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보타락가사 관음굴 회주 법진 스님

보타락가사 초하루 법회… 주제 : 팔상성도란?

태안 보타락가사 회주 법진 스님은 4월 9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일요 초청 법회서 ‘팔상성도의 의미 조명’이란 주제로 법문 했다. 팔상성도(八相成道)는 석가모니 부처님 생애를 여덟 기간으로 나눠 보는 전통적 방식을 말하는데, 팔상 시현(示現), 팔상작불(作佛), 석가팔상 등으로도 말한다. 이날 법진 스님은 “부처님의 생애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전해주며, 부처님오신날은 그 분이 사바세계에 오신 큰 뜻을 기리며 우리도 부처님 처럼 살자고 다짐하는 날”이라고 강조했다. 정리=김주일 기자 kimji4217@hyunbul.com

 

법진 스님은… 1967년 해인사서 고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고, 1968년 조계종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했다. 1977년 보운사 회주, 1978년 한국불교태고종 남허 스님께 입실, 1996년 수다원 원장, 2004년 태고종 중앙종회의원, 2009년 태고종 서울남부종무원장 등을 역임했다.

 

蠢動含靈이 皆有佛性이라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일체

차별없이 모두 평등하다

 

윤회를 완전히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고집멸도 사성제를

깊이 이해하고 관찰하는 길

 

앞으로 2주 있으면 다가올 5월 3일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시며 삼계의 대 도사이고 사생 자부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을 위해 사바세계에 오신 성스러운 날입니다.

우주법계는 어떤 전지전능한 신의 독선적 점유물이나 주종간의 관계인줄 알던 중생들에게 준동함영(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즉 중생은 모두평등하다고 역설 하신 것입니다. 이런 뜻깊은 부처님 탄신일을 맞아 우리가 매단 연등 하나하나가 자아를 탈피해 육도사생칠취(칠취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도 천도 신선도)를 밝히길 염원해야 합니다. 부처님오신날 그 분의 생애를 축소한 팔상성도를 다시 음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는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도솔천에 계시면서 많은 하늘나라 사람들을 교화하고 계셨습니다. 도솔천은 모든 부처님이 계시는 욕계육천중 제 사천으로 이곳은 어떠한 결함 없이 모든 것이 만족한 세상이라는 의미에서 묘족(妙足)이라며, 이 하늘 내원궁에는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수연을 기다리는 불보살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미륵 부처님께서도 이곳서 장차 중생제도의 실상을 닦으면서 계신다고 합니다.

도솔천의 사람은 수명이 사천세 인데 도솔천 하루는 우리 중생계의 사백년에 해당한다고 했으니 수명이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천왕에게 탄생하실 곳을 물색케 했는데 사천왕은 중인도 가비라국의 정반왕과 마하마야 왕비가 청렴하고, 오직 뒤를 이을 적자가 없는 것이 궁중과 백성들의 근심이니 그 곳이 마땅하다고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어느 날 마하마야 왕비는 크고 흰 코끼리가 도솔천으로부터 달려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 왔습니다. 그때에 대지가 진동하며 잡귀와 악마는 무서워서 모습을 감추고 하늘에는 대 광명이 비춰 일월도 빛을 잃으며 다섯 가지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하고 향기가 온 우주에 가득한 태몽을 꾸었습니다.

두번째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입니다. 잉태한지 만삭이 되어 천비성 공주인 마야부인께서는 그 나라의 풍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룸비니공원서 잠시 쉬면서 천만가지 꽃들을 보시다가 산기가 느껴 와 시녀들이 곧 산실을 만들어 싯다르타 태자를 낳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며 목고사방(目顧四方)하고,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향하며(右手指天 左手指地)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외치셨습니다. 즉 우리의 본성은 어떠한 신에게 존속된 유형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각자가 온 우주에 고귀한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문화나 대자연의 결여된 정복자가 아니라 크나큰 우주의 주인인 것입니다. 부처님 탄생은 카빌라 국의 영광뿐 아니라 온 우주의 영광이었습니다. 나라에서는 모든 살생을 금하고 각 감옥에서는 극악무도한 죄수 빼고는 모두 석방 했으며, 사형수 에게는 참형을 면케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탄생한 그 시간부터 모든 중생들에게 은혜의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정반왕은 곧 점성가인 아사타선이란 선인을 불러서 싯다르타 태자의 관상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인은 관상을 보다말고 엉엉 울었습니다.

