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봄꽃은 추위가 물러가기 무섭게 우리에게 꽃의 향연을 선사합니다. 유록(柳綠)의 나뭇가지 사이로 내걸린 오색연등을 바라보노라니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산사에 오르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배움·성장 도와준 부모께 감사를
올바른 ‘나’ 만드는 게 바로 ‘孝’
오계 통해 자신·주변 잘 살펴야

저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얼마하지 않고 결혼을 했습니다. 이 무렵 부모님께 “시집가서 잘 할게요”하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부모님은 “너나 잘 살아”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하지만 속으로는 ‘그동안 나로 인해 고생하시고, 속 썩인 거라도 꼭 보답해야지’하고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40대 후반인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두 분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다니는 자녀를 두고 나니 이제는 딸을 시집보내며 “너나 잘 살아”라고 하시던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잘 사는 게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란 의미를 말입니다. 부처님은 전하신 많은 비유적 가르침 중에 앞을 보지 못하는 부모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한 담마가 선인(仙人)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인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죽음에 직면한 스스로를 지키고 부모님을 돌보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盲人부모와 담마가 선인
옛날 가시국왕(迦尸國王)의 나라에 큰 산에는 있었는데, 그곳에는 담마가(?摩迦) 선인(仙人)이 앞을 보지 못하는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요하고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외출할 때에는 항상 부모에게 아뢰었고, 평소에도 맛있는 과일과 아름다운 꽃·깨끗한 물로 부모님을 공양했습니다. 

하루는 범마달왕(梵摩達王)이 담마가 가족이 사는 산에 사냥을 하러 왔습니다. 마침 범마달왕은 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사슴을 발견하고, 힘껏 독화살을 당겨 쏘았습니다. 그런데 그 독화살은 하필 물을 긷고 있던 담마가를 맞추고 말았습니다. 화살에 맞은 담마가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한 개의 화살이 세 사람을 죽이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왕이 냇가로 달려가 담마가에게 물었습니다.
“이 산에는 담마가라는 선인이 부모를 모시고 산다고 들었소. 그대가 그 담마가인가?”
“그렇소. 지금 내가 당하는 이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다만 내가 죽으면 외딴 초막에서 늙고 앞을 못 보는 부모님이 지금부터 굶주리게 될 터인데 아무도 공양할 이가 없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왕은 부하에게 담마가를 안게 해서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초막을 향했습니다. 왕이 초막 앞에 이르러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자초지종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을 못 보는 노부부를 쓰러진 아들 곁에 데려 갔습니다. 노부부는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석제환인이 선인의 부모가 슬퍼하는 소리를 듣고 내려와 담마가에게 다가가 묻습니다.

“너는 왕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조금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너에게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만일 내게 왕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 화살의 독기가 온몸에 퍼져 곧 목숨을 마칠 것이오, 내게 왕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 독 묻은 화살은 저절로 빠지고 상처는 곧 나을 것입니다.”

담마가가 말을 마치자 독 묻은 화살은 저절로 빠지고 화살로 인해 생긴 상처도 곧바로 회복되었습니다. 그 때의 장님 아버지는 정반왕이요, 장님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며, 담마가는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 〈잡보장경〉 中에서

모두를 돌보는 자비의 길
담마가 선인은 독화살을 맞았지만, 자비심으로 스스로를 구하고 하늘을 감동시켰습니다. 담마가 선인이 일으킨 자비심은 화살을 쏜 왕에 대한 원망도 녹였고, 이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할 수 있었으며, 결국 앞을 보지 못하는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는 선업(善業)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선업의 시작은 바로 자비심이었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화살을 쏜 왕을 원망하고 분노를 일으켰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가에서는 부모·자식의 인연도 업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쌓은 업(業)의 결과에 의해 부모와 맺어지고, 세상에 태어난다고 가르칩니다. 즉, 거듭된 숙업(宿業)의 결과로 부모님의 태를 빌려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님의 태와 품을 빌려 나고 자란 인연도 지중하지만, 이번 생애에 반드시 자각을 이뤄 깨달음을 얻겠다는 서원과 그에 따른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담마가 선인의 이야기에서 보듯 ‘내가 살아 있어야’, ‘내가 선업으로 공덕을 쌓아야’ 부모님을 구할 수도, 도울 수도 있습니다.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던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기에 가능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스스로를 사랑해서 자신을 돌보고 성장시키는 행위는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못해서 부모님은 물론 가족 구성원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는 사례들은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쉽겠지요.

평온의 시작인 오계(五戒)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고 존경을 표하는 어버이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과의 지중한 인연을 통해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려 봅시다.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반듯한 ‘나’로의 성장은 세상 모든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이상적인 결과입니다. 나아가 불교적으로 수행을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자신을 반듯한 ‘나’로 아우르는데 기초가 되는 덕목은 오계(五戒)입니다.

불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약속인 오계는 ①불살생: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不殺生), ②불투도: 내 것이 아니며 누군가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라(不偸盜), ③불사음: 삿된 짓을 하지 말라(不邪?), ④불망어: 진실이 아닌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⑤불음주: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것(술, 마약 등)을 먹지 말라(不飮酒)입니다.

오계는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이자, 반듯한 ‘나’를 이뤄내겠다는 서원입니다. 자신을 보살피는(남에게 피를 주지 않는) 행위는 결국 주변을 보살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평소 생활할 때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대하도록 노력해 봅시다.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발로는 감사와 헌신의 반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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