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의 두려움, 남을 위한 기도로 극복
사형의 두려움, 남을 위한 기도로 극복
  • 박원자 작가
  • 승인 2017.04.14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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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의 108배

다정도 병이라고 했던가. 나라 전체를 몇 달 동안 흔들어 놓고도 끝내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간 전직 대통령에게 그토록 상처를 받았건만, 막상 한 나라의 수장이던 이가 구속되어 구치소에 들어가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으니 말이다. 세 평쯤이라던가, 그 좁은 공간에서 그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에 관심들을 가질 무렵, 한 종편 방송에 나온 패널 한 사람이 이런 얘기를 꺼냈다. 예전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함께 형을 받고 구치소에 있을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매일 108배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건강을 챙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분히 상기된 표정으로 이번 전직 대통령도 108배를 하면서 지내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지 않겠느냐는 안을 내놓는 것이었다.

교도관 발걸음 옮길때마다 집행 공포

흔들리는 마음 바로잡기엔 ‘절’ 제격

108배 100일 기도 네 번하며 변화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도 도무지 자신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 모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에구, 절을 하면 알게 될 텐데’하는 생각을 했던 터라, 그의 제안이 귀에 쏘옥 들어왔다. 정말 108배를 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50년 동안 한결같이 교도소 교정교화에 인생을 바친 삼중 스님을 최근 뵙게 되었다. 스님의 은사이신 손경산 스님에 대해 알아볼 것이 있어 찾아뵈었다가 여쭈었다.

“108배를 하면 좋을 텐데 방법이 없을까요? 그리고 불자들만이라도 절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는데, 교도소 안에서 절할 수 있는 여건이 되나요?”

“글쎄요, 종교가 다른 그분이 108배를 할 수 있게 될지는 모르겠고, 오랜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 사람이 매일 108배를 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한 일을 얘기해 보지요.”

15년 전, 부산의 한 절에 머물면서 교정교화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낼 때였다.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왔는데, 여든 살은 족히 되어보였다. 금방 주저앉기라도 할 듯 노쇠한 그 분은 연신 ‘미안합니다’는 소리만 되풀이한 채 쉬 입을 떼지 못했다. 언제나 절 문을 활짝 열어놓고 찾아오는 이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될 수 있으면 문제를 함께 풀려고 노력하고 있던 스님이었는지라, 뼈만 앙상한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어떤 이야기도 괜찮으니 말씀을 해보시라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겨우 용기를 내어 말했다.

“스님, 제 아들이 사형수입니다. 아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형수가 되었으니 어미 된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으며, 누구에게 무슨 부탁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면회를 갔더니, 아들이 스님을 좀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꼭 면회를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한 스님은 당시 바쁜 일들이 산적해 있어 그 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생각이 나서 전화번호를 찾아보았으나, 어디에 써놓았는지 보이질 않았다. 무책임한 자신을 책하고 있을 즈음,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면목 없습니다만 한번 꼭 가셔서 제 아들을 좀 만나주세요.”

아직 만날 인연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또 바쁜 일에 약속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수감자들을 만나며 교화에 전념하고 있던 어느 날, 서울구치소에서 한 사형수를 만났다. 첫눈에 유난히 정이 간 그에게 물었다.

“어머님은 생존해 계시는가?”

스님이 사형수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라고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가장 가슴아파하는 걸 보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벌을 받는 것보다 어머니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을 더 못견뎌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일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스님, 진작 뵈올 인연이 있었는데, 이제야 뵙게 되는군요.”

사연을 털어놓는데 보니, 그는 스님이 까맣게 잊고 있던 할머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그에 대한 스님의 관심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님을 만나 불교를 알게 되면서 세상의 모든 일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내가 벌여놓은 것은 내가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108배를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나를 낮춰 참회하지 않으면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형수는 하루에 열 번 죽는다고 한다. 뚜벅뚜벅 복도를 울리며 걸어온 교도관의 발걸음이 자신이 갇혀 있는 방문 앞에 멈출 때마다 죽음의 순간을 맛본다는 것이다.

‘이제 가야할 때인가?’