깜짝 놀란 정반왕은 선인에게 그 이유를 물은 즉 선인은 싯다르타 어린 아기 태자에게 오체투지를 하고 말하데, 삼십이상(서른두 가지 잘생긴 것)과 팔십종호(팔십 가지의 특징)를 갖춘 태자께서는 세계를 다스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안되면 출가해 도를 닦아 법계중생을 제도할 선각자가 되실 것이 분명한데, 내 나이가 많아서 그 세월을 보지 못해 너무 슬퍼서 운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입니다. 그러나 정반왕과 문무 대신들은 기쁨 중에 항상 수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예언가 선인의 말처럼 태자가 세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해 삼계 대 도사가 될 것이 걱정 되었습니다. 궁중에서는 없는 것 없이 치장하고 아름다운 무녀에게 춤과 노래를 주야로 연주하며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지 않고 궁중생활에 애착을 갖게 하고자 온갖 노력을 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성숙하면서 남다르게 자비심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시종들과 우연히 동문을 지나다 허리가 굽고 남루한 행색의 노인을, 남문에서는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 서문서는 죽어서 송장을 실어 나르는 상여를 보았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는 왜 낳고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가 의문을 품고 너무 답답하고 슬펐습니다. 그 다음은 북문서는 승여(수행자)를 보았는데 모든 고뇌와 생사를 초탈하는 수행을 한다고 했습니다. 번뇌를 끊으려 한 것이 아니라 굴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은 번뇌에 속박되지만 수행해 거꾸로 번뇌를 속박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입니다. “인간 세상은 괴롭고 허무 하구나 내가 부처가 되어 저 고통 받는 중생들을 다 제도해 해탈을 얻게 하리라.” 태자는 출가를 결심하고 차익이라는 마부를 길잡이로 성을 넘어 출가했습니다. 그때 태자는 아름다운 야수다라 공주와 결혼해 라훌라라는 아들 까지 얻었습니다. 다섯째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입니다. 당시 인도서는 해박한 진리를 회통(會通)코자 수없는 철학자들이 수행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태양이 작열하고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고통을 이기며, 수행하는 바라문 수행 과정을 답습하면서 고행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고행이 참 진리를 터득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설산(히말라야) 보리수나무 아래서 일좌부지 경육년(一坐不知經六年)이라, 즉 육년을 하루같이 수행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 하신 후 중생을 위해 무변법계에 가득한 복과 지혜를 중생들에게 나눠 주고 다시는 고통이 없는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과 같이 열반적정(涅槃寂靜)에 들어 고통의 바다를 벗어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요히 삼매에 들어 중생 근기를 사량(思量)하고 계셨습니다. 그때에 대왕 파순이 부처님께 와서 정성을 다해 예를 올리고 간청하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것을 권했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 법이 세상에 전도되면 모든 중생은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고, 또한 악의 뿌리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마왕이 중생을 지배하면서 괴롭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성불 하셨으니 이 오탁악세에 머물지 마시고 천상에 올라 천상사람에게 설법 하소서” 마왕 파순은 간절히 두 눈에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했습니다. “파순이여! 잘 들어라. 나는 이제 사바세계 모든 중생을 위해 위없는 감로법을 설 하리라. 마치 큰 거울이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비추듯이 평등하게 모든 고통서 해탈해 영원불멸의 즐거움을 얻게 하리라.”

파순은 큰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부처님 대 광명의 법이 있는 한 마왕은 발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왕 파순의 딸이 셋 있는데 아버지의 근심을 알고 말했습니다. “아버님 걱정 마소서 우리 세 자매가 힘을 합쳐 태자를 유혹해 마음을 혼돈 시키겠습니다” “내 귀여운 딸들아, 너희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태자는 벌써 성불해 부처님이 되었느니라”

“아버님 우리는 천상천하서 가장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여기에 요술을 부려서 더욱 아름답게 꾸민다면 제 아무리 부처라도 저희 자태에 안 넘어 가겠습니까?

셋 딸은 각자 아름다고 가녀린 처녀 등으로 갖가지 교태를 부리며 부처님이 삼매에 들고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벌써 아시고 세 여자를 백발 할머니로 변신케 신통을 놓으셨습니다. 파순의 세 딸들은 이런 자기들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아버지 파순을 따라 중생계를 다니며 보았지만 이런 추한 몰골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대로의 요술을 풀어 보려 했지만 신통으로 묶인 몸은 요술이 안통했습니다. 세 자매는 자신들도 모르게 울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참회합니다. 저희 자매를 어여삐 여겨 이 추한 몸을 신통으로부터 건져 주옵고, 다시는 악한 마음을 먹지 않고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항시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 헌신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 세 자매의 모습을 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한 가지 비유를 들었을 뿐이지만 그간 고통과 유혹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일곱 번째는 〈녹원전법상(鹿苑傳法相)〉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6년간 수많은 고통과 난관을 극복하고 각자(覺者)가 되어 우주의 제일가는 성인 불타가 되었습니다. 불타께서는 맨 처음 싯다르타 태자를 호위하며 수행한 다섯 사람을 찾아가 〈고집멸도 사성제법〉을 설했습니다. 사성제법이란 고집멸도(苦集滅道)로 이상과 현실 세계를 말한 것입니다. 첫째, 고(苦)성제는 인간의 생노병사 희로애락 등은 결국 고라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집(集) 성제는 누구나 다변적 형상을 어리석게도 영원하리라는 생각으로 소유욕이 강해 나라는 편견된 존재의 왜곡된 아집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쌓이는(集)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멸(滅)성제는 인과는 창조적 신의 장난이나, 운명의 소산이 아닙니다. 행도 불행도 내가 심고 내가 수확하는 것입니다. 멸은 최고 경지지만 멸이란 단어는 수사에 불과한 것이고, 무여 열반의 경지는 고집멸도 사성제를 뛰어 넘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도(道)성제는 위와 같은 적멸 열반에 이르려면 피나는 노력과 인내와 정진의 힘으로 도정(搗精)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여덟째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칠불 통계게(通戒偈)를 제자들에게 부촉했으니 제행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 했지요. 즉 좋은 일 많이 하고 나쁜 짓은 하지 말며 청정한 마음이 곧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결국 어리석은 미혹을 해탈케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천당과 극락과 열반은 저승의 문제가 아니고 현실 속에서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불교는 평등하며 차별이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심불급중생 시삼 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라 했습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일체의 차별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하신 말씀입니까? 우리 불자들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이 거룩한 뜻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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