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일개미서 참된 선지식을 본다

일개미 선지식

곤충의 세계에서 얻은 지식 하나 옮겨야겠다. 일개미의 수명은 대충 6개월인데 몹쓸 병을 앓는 개미의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병이 깊어 가면 앓는 개미는 고약한 냄새를 풍겨 다른 일개미들이 접근을 꺼리도록 경계한다는 것이다. 병의 전염을 염려한다는 뜻으로 고약한 냄새를 발산한다는 것, 병든 개미는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느끼는 순간 온힘을 다해 개미굴을 빠져나와 개미집 밖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죽은 시체로 인해 병균의 오염과 전염을 막기 위해 사력(死力)을 다해 병든 몸을 끌고 집 밖으로 나와서 쓸쓸히 죽는다는 것. 텔레비전의 화면을 지켜보며 개미조사(祖師)의 죽음에 가슴이 먹먹하였다. 곤충의 세계에도 생명의 질서와 생활의 도(道)가 생생하게 교훈적으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몹쓸 병을 앓고 있는 일개미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을까! 동료들이 가까이 오면 병이 옮길까봐 나쁜 냄새를 풍기며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에는 얼마만큼의 독한 의지와 아픔이 있었겠는가!

주위를 둘러보아도 동료들은 멀리 있고 따뜻하게 마주해 손잡아 줄 개미도 없이 처절하도록 외롭고 아픈 나날을 죽음의 두려움으로 절대 고독과 싸우는 일개미의 더딘 동작에서 왈칵 서러워지며 눈물이 났다. 가슴이 짜릿 짜릿 아파왔다.

지칠 대로 지친, 풀어질 대로 풀어진 병이 깊은 몸을 추슬러 한 걸음, 한 동작 매우 더디고 힘겹게 옮겨 개미집 밖으로 나와 생명의 마침표를 남기는 개미의 죽음에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며 울었을 터.

평소, 죽음이 가까이 오면 내 스스로 기본적인 행장을 챙겨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죽음을 앞당겨 마감하리라는 다짐을 굳혀 오던 터이다.

누구누구가 찾아와 죽음을 애도한들 부질없는 분주함만 더하는 일이요 꽃상여, 만장(輓章)이 행여 준비된다면 죽음을 더욱 욕되게 할 뿐이다.

화장(火葬)하면 나올 사리(舍利)도 없겠지만 뼈 조각을 추슬러 담아 추모한답시고 부도탑(浮屠塔)을 세우는 번거로움도 지극히 허무의 놀음일터. 왔다가 놀다가 가면 그 뿐, 흔적 찾아 흔적을 모아 흔적을 남기는 일은 부질없는 그림자놀이 일 뿐.

살아서도 시은(施恩)으로 살던 사람이 죽어서도 시은(施恩)으로 부도 따위의 기념비를 남긴다면 집착의 부끄러운 그림자를 길게 남기는 꼴.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개운하게 진솔하게 말끔하게 당당하게 살다 빈손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면 그 뿐.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감사하는 마음도 철저히 사무치게 철이 들어야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가 거짓이 아닌 진실이 되는 것이다. 속이지도 속지도 않는 순수한 진실의 언어와 행동이 따르는 것이다.

모으고 챙기고 쌓아두려는 속물근성으로 명예와 명분을 앞세우며 이름 석자 알리는 일에 헐떡이고 흔들린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수행자일리 만무하다. 어쩌다 보니 연륜이 쌓여 고승(高僧)대접 받고 선지식(善知識) 흉내내는 부끄러운 일이 늘고 있으나 자중자애 하여 회광반조(廻光返照)할 일.

고승(高僧)이 되면 몸에 걸치는 승복과 가사(袈裟)색깔이 달라져야 하는지 조심스레 되묻고 싶다. 고승과 선지식은 참사람을 의미한다. 참사람이란 사람다운 사람을 말함이다. 누구에게나 좋은 스승이 되고 아무에게나 착한 벗이 되는 사람이다.

꾸미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 속이지 않고 속지 않으며 막힘과 걸림이 없는 자유인이다.

모으거나 챙겨 쌓아두지 않으며 나누는 기쁨으로 집착하지 않는 행복한 사람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고마워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해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부끄러움 남기지 않는 당당한, 평화로운 사람이다.

방편을 앞세워 세력을 모으거나 현실적 타협을 핑계로 평화를 구걸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선지식은 사람다운 참사람의 선지식이다.

일개미의 병든 모습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또 하나의 선지식을 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