하거나 고매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재주동자(自在主童子)처럼 물가에서 모래장난을 하고 있거나, 휴사청신녀처럼 순금 자리에 앉아 진주 그물관을 쓰고 온갖 보배 그물(寶網)로 몸을 덮어 장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선견비구(善見比丘)처럼 머리에 육계가 솟고 금빛 피부에 목에는 삼도(三道), 가슴에는 만(卍)자가 있고, 손가락에는 그물막이 있고,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금강륜이 있어 부처님의 상호를 갖춘 선지식도 있지만, 향을 파는 장사꾼 모습의 장자도 있고 남루한 차림의 뱃사공도 있습니다.

입법계품의 막바지 여정에 문수보살을 만나는 장면. 이때 문수보살은 멀리서 바른 손을 펴서 1백 10유순을 거쳐와 선재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한다. “만약 선재의 믿음의 뿌리(信根)이 약했더라면 마음이 나약하여 이같은 공을 닦는 행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황홀한 여인과의 만남들
선재동자가 만나는 선지식 중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습니다. 속세에서 도를 닦는 청신녀(우바이) 3명, 바수밀다 여인, 석존 전생의 부인 구파여인, 석존 어머니 마야부인, 왕녀 등입니다. 선재는 무수한 여의주(寶珠, 보배 구슬)로 온 몸을 장식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여인의 이름은 ‘쉬고 버린다’는 의미의 ‘휴사(休捨)’ 청신녀입니다. 그녀를 보는 이는 모든 병고가 사라지고, 번뇌가 뿌리 뽑히고, 장애의 산이 무너지고, 걸림 없는 청정한 경계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녀는 “선근을 심지 않으면 끝내 나를 보지 못한다. 만약 나를 보게 된다면 위없는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천수경〉의 ‘우차여의주 정획무등등(遇此如意珠 定獲無等等: 이 여의주를 만난 이는 반드시 최상의 깨달음을 획득하리라)’라는 예불 문구가 떠오릅니다. 여의주를 본다면 그 가피는 무병 무번뇌이고, 과보는 불퇴전(不退轉)의 자리임을 알게 됩니다.

또 애욕의 여신, 바수밀다 여인은 금빛 살갗에 검푸른 눈과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음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중생이 애욕에 얽매어 내게 오더라도 나를 잠깐 보는 것만으로, 내가 팔을 살짝 펴기만 해도, 내가 눈을 깜빡이기만 해도, 나를 끌어안기만 해도, 내 입술에 한번 입 맞추기만 해도 모든 애욕이 사라지고 환희삼매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선지식이냐? 악마이냐?
선재의 여정 초반부를 넘어서면, 이미 보살행(行)을 스스로 실현하며 구도의 여정을 진행해가는 선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광명을 얻어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가고, 보살의 한량없는 장엄을 내기도 하고,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기도 하고, 끝없는 세계의 차별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재도 의심이 오는 때가 있습니다. 승렬바라문(10번째 선지식)과 무염족왕(18번째 선지식)을 만났을 때입니다.

승렬바라문은 “선재여, 그대가 만약 이 칼산 위에 올라가 몸을 불구덩이에 던진다면 모든 보살행이 다 청정해질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선재는 고민에 빠집니다.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려운데, 이것은 혹시 악마가 시키는 것은 아닐까. 악마가 마치 보살이나 선지식 모습으로 가장한 것은 아닐까?”

악마라면, 구도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버리게 됩니다. 반대로 진정한 선지식이라면 더 높은 단계로 가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선재는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선재가 또 한 번 의심하는 대목은 무염족왕을 만났을 때 입니다. 왜냐하면, 왕은 형벌로 중생을 다루었는데 그것이 너무나 잔혹했기 때문입니다.

“손과 발을 끊기도 하고, 귀와 코를 베기도 하고, 눈알을 뽑고 목을 치며, 살갗을 벗기고 살을 도려내고, 끓는 물에 삶고 타는 불에 지지고 (중략) 이런 끔찍한 고통이 끝도 없어 마치 중합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

선재동자는 과연 이것이 보살행이고 보살도인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일말의 자비심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왕은 중생을 핍박하고 생명을 빼앗아 큰 죄업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선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계속


#짤막 불교상식

선재동자는 왜 문수보살을 두 번 만나는가?

선재동자는 가장 첫 번째 선지식으로 문수보살을 만나고, 53번째 선지식으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난다. 같은 문수보살이지만, 처음 선재의 구도를 독려한 문수보살과 여정의 거의 최종 단계에 이르러 다시 만난 문수보살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같은 ‘반야지혜’이지만, 그 강도와 수준은 천지차이이다.

전자는 한 방울의 물이 머리에 똑 떨어졌다고 하겠고, 후자는 그 물의 근원인 바다에 풍덩했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선재동자가 길고도 머나먼 구도의 행각 속에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것은 ‘반야지혜’였다. “수행이란 반야지혜를 키워나가는 것, 또는 완성해나가는 것”이라는 선사들의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문수보살은 선재를 ‘보현행’의 도량에 들게 하고 사라진다. 끝이자 또 다른 시작. 선재는 다시 보현보살의 행과 원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입법계품의 기나긴 여정은 막을 내린다.


사진 : 선재동자가 선지식 마야부인을 친견하는 모습.(‘〈화엄경〉 입법계품 변상판본, 고려시대’) 입법계품의 변상도를 보면, 선재동자가 한 명이 아니라 복수로 등장하는 것이 발견된다. 이는 선재가 시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마치 동영상을 보듯이 화면 속 여러 명의 선재를 순차적으로 따라가며 감상하면 된다.

입법계품의 막바지 여정에 문수보살을 만나는 장면. 이때 문수보살은 멀리서 바른 손을 펴서 1백 10유순을 거쳐와 선재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한다. “만약 선재의 믿음의 뿌리(信根)이 약했더라면 마음이 나약하여 이같은 공을 닦는 행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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