하루에 열 번 그런 지옥을 경험하는 마음이 어떨까? 우리나라는 아직 사형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사형집행을 멈추고 있을 뿐,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실정이다. 스님은 사형수들과 면담 할 때마다 두려움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그들의 내면을 읽는다고 한다. 그렇게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시간 속에서 그는 매일 108배를 하면서 두렵고 괴로운 시간들을 견디어 나갔다.

오체투지의 자세, 즉 머리를 땅에 대고 몸을 굽히며 합장하는 동작을 되풀이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이 이뤄진다. 복식호흡을 하게 되면 위로 치솟아 있는 뜨거운 화의 기운이 진정되어 아래로 내려가서 마음이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몸 아래쪽의 차가운 물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면서 신체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팔과 다리 등 온 몸을 움직이면서 자연스레 기를 단련하게 되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 갇혀있으면서 하루 15분 정도의 시간은 그에게 기적과 같은 선물을 주었다. 자신에 대한 분노와 언제 세상을 떠나야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매일 반복하는 108배로 인해 몸과 마음이 정화되면서 정신적인 깊은 안정감을 얻은 것이다.

사형수로 15년째 수감되어 있는 그는 그동안 108배 1000일기도를 네 번 마쳤다. 스님은 그를 계속 보아오면서 그가 마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남을 위해 사는 성자처럼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당뇨로 고생하다가 몇 년 전부터 신장투석을 받고 있는 스님에게 신장을 이식해드리겠노라고 하는 걸 스님이 마다했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로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그 마음만 받겠다고 하자 그는 스님을 위해서 108배 천일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를 위해 시작한 기도가 드디어 남을 위한 기도로 바뀐 것이다.

“남을 위한 기도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108배 연재 글을 열심히 보고 있다는 후배가 한 말이다. 백번 공감 되는 말이다. 내 삶이 무겁고 힘들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절을 하다보면 내가 지고 있던 짐들이 가벼워지면서 여유가 생기다보면 남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들어주게 된다. 그리고 절을 해본 사람들은 자신이 힘겹게 지고 있는 짐의 무게감이 사실은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절을 하면서 자연스레 정화가 되다 보니 자신을 사형수로 만든 인과를 명확히 보았을 것이고, 무한히 참회했을 것이다. 참회하다가 보니 곁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무정의 생물에까지도 감사한 마음이 미쳤을 것이다. 그 감사가 남을 위한 기도로 이어졌을 것이다.

모든 수행이 그렇듯 108배 수행에서 가장 먼저 얻어지는 것이 정화다. 나는 그 정화를 기적이라 생각한다. 정화가 아니면 무엇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인가. 늘 무겁게만 느껴지는 삶의 짐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또 수행의 영원한 숙제인‘변화’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또 하나 그를 정화시킨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어느 날 그가 그린 스케치를 스님이 우연히 보시고,‘어, 그림 잘 그리네?’ 한 마디 했던 것에 용기를 얻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108배를 하면서 천일기도를 여러 번 회향하는 동안 그는 마치 수행이라도 하듯 그림그리기에 몰입했고 전국서 대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대 교수들로 이뤄진 심사위원들이 그의 그림을 대상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은 것은 수없이 반복된 108배 정화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삼중 스님이 지금 머물고 있는 안성 영평사 마루에 걸려있는 그의 그림을 보았다. 대상을 받았다는 소쿠리에 담긴 달걀꾸러미의 연필 그림은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그 섬세한 스케치에 담긴 공력이 빼어나 보였다. 그 곁에 있는 연꽃 그림 또한 실물보다 더 정교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요즘도 스님은 그를 찾는다. 일주일에 두 번씩 투석을 받는 힘든 몸으로 그를 찾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언제 사형이 집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그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큰 힘을 얻기 때문이다. 그를 보고 돌아올 때마다 겨우 몸에 깃든 병 하나로 힘들어하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는 것이다. 스님께서 한번 같이 면회를 가자고 하시니, 언제 따라나설 작정이다.

108배는 정말 힘이 세다. 그 무엇도 감당할 힘이 생기니까,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까. 몸만 움직이면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니까. 그나저나, 앞에서 말한 그분, 108배의 이 센 힘을 경험할 날이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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